스팸은 생으로 먹는 게 제맛
아내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저를 이해 못 합니다.
예를 들면 스팸이나 햄을 굽지 않고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당연히 저도 스팸을 기름에 구워본 적은 있습니다만 글쎄요. 역시 생으로 먹는 게 훨씬 낫더군요.
다소 어폐가 있을진 모르겠으나 본연의 인공적인 맛이 느껴진달까?
그런 저의 입맛이 꼭 어린 시절의 어떤 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떠오르는 기억은 하나 있어요.
부모님은 왜 다 편찮으실까?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땐 도시락을 싸서 다녔습니다.
맞아요, 지금처럼 급식이 없던 시절이었죠.
학교에서 학부모 상담을 위해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하면 많은 친구들이 아버지는 일을 나가고,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안 된다고 말해야 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부모님이 편찮은 친구들이 많을까?
당시엔 그런 의문이 들었더랬어요. 저희 어머니는 일을 하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거든요. 나중에야 다들 어려운 형편이라 그렇게 둘러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짐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파서 안된다고 말씀드려라.'
언젠가부터는 저 역시 선생님에게 그런 어머니의 말을 전해줘야 했거든요.
물론 아프다는 건 거짓말이었습니다.
미각 충격
점심시간엔 친한 친구들과 한 데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도시락 가방에서 반찬 통을 달랑 하나만 꺼내더군요.
에이, 오늘은 좀 망했네.
어린 저는 그런 정도의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그 뚜껑을 열었을 땐 더 실망스러웠어요. 고작 분홍색의 소시지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것도 육면체로 잘게 채썰 듯이 말이에요.
이렇게 작은 조각들이라니. 한 번에 몇 개나 먹으라는 거지?
별 기대 없이 몇 조각을 집어먹은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충격적으로 맛있었거든요.
작고 불규칙한 분홍색의 육면체들
그날 저는 집에 가서 엄마에게 제가 목격한 그 작고 불규칙한 분홍색 육면체의 인상착의(?)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엄마, 나도 그거 해줘. 그거 너무 맛있었어.
평소 외식은커녕 가공식품도 내어주길 꺼려 하던 엄마는 그것이 정체가 뭔지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봤자 햄이겠지.'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가서 그것과 비슷한 색깔의 소시지나 햄을 발견하고 사 온 적이 있지만 언제나 실패였어요.
그 맛은 제가 먹은 그것과 비슷할지언정 똑같진 않았거든요. 끝내 그 정체는 알지 못한 채 저의 미각 충격은 서서히 잊혀졌습니다.
스팸 오리지널
'스팸'이었습니다.
저는 그 정체를 뜻밖에도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답니다.
물론 유사품은 이것저것 먹어봤죠. 그러나 정품 스팸을 처음 먹어본 것은 결혼한 이후였습니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제가 조리하지 않은 스팸을 즐기는 이유는 어릴 적 그 친구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왔던 스팸도 그랬기 때문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오히려 충격이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생으로 먹는 게 맛있어요.
중요한 건 그게 아냐
지금도 스팸을 먹을 때면 처음 그걸 맛봤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라요.
그 친구의 어머니가 그걸 그렇게까지 잘게 채 썰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스팸이 지금 사 먹기에도 다소 부담되는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말이죠.
어쩌면 그 친구도 선생님에게 엄마가 편찮다는 거짓말을 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스팸은 정말 맛있었어요.
충격적이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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