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식사는 거르더라도 과일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사람이었죠. 평소 식탐은 없었으나 과일만큼은 매우 탐했습니다.
'넌 누굴 닮아서 과일을 먹지 않니? 왜 과일이 싫은 거야?'
저는 어머니로부터 매우 자주 그렇게 추궁당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그 이유가 궁금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하는 답을 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그냥'의 완전무결함
'그냥.'
때론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이유가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 같은 경우 말이죠.
정말이지 그것 말고는 아무 이유가 없거든요. 어떤 과일도 특별히 맛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그러니 일부러 찾지 않게 되더군요.
따져 물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씀.
그건 마치 육류를 즐기지 않는 어머니에게 왜 삼겹살이 싫은지 설명해 보라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그런 저의 꼿꼿한 취향도 다소 바뀌었습니다.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일부러 조금은 과일을 먹게 되었거든요.
인생 최고의 복숭아
감히 단언하건대
인생 최고의 복숭아였다.
몇 년 전, 마트에서 사 온 복숭아를 한 조각 먹은 뒤에 든 생각이었습니다.
몹시 감동받은 터라 며칠 뒤, 마트에 가서 같은 브랜드의 복숭아 상자를 다시 집어 왔습니다.
아, 그런데 그 복숭아 맛이 아니었어요.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러나 그다음 주에도, 그다음 달에도, 그다음 해에도 그런 맛의 복숭아는 다시 만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복숭아에 대한 기대를 접기로 했죠.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몰라
하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모든 복숭아가 다 같은 맛은 아니라는 것.
같은 나무에서 자란 복숭아라도 서로의 성장환경이 완벽하게 일치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미세한 맛의 차이는 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때때로 매우 큰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저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맛있는 복숭아는 또 만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먹은 복숭아가 인생 최고의 복숭아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조금 서운해집니다.
앞으로 그런 복숭아를 다시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우리도 그래요.
아마 사람도 그렇겠죠?
제3의 종 입장에서 본다면 여러분과 저는 다 같은 '사람'일 거예요.
만약 모종의 기준으로 분류해서 우릴 한 박스 안에 넣어뒀다면 더더욱 똑같아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상자에는 이런 문구가 쓰인 팻말이 꽂혀 있을 수 있겠네요.
오늘 아침 7시,
신도림역 지하철 직송!
그렇게 말해도 어떤 종의 입장에서는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입장에선 너와 내가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존재임에도 말이에요.
너와 내가 다 뭐예요. 심지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조차 서로가 다른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만난 사람과 읽은 책과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이 우리를 어제와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어떻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당도는
어떻습니까?
어제보다 높아졌나요?
아니면 떫어졌나요?
저요?
저야 당연히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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