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고장
블랙박스가 왜 꺼져있지?
아침에도 이랬나?
퇴근하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는데 블랙박스 작동 표시창이 켜지지 않더군요.
잠깐 의아해하던 중 생각나는 게 있었습니다. 이틀 전 자동차 점검받을 일이 있어서 서비스 센터에 차를 맡겼거든요.
아, 그때 정비사가 이걸 꺼놨구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전원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없더군요. 몇 번을 다시 시도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토요일엔 쉬어야지
서비스 센터는 주말에 운영하지 않았지만 정비기사 휴대폰 번호는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전화를 해도 받지 않더군요.
'그래, 주말에 고객 전화받기 싫겠지.'
저도 직장인이다 보니 그 사람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중 번뜩 블랙박스를 설치했던 가게가 떠오르더군요.
아마 거기서는 좀 봐줄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기억을 더듬으며 블랙박스 가게로 차를 돌렸습니다.
까마귀가 잘못했네
까마귀 탓입니다.
비록 까마귀가 날자 우연찮게 배가 떨어진 것일지라도 그것은 까마귀 탓이에요.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동차 정비 기사가 이를 부정한다면 저는 전의를 불태울 준비가 되어 있었죠.
'이 모든 것은 까마귀가 날았기 때문입니다.'
블랙박스가 고장 난 것도, 그로 인해 내 소중한 주말 시간을 낭비하게 된 것도.
그럴 수도 있죠
토요일 오후에도 블랙박스 가게는 다행히 영업 중이었습니다.
사정을 설명하자 사장님은 고개를 갸웃하더군요.
- 말씀하신 점검 내용이랑은 상관없을 텐데요...?
- 그런데 그 이후로 작동이 되지 않았으니 원인이 그것밖에 없지 않을까요?
아다리가
그렇게 맞을 수도 있죠.
오호라.
저는 단번에 설득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를 나왔습니다. 그만큼 사장님이 믿을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요.
아다리가 맞다.
'아다리가 맞아 버렸다.'
말은 참 많이 들었고 대략의 뉘앙스도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그 단어를 검색해 봤습니다.
'아다리'는 일본어 ‘あたり(아타리)’에서 온 속어로 '딱 들어맞다·적중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예전의 저는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아니, 다 됐고 왜 하필 그게 지금이냐고. 왜 나냐고!'
하지만 이젠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이고, 그게 하필 지금이었던 것일 뿐.
저도 좀 컸나 봅니다. 그런 손 쓸 수 없는 일에 분노하지 않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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