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미용실
2년 전 휴직을 했을 당시 이야기입니다.
휴직 후 가장 먼저 했던 일 중 하나는 다니던 미용실을 바꾼 것이었어요.
그전까진 머리 자르는 시간이 아까워서 직장 근처의 단골 미용실에만 다녔거든요.
미용사가 솜씨는 좋지 않았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 하나가 좋았습니다.
현상 유지가 제일 어려워
이 모양대로
살짝 다듬어 주세요.
아마 수많은 남자들이 미용실 의자에 앉아 하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 요구이기도 하죠.
나는 늘 지금 이대로 유지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미용사는 자기 몸에 밴 습관에 따라 마음대로 자르곤 하니까요.
저 역시 매번 같은 요구를 했고 번번이 좌절을 경험하곤 했더랬죠.
- 어떠세요? 더 다듬을까요?
- 아니요, (이만큼만 망쳐도) 괜찮습니다.
변신
머리를 기르고 싶어요.
그러던 제가 휴직을 한 뒤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집 근처의 새로운 미용실에 가서 말이죠.
- 혹시 원하는 스타일이 있으세요?
- 그런 건 없는데 일단은 기르고 싶어요.
- 그럼 머리를 기르고 나서 어떤 스타일로 할지 얘기해 봐요.
저는 미용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타일에 대한 고민은 스타일을 낼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나서 고민해 보자.
잘 생길 걸 그랬나?
그로부터 3개월쯤 지나자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샤워를 한 뒤 머리를 말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머리 손질하는 일도 몹시 번거로워졌죠.
그전엔 헤어왁스로 머리칼을 적당히 고정시키고 다녔는데 머리카락이 길어지니까 쉽게 엉키더군요.
그렇다고 스타일이 몰라보게 바뀐 것도 아니고요.
물론 이는 제가 잘생기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만.
지금 이 모습대로
어느덧 짧은 휴직 기간이 끝났습니다.
한 번 갈 때마다 도장을 찍어주던 미용실 쿠폰은 더는 소용없게 되었죠.
복직을 하며 다시 휴직 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 미용실에 가기로 했거든요.
-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요. 어디 가셨었어요?
- 네, 잠깐. 어딜 좀.
- 어떻게 자를까요?
- 이 모양대로 다듬어주세요.
미용사는 여전히 제 희망 사항과 다른 머리를 만들어놨지만 저는 불만을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저는 길어진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조금씩 복직한 회사 생활에 젖어들어 갔습니다.
from sur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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