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양대로 잘라 주세요.

by 프롬서툰

단골 미용실


2년 전 휴직을 했을 당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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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 후 가장 먼저 했던 일 중 하나는 다니던 미용실을 바꾼 것이었어요.


그전까진 머리 자르는 시간이 아까워서 직장 근처의 단골 미용실에만 다녔거든요.


미용사가 솜씨는 좋지 않았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 하나가 좋았습니다.




현상 유지가 제일 어려워


이 모양대로
살짝 다듬어 주세요.

아마 수많은 남자들이 미용실 의자에 앉아 하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 요구이기도 하죠.


나는 늘 지금 이대로 유지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미용사는 자기 몸에 밴 습관에 따라 마음대로 자르곤 하니까요.


저 역시 매번 같은 요구를 했고 번번이 좌절을 경험하곤 했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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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떠세요? 더 다듬을까요?


- 아니요, (이만큼만 망쳐도) 괜찮습니다.





변신


머리를 기르고 싶어요.


그러던 제가 휴직을 한 뒤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집 근처의 새로운 미용실에 가서 말이죠.


- 혹시 원하는 스타일이 있으세요?


- 그런 건 없는데 일단은 기르고 싶어요.


- 그럼 머리를 기르고 나서 어떤 스타일로 할지 얘기해 봐요.


저는 미용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타일에 대한 고민은 스타일을 낼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나서 고민해 보자.





잘 생길 걸 그랬나?


그로부터 3개월쯤 지나자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샤워를 한 뒤 머리를 말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머리 손질하는 일도 몹시 번거로워졌죠.


adam-winger-FkAZqQJTbXM-unsplash (1).jpg 사진: Unsplash의Adam Winger

그전엔 헤어왁스로 머리칼을 적당히 고정시키고 다녔는데 머리카락이 길어지니까 쉽게 엉키더군요.


그렇다고 스타일이 몰라보게 바뀐 것도 아니고요.


물론 이는 제가 잘생기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만.





지금 이 모습대로


어느덧 짧은 휴직 기간이 끝났습니다.


한 번 갈 때마다 도장을 찍어주던 미용실 쿠폰은 더는 소용없게 되었죠.


복직을 하며 다시 휴직 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 미용실에 가기로 했거든요.


-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요. 어디 가셨었어요?


- 네, 잠깐. 어딜 좀.


- 어떻게 자를까요?


- 이 모양대로 다듬어주세요.


미용사는 여전히 제 희망 사항과 다른 머리를 만들어놨지만 저는 불만을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저는 길어진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조금씩 복직한 회사 생활에 젖어들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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