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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Sep 26. 2023

여보, 지금 오메가 미사일이 발사됐다구!

  01.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출근을 멈춘 후 약 1달만인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카페에 온 것 말이다. 휴직을 내고 나서 나는 그전보다 훨씬 더 바빠졌기 때문이다.


© joshuaearle, 출처 Unsplash
회사에서 탈출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절박함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사람을 만나고 있다. 휴직 중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 2시가 넘어서 잠들었다가 새벽 6시 30분이면 일어난다. 이건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가혹한 일이다.


  사실 아침엔 조금 게으름을 피워도 될 일이었지만, 오랫동안 출근을 하며 몸에 밴 습관은 참으로 무서웠다. 아침 6시 30분에는 알람 없이도 눈이 떠지니까 말이다.


  언제 잠들어도 어김없이 같은 시각에 일어나게 될 때마다 '이것이 회사가 십수 년간 내 DNA에 새겨놓은 습성인 것인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게 되곤 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사랑스러운 딸에게 이런 노예근성까지 물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선천적 유전보다 후천적 유전이 더 무서운 법이다.




  02.


  나는 매일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한다. 이때 운이 좋으면 블로그에 포스팅까지 1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은 뉴스와 일기예보 등을 보며 몸과 정신에 시동을 건다.


© timberfoster, 출처 Unsplash


  그러다 시간이 되면 수영 강습을 받으러 나가서 오전 10시가 조금 안돼서 집에 돌아온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와 인스타 계정별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요즘엔 인스타 계정에 연동시킨 스레드까지 시작하게 되어서 정말 바쁘다.


  그 밖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사업하는 분들의 동영상 강의를 듣고, 디지털 드로잉 수업과 심리상담을 받으러 간다. 마지막으로 자투리 시간에는 책읽기 또는 학교나 학원에 아이를 데려다 주거나 마중 나가는 까지가 나의 주요한 루틴이다.




  03.


  - 어휴, 피곤해. 만날 친구가 없으면 영화라도 보고 와!


  아내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지친다며 핀잔을 주곤 했다. 물론 나는 아내 말처럼 만날 친구가 없긴 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영화관람에 2~3시간이나 할애할 만큼 한가롭다는 뜻은 아니다. 휴직기간이 짧은 만큼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능력도 시간도 모자라면 잠을 줄이고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 olenkasergienko, 출처 Unsplash


  아, 왜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사느냐고?


복직 대신
퇴직하자!



  그것이 휴직 기간 동안의 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직을 시작하자마자 스프린터처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확실히 몸은 전보다 고된 면이 있지만 즐겁다. 직장에서는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느라 끌려다녀야 했다면, 지금은 내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자, 이쯤에서 '메칸더 브이'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04.


  아주 오래전 '메칸더 브이'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로봇 메칸더 브이가 악의 무리를 소탕하기 위해 출동하면 어김없이 '오메가 미사일'이 발사된다. 메칸더 브이가 사용하는 원자력 에너지가 작동된 것을 지구를 감싸고 있는 적의 공격 시스템이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 5분 안에 적을 소탕하지 못하면 메칸더 브이는 오메가 미사일에 의해 산산조각 나게 되는 설정이다. 아, 안심해도 좋다. 단 한 번도 메칸더 브이의 작전이 실패한 적은 없으니까. 그러나 만화영화와 실전이 같을 리가 있나.


  말하자면 나는 휴직과 동시에 오메가 미사일이 발사된 것과 같은 긴박함을 느끼고 있다는 말씀이다. 요컨대 나의 휴직이 메칸더 브이의 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시시각각 다가오는 복직일은 나를 격추하기 위해 날아오는 오메가 미사일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는 '휴직 때엔 힐링에만 집중하라', '반드시 해외여행을 가라'는 등의 조언을 했지만, 나는 그런 속 편한 일이나 하고 싶진 않았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 지옥 같았던 회사에 돌아가지 않아도 될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진 말이다.


  그러니 아내의 쉬엄쉬엄 하라는 말이 내겐 귓등으로 들릴 수밖에.



여보,
그런 한가한 말 할 때가 아니야.
지금 막 오메가 미사일이 발사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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