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휴직을 한 지 약 한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하루는 회사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웬일이시지?'
그 선배는 지금 다른 부서의 부서장으로 있는데, 입사 때부터 나를 좋게 봐주셨고 지금까지도 늘 마음을 써주는 분이다. 하지만 같은 부서가 아니라 업무적으로 나눌 얘기도 없었을뿐더러 평소 사적인 통화를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뜬금없는 타이밍에 걸려온 그분으로부터의 전화가 의아하면서도 괜히 불안했다.
'혹시 회사에 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라도 돌고 있나?'
소심한 나로서는 가장 먼저 그런 쪽으로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굳이 나에게 전화를? 하긴 그분이 실없는 소문이나 전하려고 일부러 연락까지 할 성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02.
하지만 막상 전화가 왔을 당시에는 일이 있어서 미처 받지 못했었다. 나는 일정을 마친 뒤 여유가 생겨 그분에게 전화를 하려고 폰을 꺼냈다.
'별 거 있겠어? 언제 식사나 함께 하자는 얘기겠지.'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확인한 문자 내용은 뜻밖이었다.
쉬어보니 재미있으신가. ^^
이제 무료함에 몸이 배배 꼬여올 시기가 되었을지도?
적극적으로 행복하려고 노력해 보시오.
그리고 혹시 회사 밖에서 자네만의 답을 찾았다면
나에게도 꼭 공유를 해주시게.
이젠 그런 쪽으로 마음을 접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흔들릴 때가 있군..
내가 놀고먹을 팔자는 못된다는 것을 알지만
뭔가를 찾았을 땐 나에게도 꼭 공유를 해주시게나!
02.
- 복직하지 않고 이대로 퇴사할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해 볼 생각입니다.
휴직을 나가기 전, 그 선배와 저녁식사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송별회였던 셈인데 선배는 나에게 나가서 뭘 할 계획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방향만큼은 확실했다. 바로 '복직하지 않고 퇴사하는 것'. 그 수단이 뭐가 됐든지 말이다.
- 오호라. 확실한 목표가 있구먼. 그래, 생각해 둔 아이템은 있고?
- 이제 나가서 찾아봐야죠.
- 전에는 나도 그런 걸 꿈꿔봤었는데 쉽지 않았어. 사업을 알아본 적도 있었지. 그런데 사주를 봐도, 점을 봐도 나는 큰돈 만질 일이 없대. 월급쟁이가 딱이라는 거지. 내가 보기엔 자네도 나랑 성향이 비슷해.
그날 선배는 그 시점에서라도 나의 휴직을 만류하고 싶은 눈치였다. 내 경력이나 평판에 치명타는 없을 테니 걱정 말라는 얘기를 해주었지만,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뉘앙스 또한 느껴졌다. 그럼에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를 응원을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었다.
- 그래도 맘먹고 나가는 휴직이니까 애써 보시게. 아니다 싶으면 바로 돌아오시고. 자네 정도면 지금도 남들이 부러워할 위치잖아.
-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03.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이런 문자를 받은 것이다.
회사 밖에서
자네만의 답을 찾았나?
글쎄, 휴직한 지 한 달 만에 실마리가 보일 것 같았다면 십 수년간 회사를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 짧은 기간 동안에 '네, 선배님! 퇴사를 위한 아이템을 찾아냈습니다!'라고 한다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홍수가 났을 때에도 바지를 걷어 부치고 전투적으로 출퇴근하는 월급쟁이들이 얼마나 허탈해할까.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 아침, 수영 빠지지 않고 다니는 것 외에는 '전 이런 걸 하고 있습니다'라고 할 만한 일이 딱히 없었다. 아직 초심자용 풀에서 자유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하물며 퇴사라니. 아직은 시기가 상조해도 매우 상조한 것이다.
04.
'저 위치까지 가도 지금의 내 고민은 끝나지 않으려나보다.'
문득 회사에서 회의감이 느껴지는 일이라도 있으셨던 거겠지. 비록 내 코가 석자이지만 선배가 안쓰럽게 생각되었다. 그분이야말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릴 때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톡으로 온 내용을 보고 뭐라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릴없이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밖에. 그분의 속마음을 다 헤아릴 수도 없었을뿐더러 나만의 답을 찾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 답을 찾아가는 길 위에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회사 안이든 밖이든 간에 말이다.
나는 다만 내가 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할 수 있었다. 혹시 당신은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한 길을 걷고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