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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Oct 10. 2023

회사 밖에는 답이 있던가?

  01.


  휴직을 한 지 약 한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하루는 회사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magnetme, 출처 Unsplash

  '웬일이시지?'


  그 선배는 지금 다른 부서의 부서장으로 있는데, 입사 때부터 나를 좋게 봐주셨고 지금까지도 늘 마음을 써주는 분이다. 하지만 같은 부서가 아니라 업무적으로 나눌 얘기도 없었을뿐더러 평소 사적인 통화를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뜬금없는 타이밍에 걸려온 그분으로부터의 전화가 의아하면서도 괜히 불안했다.


  '혹시 회사에 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라도 돌고 있나?'


  소심한 나로서는 가장 먼저 그런 쪽으로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굳이 나에게 전화를? 하긴 그분이 실없는 소문이나 전하려고 일부러 연락까지 할 성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02.


  하지만 막상 전화가 왔을 당시에는 일이 있어서 미처 받지 못했었다. 나는 일정을 마친 뒤 여유가 생겨 그분에게 전화를 하려고 폰을 꺼냈다. 


  '별 거 있겠어? 언제 식사나 함께 하자는 얘기겠지.'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확인한 문자 내용은 뜻밖이었다.


  쉬어보니 재미있으신가. ^^
  이제 무료함에 몸이 배배 꼬여올 시기가 되었을지도?
  적극적으로 행복하려고 노력해 보시오.

  그리고 혹시 회사 밖에서 자네만의 답을 찾았다면
  나에게도 꼭 공유를 해주시게.
  
  이젠 그런 쪽으로 마음을 접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흔들릴 때가 있군..

  내가 놀고먹을 팔자는 못된다는 것을 알지만
  뭔가를 찾았을 땐 나에게도 꼭 공유를 해주시게나!




  02.


  - 복직하지 않고 이대로 퇴사할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해 볼 생각입니다.


  휴직을 나가기 전, 그 선배와 저녁식사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송별회였던 셈인데 선배는 나에게 나가서 뭘 할 계획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방향만큼은 확실했다. 바로 '복직하지 않고 퇴사하는 것'. 그 수단이 뭐가 됐든지 말이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 오호라. 확실한 목표가 있구먼. 그래, 생각해 둔 아이템은 있고?


  - 이제 나가서 찾아봐야죠.


  - 전에는 나도 그런 걸 꿈꿔봤었는데 쉽지 않았어. 사업을 알아본 적도 있었지. 그런데 사주를 봐도, 점을 봐도 나는 큰돈 만질 일이 없대. 월급쟁이가 딱이라는 거지. 내가 보기엔 자네도 나랑 성향이 비슷해.


  그날 선배는 그 시점에서라도 나의 휴직을 만류하고 싶은 눈치였다. 내 경력이나 평판에 치명타는 없을 테니 걱정 말라는 얘기를 해주었지만,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뉘앙스 또한 느껴졌다. 그럼에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를 응원을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었다.


  - 그래도 맘먹고 나가는 휴직이니까 애써 보시게. 아니다 싶으면 바로 돌아오시고. 자네 정도면 지금도 남들이 부러워할 위치잖아.


  -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03.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이런 문자를 받은 것이다. 


  회사 밖에서
자네만의 답을 찾았나?

  글쎄, 휴직한 지 한 달 만에 실마리가 보일 것 같았다면 십 수년간 회사를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 짧은 기간 동안에 '네, 선배님! 퇴사를 위한 아이템을 찾아냈습니다!'라고 한다면? 


© abingol, 출처 Unsplash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홍수가 났을 때에도 바지를 걷어 부치고 전투적으로 출퇴근하는 월급쟁이들이 얼마나 허탈해할까.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 아침, 수영 빠지지 않고 다니는 것 외에는 '전 이런 걸 하고 있습니다'라고 할 만한 일이 딱히 없었다. 아직 초심자용 풀에서 자유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하물며 퇴사라니. 아직은 시기가 상조해도 매우 상조한 것이다.




  04.


  '저 위치까지 가도 지금의 내 고민은 끝나지 않으려나보다.'


© tjump, 출처 Unsplash


  문득 회사에서 회의감이 느껴지는 일이라도 있으셨던 거겠지. 비록 내 코가 석자이지만 선배가 안쓰럽게 생각되었다. 그분이야말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릴 때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톡으로 온 내용을 보고 뭐라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릴없이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밖에. 그분의 속마음을 다 헤아릴 수도 없었을뿐더러 나만의 답을 찾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 답을 찾아가는 길 위에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회사 안이든 밖이든 간에 말이다. 


  나는 다만 내가 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할 수 있었다. 혹시 당신은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한 길을 걷고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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