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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Oct 04. 2023

퇴직하면 막노동해야 됩니까?

  01.


  추석을 맞아 본가에 방문하였다. 부모님께 휴직하게 될 거라는 말씀을 드린 적은 있었다. 당시에는 뜻밖의 얘기에 놀라셨지만 덤덤히 받아들이시는 듯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휴직 이후 얼굴을 뵙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본가에 도착하여 숨을 돌리자마자 부모님은 '나'에 대해 아니, '나의 휴직'에 대해 쌓인 뒤늦은 소회를 쏟아냈다.


© tjump, 출처 Unsplash


  말씀을 들어보건대 그동안 못난 자식에 대한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쉬니까 좋으냐'는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하여 요즘 뭘 하고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계획인지 등 질문을 쏟아 내셨다. 


  하나같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좋은 질문들이다. 그렇지만 아직 나조차도 정리가 안된 부분이었으므로 지금으로선 별다른 답을 할 수 없었다. 특히 TV를 통해 시사, 교양 프로그램과 각종 토크쇼를 섭렵하신 어머니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퇴직하고 망한 사람, 사업하다 망한 사람 등 이유가 어쨌거나 아무튼 망한 사람 이야기를 얼마나 들려주시는지 원. '명문대 나온 사람도 망했고, 대기업 출신도 망했고, 투자해서 돈 많이 벌었다는 사람도 망했다. 그런데 너는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서 감히 퇴직을 입에 담느냐'는 것이 주요 포인트였다.




  02.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미쳤었나 본데 이제 정신 차렸습니다. 복직하게 되면 흔들리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정년까지 정진하겠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은 내게 그런 말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당연히 이해가 되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다가 갑자기 휴직을 한다니. 그 이유라는 것도 단지 '힘들어서' 라니. 철부지 어린애나 할 법한 핑계 아닌가. 게다가 퇴직까지 꿈꾸고 있다고?


© ivanchenao, 출처 Unsplash


  - 막말로 네가 거길 관두고서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겠니?


  어머니는 그렇게 핀잔을 주셨다.


  - 퇴직하면 꼭 막노동해야 해요?


  - 기술 없으면 그래야지 별 수 있어?


  막노동도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던데 어머니는 미처 모르셨나 보다. 어쨌거나 나는 모처럼 본가에 와서 이렇게 답 없는 언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슬쩍 저항심리가 발동했다.


  - 해야 되면 하겠죠, 뭐.


  그러자 이번에 돌아오는 것은 콧방귀다.


  - 뭐? 네가 막노동을 한다고? 넌 절대 못해. 너처럼 약해빠진 애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한다고!


  이건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나도 알고 있다. 어머니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씀은 '넌 막노동도 못할 녀석이니 딴생각하지 말고 직장으로 돌아가라'는 것이겠지.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고압적인 태도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 왜 제가 그런 일은 못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세상엔 막노동 말고도 할 것 많아요.


  - 지난번에 얘기한 사업 말이니? 네가 책을 많이 읽는다더니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엔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훨씬 많아. 넌 그걸 알아야 돼.




  03.

  

  '우리 서툰이는 내성적인 아이라 어디 가서 한마디도 스스로 못해요.'


  '우리 서툰이는 자기주장은 못하지만 온순하고 착한 아이예요.'


  '우리 서툰이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나를 소개했다. 친구의 부모님을 만날 때에도, 새로운 학교나 학원 선생님을 만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참 나를 모른다.'


  실상 학교에서의 나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선생님들과도 편하게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외향적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엄마가 아는 내 모습은 내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으면서도 나는 엄마가 말한 것 같은 아이가 되려고 행동했다.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본모습은 부모님이 알고 있는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04.

  그래, 천천히 고민해 보렴.
넌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 surface, 출처 Unsplash


  만약 부모님이 그런 반응을 했다면 나는 오히려 '지, 진짜요?'하고 두려워했을 것 같다. 러나 부모님은 나를 겁주면 원래 있던 자리로 얌전히 돌아갈 거라 믿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자식의 앞날이 걱정되어 하시는 말씀이었을 것이고, 일부러 더 심하게 말한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 말들로 인해 사뭇 참담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다니던 직장 밖에 달리 원하는 게 있어서 뛰쳐나온 것이라면 또 모를 일이다. 내가 갈망하던 것을 단념하고 부모님 말씀처럼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나는 대안이 없음에도 현실을 견디지 못해 탈출한 입장이었다. 그런 나에게 '회사 밖은 너 같은 허약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야'라고 해봤자 별다른 수가 없지 않은가.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나란 사람,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자책이라도 해야 할까.


  이제 자식 걱정은 그만하고 여생을 편안히 보내고 싶은 부모님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 또한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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