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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Oct 11. 2023

뜨거웠던 그 해 여름, 시시한

  01.


  여름, 가을, 겨울방학인 셈이네?

© swell, 출처 Unsplash


  - 어쩜 그 짧은 휴직기간 동안에 세 계절이 다 들어가 있지?


  휴직을 시작할 무렵, 아내는 그렇게 말하며 신기해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휴직기간이 8월 늦여름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을을 거쳐 12월 초겨울까지였으니까. 내 입장에선 한가롭게 무슨 이런 실없는 소릴 하나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하루하루가 설탕 안 넣은 에스프레소 맛처럼 썼기 때문이다.


  휴직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린 일생일대의 큰 결정이었다. 최소한 나 같은 성향의 사람에게는 그랬다. 그래, 첫 집 매수 계약을 할 때에도 이 정도로 고민하진 않았던 거 같다. '나 같은 성향'이라고 조건을 달아둔 이유는 주변을 보면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실행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심한 경우에는 1년에 2번씩 1~3개월 휴직을 내고 가족여행을 정기적으로 다녀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대담한 일을 벌이기엔 심약한 사람이었으므로 이번 휴직은 가히 '일생일대'라는 수식어를 쓸만한 사건임이 분명했다.




  02.


  휴직을 한 직후 약 한 달 동안은 출근을 할 때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다.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인터넷과 TV를 통해 뉴스를 봤다.


© itsdavo, 출처 Unsplash


  그렇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한 후 수영강습을 받으러 집을 나왔다. 1시간 정도 구역질이 날만큼 물장구를 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샐러드로 아침을 때운 뒤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신다. 그러면서 마무리 짓지 못했던 브런치와 블로그 글쓰기 등으로 오전을 보냈다. 이때에는 늘 몸살기를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휴직 후 2개월이 지난 지금의 내 생활은 그때와 사뭇 달라졌다. 나는 이제 아침 7시 30분에도 눈을 뜨기가 힘들다. 하루 일과가 시작부터 틀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수영 대신 다니기 시작한 헬스장은 일주일에 1번씩은 꼭 빠지게 된다. 또한 집에 돌아와 샐러드를 섭취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입맛이 돌아서 시리얼이든 밥을 후식으로 챙겨 먹곤 했다. 자연히 몸무게가 늘기 시작했다.




  03.


  그다음에 내가 상대해야 하는 적은 인간의 본능이다. 


  수면부족과 아침운동, 포만감, 항우울제가 한데 뭉쳐 만든 개연성 충만한 졸음 말이다. 오전 중에 꼭 한 번, 마치 커다란 바위가 굴러오는 듯 거대한 졸음이 쏟아지곤 했다. 글쓰기 대신 몰려오는 잠과의 전쟁을 하다가 이기면 비몽사몽, 지면 곧바로 이른 낮잠으로 이어지는 근본 없는 삶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전에 썼던 글에서 나는 '아침 6시 30분에 알람 없이 저절로 눈이 떠질 때마다 회사가 DNA에 새겨놓은 노예근성에 소름이 끼친다'라고 했던가?


© howier, 출처 Unsplash
  인간답게 살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어쩌면 나는 아침마다 그렇게 복창하며 회사에 큰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불과 2달 만에 본능에 무너져 내린 내 모습을 보면 스스로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04.


본능대로 사는 게
뭐가 나빠?

  한편으로는 그런 변명을 하기도 한다. 원래 이게 내 생체리듬에 맞는 루틴이라고 합리화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요즘 내 일상은 루틴 같지 않은 루틴으로 우당탕탕 흘러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브런치 스토리에 글은 꾸역꾸역 쓰고 있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1편의 에세이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길었던 추석 연휴기간 동안엔 잠시 쉬어볼까 했다가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짧은 휴직 기간 동안 출판을 목표로 하겠다는 사람이, 그것도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초짜 주제에 벌써부터 빨간 날, 까만 날 다 따지겠다는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창피했다. 실제로 글을 발행하지 않은 날이라고 해서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지도 못했고 말이다. 




  05.


  나는 작가소개에 써둔 것처럼 '평범한 회사원이 작가가 되어 복직 대신 퇴직'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브런치 스토리에 올리고 있는 에세이들은 그 과정의 생생한 기록물이 될 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고 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


© thoughtcatalog, 출처 Unsplash

  비록 처음 휴직을 시작했을 때만큼의 비장함은 흐릿해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은 그때 가졌던 목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나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을 뿐. 계획대로 지금까지 쓴 글들을 모아 이번 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할 것이고, 이 글은 그 마지막을 장식할 에필로그이다. 아, 책제목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고민을 해봐야 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브런치북을 만들고 난 뒤, 나의 미래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다 휴직까지 내게 됐고, 나름의 야심 찬 포부를 품었었다. 먼 훗날 이때를 돌이켜보게 된다면 어떨까?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었지. 하지만 그게 전부였어.'


  그렇게 말하게 될 '또 한 번의 뻔한 여름'으로 기억될지도. 


  다만 나는 추세대로 흘러가는 내 삶의 방향을 단 1도라도 위로 올리고자 오늘도 글을 쓴다. 정말 어딘가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아 작가가 될 수 있을지, 설사 작가가 된다 한들 내가 기대한 것처럼 삶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좋다.


  알 수 없는 세계, 상방이 열린 세계에서 나는 변함없이 최대치로 살아갈 것이다.







  약 한 달 동안의 제 여정을 지켜봐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매주 5편의 글을 올린다는 것이 저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저 자신의 의지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독자분들의 공감과 댓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나갈 계획이지만, 매일 1편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장 내일도 글을 올려야 하는데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그조차 장담을 할 수가 없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제 부족한 글이 작은 격려와 위안이 되길 바라며, 지금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을 월급쟁이 직장인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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