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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Sep 11. 2023

그것만이 네 세상은 아니야

죽지마, 직장인!

  01.

 

  오늘도 수영강습 중에 익사의 공포를 여러 차례 느꼈다. 고작 1.4미터 밖에 안되는 수심에서 말이다. 혹자는 말도 안된다고 할 지 모르겠다. 물론 다소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나 익숙한 영법을 할 때에도 종종 호흡이 틀어질 때가 있다. 비록 중급자 클래스로 넘어오긴 했지만 나는 아직 자유도 완전히 마스터하지 못한 초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 thomascpark, 출처 Unsplash


  이를테면 내 주변에서 수영을 하던 사람으로 인해 물결이 거칠어지면 입이나 코로 물이 들어온다. 원래 내가 호흡해야 되는 타이밍에 공기 대신 물을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100%다. 여지없이 몸의 균형이 깨져버려서 꼬르륵 물속에 잠겨 버리곤 했다.


  공기야,
어디 있니?


  물속에서 균형잡고 똑바로 서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키보다 한참 낮은 물 속임에도 그 안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럴 땐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몸뚱이에 대한 원망과 함께 '이러다 죽는 건가?' 했던 어릴 적 두려운 기억마저 되살아나곤 하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실내 수영장엔 오색빛깔의 로프가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오로지 그것이 나의 생명줄이다. 어렵사리 다리와 팔을 놀려서 간신히 로프를 잡고 일어서면 저 멀리서 강사의 외침이 들려온다.


  - 괜찮아, 괜찮아! 다시 해요!


  '나는 이미 틀렸어, 강사양반!' 


  이미 코와 입으로 물도 많이 마셨고, 다리에 힘까지 풀린 탓에 전의를 상실한 내게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대이동을 하다가 홀로 무리에서 낙오던 아프리카 초원의 누(물소의 일종)처럼 나는 로프를 잡고 천천히 걸어 대열에 합류한다.


  - 수영해서 가세요!


  그런 강사의 말은 애써 무시한 채로 말이다.




  02.


  그나마 수심 1.4미터는 핑계가 되는 편이다. 나는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초급자용 풀에서 그렇게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사람이다. 내 허리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심 0.7미터 풀에서 자그마치 한 달 동안을! 물론 자랑은 아니다. 


  내가 0.7미터 수심이 얼마나 얕은 곳인지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강습이 5분쯤 일찍 끝이 났었다. 다음 수업 때까지는 약 15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는 셈이기에 조금 더 연습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강생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는지 중급자용 풀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는 때마침 그날 수업이 없었던 초급자용 풀에서 연습을 하기로 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 같은 그곳에 발을 담그고 서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고작 이런 곳에서 허우적댄 거야?
무려 한 달을?

  자유 발차기와 팔 돌리기를 할 때마다 바닥에 발이나 손이 닿아서 몸을 100% 쓸 수 없었다. 아직 자유을 채 완성하지도 못한 주제에 '여긴 시시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야말로 내 짧은 수영인생의 전부라고 믿고, 사활을 걸었던 터전이었는데 말이다. 


  '여기서 내가 마신 물이 몇 리터나 될까?' 


  그동안 접시물에 코 박고 수영을 한 듯한 느낌조차 들었기에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03.


  다행이다.
여기 말고도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 greg_rosenke, 출처 Unsplash


  지금도 나는 내가 회사에서 벼랑 끝에 몰렸을 때, '휴직'이라는 수단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


  '이것 말고도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어. 이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회사만이 내 세상이라고 믿어선 안 돼. 난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정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취약해진 상태에서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들과 달리 내 정신력이 강했기 때문에? 아니면 유독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천만의 말씀이다.


  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블로그 등 SNS를 하며,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당히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내가 사는 세상과 선택한 삶의 방식이 수 천, 수 만 가지 옵션 중에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수시로 깨달을 수 있었다.



  까짓 거
더럽고 아니꼬우면
때려치워.

  또한 그런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아내 또한 나에게 힘을 주었다.


  - 설마 다른 일해도 그 돈쯤 못 벌까!


  그런 아내에게 참 고마웠다. 그만큼 내 월급이 박봉이라는 방증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렇듯 내가 나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면 그렇게 누군가 곁에서 그렇게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04.


  아마 지금도 누군가는 매일 공포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을지 모른다. 자기 키의 반도 안 되는 물높이에서 말이다. 내가 초급자용 풀에서 그랬던 것처럼.



© theranaman, 출처 Unsplash


  하지만 그는 혹은 그녀는 벗어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살면서 그곳을 벗어난다는 건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라고 배워왔다. 그렇기에 평범한 사람은 다소 변수가 있었을지언정 십 수년 전에 정조준한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가령 우리가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된 이유는 단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지금 내가 위치한 곳이 대기업 직원, 교사, 공무원, 의사, 변호사, 물리치료사, 미용사, 그 밖에 무엇이 됐든지 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정으로 인해 우리가 그 경로에서 벗어나거나 잠시 멈추기라도 한다면?


  모르긴 해도 보통의 경우라면 모두가 그 경로를 벗어나선 안된다고 만류할 것이다. 친구도, 부모님도, 배우자도. 왜냐하면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대부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 내가 스스로 의식을 확장하고, 발상의 전환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05.


© peetwillis, 출처 Unsplash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막다른 골목에 홀로 서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서있는 세상 바깥에도 우주가 있고,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이는 어처구니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면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지금 네가 서 있는 그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생명줄이 되어주어야 한다. 수영하다가 불현듯 꼬르륵 가라앉게 됐을 때처럼 급하면 붙잡을 수 있는 로프 말이다. 눈 앞에 닥친 상황에만 매몰되어 용기를 잃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말해줘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훨씬 넓고,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어쩌면 그제야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자신이 말도 안되는 고민으로 절망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수면 위에 떠오르고자 평생 동안 발버둥 쳐왔던 곳이 고작 수심 0.7미터밖에 안 되는 풀이었다는 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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