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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봐, 네가 해야지!"

주인공성의 기본은 나를 인지하고 만들어가는 태도

by myownangle

퇴근하고 방전된 채로 침대에 누워 숏츠를 보고 있었습니다. 혼이 절반은 나간 채로 손가락과 핸드폰이 물아일체되는 경지였는데요. 김연경 감독이 경기 중인 선수에게 외치는 한 마디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딜 봐, 네가 해야지" 바로 허리를 제대로 폈습니다. 죽비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제 인생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회사에서의 삶은 회사가 결정하는 거지하면서 고민을 미뤄뒀거든요. 그러던 저에게 그녀의 울부짖음이 훅 와닿았어요. 내 인생도, 누구를 돌아볼 게 아니라 내가 해야지. 결정이든 뭐든.


제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생각해 봤습니다. 아름다움, 연결성, 유쾌함. 저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합니다.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저는 특히 공간이나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문장의 아름다움을 보면 마음이 좀 채워지더라고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해주고 싶고요. 그리고 좋은 문장은 읽는 사람이 외롭지 않게 하는, 그리고 다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그러한 연결성이 저에게 중요한 기준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은 유쾌함인데요. 저는 사실 유쾌한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쾌한 사람을 되게 좋아해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에 가깝고요. 제가 이 단어에 얼마나 진심이 나면, 대학생이 되어서 과에 재밌는 걸로 유명한 동기와 점심을 먹을 때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재밌는 사람이 돼?'


그 동기의 답은 슬프게도 간단했습니다. "OO아, 네가 재밌기까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 저를 위로하는 말이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단호해서 열이 받네요. 그냥 재밌다고 해주면 안 되는 거였니? 무튼 저는 되도록 인생을 가볍게 재밌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남이 나를 보고 웃는 게 왜 그렇게 좋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슬프게도 부모님의 표정이 떠오르더라고요. 무뚝뚝한 부모님은 웬만해서는 크게 행복을 표현하지 않았고, 저는 대체로 드라마와 영화, 때때로 거울을 보면서 여러 표정을 지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가 제 앞에서 웃을 때 정말 행복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타고나길 침잠하는 편이라, 나풀나풀해지려고 노력을 해야 그나마 평균치 근처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는 유쾌함도 아주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종범 작가가 최근 폴인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주인공성'이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매력적인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고난을 겪는다. 사람이 멋이 없어질 때는 삶에 대한 통제감을 잃을 때다. 조금이라도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어야 한다...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제대로 된 주인공이 되고, 또 매력까지 갖추려면 각자 안에서 발현되는 욕망과 가치 기준이 선명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어딜 봐! 네가 해야지"라는 목소리에 맞춰 스스로가 해내야겠죠. 저는 앞으로도 일이나 삶에서 앞서 말한 가치들을 계속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아름답게 연결되기, 되도록 유쾌한 태도로. 비장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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