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패트로누스 마법'이 등장한다. 디멘터를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마법으로, 이 패트로누스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행복한 순간의 기억이 최악의 순간에서 나를 지켜준다는 심오한 철학이 담긴 마법이다. 나에게는 몇 편의 시와, 책을 둘러싼 순간들이 그 역할을 한다.
책을 좋아하다 보면, 그 글을 쓴 작가를 만나고 싶어진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이상하고 감동적인 생각을 했을까. 북토크의 규모는 천차만별이지만 처음이라면 동네책방에서 하는 작은 북토크를 추천한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비밀 회담을 하듯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진다. 수줍게 질문을 한다. 대부분의 작가와 책방지기는 용기를 낸 당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것이다.
북토크는 인생 노잼 시기에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꽤 괜찮은 원데이 클래스다.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거나 가죽 공예를 배우러 가기 전에 관련 지식을 쌓아가면 더 좋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북토크도 마찬가지다. 책을 미리 읽어가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급하면 예스24에서 책 제목만 쳐서 그 밑에 책 소개만 후루룩 읽어가도 좋고, 더 바쁘다면 작가 소개만 읽어가도 좋다. 수차례 북토크를 기획해 온 입장에서 관객이 책을 다 읽어왔는지 여부보다 그 자리에 와서 행복해하는 것이 더 크게 다가왔다.
얼마 전 난다 출판사에서 진행한 북토크에 다녀왔다. 참석자는 애정해 마지않는 박연준 시인과 김민정 시인, 전욱진 시인과 오은 시인이었다. 회사 일이 남았지만 급한 불은 껐기에 눈치를 보며 일어섰다. 합정역 근처 디어라이프 카페로 향했다. 낮 동안의 전쟁 같은 회사 생활은 잠시 잊었다. 달뜬 표정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시인들은 책을 쓰며 느낀 생각들, 서로의 책을 읽으며 추천하고 싶은 부분을 이야기했다. 시가 펼치는 다른 세계로 빠져들었다.
"맑은 사람들은 자신의 시체를 어깨 위에 지고 다니는 것 같아요"
난다의 퓨어 라인(박준-고명재-전욱진 시인)들을 이야기하다가 김민정 시인은 이런 문장을 툭 꺼내놓았다. 투명한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그들이 마치 자신의 시체를 지고 사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열심히 아이패드로 필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졌다. 삶과 죽음을 가까이 여기는 것이 나의 떼놓을 수 없는 단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얻는 감동이 10이라면, 북토크 현장에서 작가의 음성으로 듣는 감동은 100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순간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을 들뜨게 하는 시간과 공간이 있다. 비행기 엔진 소리가 잔잔히 들리는 공항 라운지가 그럴 것이고, 현실과 단절된 듯한 지난 왕조의 무덤이 그럴 것이다. 자신을 설레게 하는 기억을 많이 만들어두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일상이 마음처럼 녹록지 않아도 눈감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기억들. 마음속에 그런 여백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패트로누스가 필요할 때 온 힘을 다해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Series. 20대 직장인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한 가닥을 찾아보는 과정.
그 한 가닥이 내 노잼을 뒤흔들 수 있다면.
프롤로그_ https://brunch.co.kr/@a0bd4d3b8469449/48
연재 요일 _ 화 /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