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를 타이밍
영화를 볼 때 중간에 한 번은 밖으로 나가서 숨을 고르고 오는 편이다. 나에게 2시간 반이 넘는 영화는 꽤 집중력을 요구한다. 주변이 컴컴한 환경도 어쩔 때는 무섭게 느껴진다. 내 팔이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조금씩 좁아지는 기분이다. 그걸 스스로 느낄 때 잠깐 나가서 화장실을 들리거나 복도를 괜히 한 번 걸어보고 들어간다. 그러면 다시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 영화관의 적막을 사랑하는 씨네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렇게 영화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지난주에 본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인터미션이 있었다. 뮤지컬도 아니고 인터미션이라니? 3시간 반이 넘는 상영 시간을 고려해 관객들에게 스트레칭이라도 하라며 감독이 특별히 만든 시간이라고 한다. 이런 센스. 덕분에 1부 후반부에 급격히 줄어들었던 집중력을 기적처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번 글 대문 사진이 바로 그 영화의 인터미션 사진이다.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 나에게는 귀중했달까. 감독님 최고예요.
살면서 인터미션을 겪어볼 때가 있을까. 그래도 중고등학생 때는 일 년에 방학이 두 번이나 되었는데. 대학생 때는 심지어 방학이 두 달씩 있었는데. 직장인에게는 너무 가혹하다. 진짜로. 물론 학생 때도 공부를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발바닥 땀나게 살았지만 이건 클래스가 다르다. 자고 일어나면 어깨는 돌덩이처럼 뭉쳐있고 이 돌이 풀릴 때쯤에는 다시 화병이 도지며 온몸에 분노가 가득 찬다. 집 가는 길은 숏폼에 두 눈을 고정한 채 무념무상하게 시간을 비운다. 그렇게 5일을 보내고 가까스로 주말을 맞는다.
어떻게 하면 직장 생활 속에 인터미션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일기를 쓰는 것이다. 솔직히 하루에 5줄의 일기를 쓰는 게 엄청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펜을 들면 괜찮은 나로 포장하고 싶어진다. '아유 이 거지 같은!!'이라고 쓰고 싶다가도, 한번 꾹 참고 '모두 행복하게 마무리될 것이다~'로 적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에 불순물이 조금 걸러진다. 그리고 묘한 긍정의 기운이 솟는다. 그래 오늘 하루도 우아하게, 따뜻하게 보내보자 싶다.
그리고 요즘 내가 노력하는 건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은 평소에도 많이 읽었지만 출퇴근길에도 의도적으로 읽는 편이다. 아이패드 미니를 꼭 들고 다니면서 흡입력 강한 소설 (어제부터 <하얼빈>을 시작했다) 혹은 짧은 글로 구성된 에세이 (안희연 시인의 <단어의 집> 추천)를 읽는다. 솔직히 글로 밥 벌어먹고살기 때문에 가끔은 눈이 빠질 것 같지만, 그래도 묘한 쾌감이 있다. 오늘 내 출퇴근 90분을 버리지 않았구나 하는 기특함. 그리고 그 기특함이 조금씩 모여서 내가 내 마음에 들기도 한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의 내가 내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면 '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오래 산 건 아니지만 늘 하늘에 가까운 곳에 점을 찍어놓고 그 점을 향해 달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스스로에게 50점도 주기 힘들 것이다. 대단한 승진을 바라지도 않고 회사의 야망러들을 관조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매일의 하루를 채워나갈 알맹이들을 쌓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50점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이렇게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있지 않은가.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한 달 정도는 이 몇 개의 습관으로 나를 지탱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