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30대 직장인의 주말 일상 브이로그
남은 업무를 토요일에 모조리 처리하고 왔기에, 일요일은 그저 자유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텅 빈 자유.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는지를 보면 나의 일태기를 극복해 줄 힌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 되짚어 보았다.
점심으로는 전부터 가고 싶었던 칸다소바로 향했다. 맛있다는 이야기는 꽤 들었는데, 오픈 10분 전에는 대기하는 사람이 10명을 넘겼다. 영하의 날씨를 견디며 들어간 매장. 내부는 일본의 어느 라멘집을 연상시켰다. 바테이블에 앉아서 돈코츠 라멘과 아부라 소바를 먹었다. 물론 음식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손님이 먹는 한 그릇의 음식에 들어가는 각각의 요소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리해서 자리마다 붙여두었다. 특히 내가 맛있게 먹은 라멘의 육수에는 돼지의 뼈와 함께 해산물과 채소가 녹아져 있었다. 알고 먹으니 더 맛있달까.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기분 좋은 흥분 혹은 들뜸이 느껴졌다. (물론 내가 일하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그저 긍정으로만 받아들였다)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것을 사람들 앞에 내놓기 전의 두근거림이 느껴져서 행복한 한 끼였다.
그리고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갔다. 전시의 제목은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우환과 김환기를 비롯해 천경자, 유영국 등 한국 미술 거장들의 작품으로 꾸려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들아 잘 지내니, 아빠는 따뜻한 양털 점퍼를 입고 그림을 그려, 엄마한테 사진 보내달라고 전해주렴'. 아빠라면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가졌을 보편적인 마음.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몇 줄의 편지.
특히나 편지지가 눈길을 자꾸 잡았다.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비롯해 네 가족이 서로를 안고 있는 장면이 편지지 주변을 빼곡히 감싸고 있었다. 한때 이중섭이 은박지에 그린 그림을 보고 추워 보인다고 느꼈다. 그림 속 대상들은 서로 안고 있는데 왜 이렇게 추울까. 차가운 바람 속에서 손바닥에 종이를 올려놓은 채 손톱으로 꼭꼭 눌러가며 그림을 그리는 그의 뒷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본 몇 장의 편지에는 연둣빛 새순을 닮은 사랑만이 가득했다. 나의 추움이 너에게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필사적인 소망이 느껴졌다.
전시를 보고 나서는 북촌으로 향했다. 오늘은 오이뮤 오프라인 스토어로 갔다. 오이뮤는 한국적인 메시지를 귀여운 외양에 담는 브랜드다. 특히 '곰돌이 사전'이라는 책이 기억에 남는다. 현장에서 쓰는 일본어 표현들, 이를테면 출판에서 사용하는 세네카(책등)나 도무송(목형 따기)류의 단어를 우리말로 다듬어 모은 책이었다.
브랜드 상품들을 쭉 둘러보니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세련된 외양은 물론이고, 목적의식으로 형형한 두 눈이 떠올랐다. 외국어로 가득한 색상의 이름을 한국어로 다시 적고 이를 책으로 엮는다. 그 색깔에서 비롯된 작가들의 한 줄을 실어 책갈피를 만든다. 책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책가방에는 이태준의 문장을 새기기도 했다.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진심이 아름다웠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건대 나는 완벽한 결과물과, 그 이면의 애틋함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이 애틋함은 만든 사람이 보낸 고뇌의 시간과 연결된다. 더 좋은 음식을, 더 좋은 이야기를, 더 좋은 사랑을 건네주고 싶다는 그 마음들에서 나는 배운다. 내가 만드는 몇 줄의 이야기에도 진짜를 담을 수 있기를. 귀한 의미를 적확한 그릇에 담아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