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애착 불행을 관리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미키17> 덕분인지 봉준호 감독의 이야기가 SNS 상에 다양하게 공유되고 있다. 그중에서 눈길이 갔던 건 감독의 영화 철학 중 하나, “공포의 근원은 집착이다”라는 부분이었다. 이 문장을 만나는 순간, 마치 죽음을 앞두고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듯이 그간 내가 느껴온 수많은 공포들이 떠올랐다.
일요일 오후만 되면 나는 종종 울었거나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은 그래도 그 정도가 덜하지만 이직을 하고 몇 달간은 실제로 눈물이 고일만큼 우울했다. 토요일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일요일에 해가 지기 시작하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생각해 보면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다음 한 주간이 두려워서였던 것 같다. 잘 해내고 싶다는 집착이 점점 강해지면서 그 짧은 휴일의 반나절 마저 불안함에 휩싸여 살았던 것 같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또 한 가지는, 집에 불이 날까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쓰면서도 얼마나 허황되었는지 알아서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럼에도 얼마나 두려워하냐면 매일 출근할 때 가스불이 잘 꺼졌는지와 전기 콘센트가 잘 뽑아졌는지를 확인하는데 10분 넘게 쓴다. 분명히 꺼졌는데도 잘 믿기지 않는달까? 집착이다 집착이야. 신기하게도 이 집착은 사고처럼 마주했던 공포와 연결되어 있다.
어렸을 때 주택에 살았는데 새벽에 불이 났다. 밖에서 지나가는 행인이 “불이야” 외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왔다. 내복 바람에 패딩만 겨우 걸친 채였는데 그때 치아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덜덜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2층의 주방에서 불이 시작되었고 그 불은 가스실 쪽으로 점점 번져갔다. 그때 다행히도 119가 와서 무사히 꺼졌지만 그때 이후로 무의식 속에 집은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마주한 충격이 집착으로 자리 잡고, 그 집착이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공포를 낳는 악순환이 된게 아닐까 싶다. 매일매일의 나는 집의 안부를 살피면서 출근을 한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출근길이 2배는 더 스트레스로 가득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불안감이 심하게 올라올 때는 출근길에 버스를 타지 않고 20분 정도를 걸어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 발걸음에 집중하게 되고, 호흡이 제 자리를 찾는 기분이다.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는데, ‘나도 이런 거 되게 집착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처럼 집에 가스불을 여러 번 확인하는 사람도 있었고, 얼굴에 뭐가 묻었을까 봐 습관적으로 거울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나름의 지옥을 상상하며, 그걸 티 내지 않은 채 두려워하며, 거기에 집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