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구슬 안 모아본 사람 있나요?"

나에게 독서는 그런 것, 계속 들여다보고 싶은 것

by myownangle

그런 사람들이 있다. 책을 읽을 때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보는 사람들. 심지어 인덱스조차 붙이지 않는 사람들! 좋고 나쁘고를 떠나, 나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독서를 하는 것 같아 늘 신기했다. 나는 인덱스가 없이 책을 읽으면 약간 불안할 정도다. 좋은 문장을 만났는데 놓칠까 봐 걱정된다. 물론 그 책은 여전히 내 손안에 있고 찾으려면 언제든 찾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 몇 개의 문장을 찾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다.


어렸을 때 해운대나 광안리에 가면 늘 조개껍데기를 하나씩 주워오곤 했다. 조그만 파우치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매년 모아 온 조개껍데기와 소라 (귀에 대면 바닷소리가 들리는!), 유리구슬 몇 개를 넣어뒀다. 그러면 혼자 집에 있다가 괜히 그 파우치를 열어서 하나씩 만져보고 불빛에 비춰보면서 설레었다. 책을 읽을 때 문장에 집착하는 건, 노션으로 변환된 나의 파우치에 유리구슬 같은 문장을 몇 개씩 찾아 넣어두려는 속셈일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최애 작가가 누군지 물어봤다. 최애 작가라... 당황스러웠다. 내 주머니에 담긴 유리구슬은 너무 많은데, 이 중에 몇 개를 보여줘야 할까. 꼭 보여줘야 할까? 가장 큼지막하고 반짝거리는 구슬도 있지만, 손톱만 하게 작아서 공들여 봐야 하는 투명 구슬도 있는데. 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인데 어떤 걸 꼽아서 보여줘야 하지. 그렇게 마음속에서 공을 굴리다 보니 화제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있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을 때는 박연준 시인과 신형철 평론가의 책을 읽는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땐 고명재 시인의 글을 찾아 읽는다. 바쁘다 바빠 서울살이 생활로 지쳐갈 때는 박상영 소설가의 책을 읽는다. 그러면 조금 웃음도 난다. 내 옆에 말 잘하는 선배가 앉아있는 것처럼. 세상에 대한 애정이 사그라들 때는 홍세화 선생과 정혜윤 PD의 책을 뒤적인다. 그리고 이 책들을 찾아 읽을 힘조차 없을 때는 노션을 열어 독서 기록들을 훑어본다. 그러면 조금 진정된다.


나에게 독서는 이다지도 아름다운 구슬을 모으는 일과 같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사라질까 싶어 얼른 채집해 둔다. 그리고는 틈틈이 꺼내보면서 물티슈로 조개껍데기를 닦아주듯 그렇게 아낀다. 그렇게 소중한 일이다. 그래서 어색한 사람들과 둘러앉아 적막을 메우기 위한 질문으로 적절하지 않다. 좋아하는 꽃은, 브랜드는, 색깔은 이런 질문과는 무게가 조금 다르다. 어떤 질문은 유쾌하지 않는 곁눈질이 되곤 한다.


덧) 요 며칠 나는 <좋아하는 마음 없이 _ 2025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구슬 몇 개를 모았다. 희생하는 삶에 대해, 좋아하는 마음 없이 이뤄지는 관계에 대해, 엄마의 변화에 대해 또 많은 힌트를 얻었다. 이번 봄에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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