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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Mar 07. 2024

강원도의 힘

강원도의 힘     

 처갓 집이 강원도 홍천이라 강원도에 대한 애착이 많다. 내가 자라온 경북 북부의 산골 마을과 별 차이가 없지만, 강원도를 여행하고 오면 강원도의 위대한 힘이 보인다. 내 나이 45세로 직장생활 17년 차라 아직은 여유 있는 휴가나 여행보다는 일에 열중한다. 교사이니 방학이 있어 직장인의 부러움을 받지만, 막상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담임과 교과를 지도하는 교사로서는 이런 말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여름 방학은 아예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봄 방학은 여유가 있으나 우리 학교는 2월에 새로운 담임을 배정하기에 3학년 담임하면 봄 방학도 매일 출근해야 한다.     

  교직을 시작하고 담임을 맡은 지 15년 이상이 되니 세상 돌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고 교사의 역할과 교육관도 틀이 좀 잡히고 취미생활에도 눈을 돌리는 시기이며, 가족의 화합을 위해 아버지의 역할에 관심을 쏟을 나이이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마치는 시간에 테니스를 치고 집에 와서 아이들과 책을 읽는 여름 방학이다. 가족 여행을 가지 못한 미안함에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아내가 초등학교 동기회에 좀 갔다 오겠다고 한다. 나는 무릎을 쳤다. 강원도가 처가라도 늘 바쁘다는 이유로 잠시 가서 장인 장모님께 인사드리고 내려오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강원도 전역을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여행 계획을 잡아 식구에게 발표했다. 전 가족이 아주 반가운 미소로 화답한다. 오랜만에 가장(家長)의 뿌듯함을 느낀다.     

 처음 강원도 갈 때는 고속도로로 안동까지 가서 안동에서 5번 국도를 따라 영주와 소백산 고갯길을 넘어 단양의 아름다운 계곡 따라 제천을 지나 치악산을 비껴가면 원주가 나오고 원주를 지나 횡성을 넘어서면 삼마치 계곡이 나오고 곧 처가에 도착한다. 그 시간이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계속 달려가면 8시간 만에 도착한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고는 4시간이면 휴식 취하고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경북 북부도 여행 계획에 넣었다. 8시간 걸리는 시간 때문에 좋은 여행지를 그냥 지나친 것을 이번에는 모두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계획은 고속도로로 가다 풍기의 소수서원, 부석사를 보고 청주 댐에서 관광선을 타고 구경하고 처가 가려했으나 출발 후 한 시간 만에 장모님의 호출에 경상도, 충청도 여행을 취소하고 강원도로 직행(直行)했다. 지금부터 강원도의 힘이 무엇인지 경험한 바를 펼쳐 본다.

 강원도의 힘 중의 하나가 먹거리이다. 처가 식구와 같이 간 곳이 춘천의 어느 한적한 식당인데 춘천 닭갈비와 막국수 집이다.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맛집이다.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 특산품이 외지에서 먹는 그것보다는 훨씬 맛이 있다. 야트막한 동산, 밑에는 의암호수 끝자락이 보이고 야외의 천막에 길게 늘어뜨린 식탁에 앉아 닭고기와 양배추 붉은 양념장이 지글거리며 익어가는 춘천 닭갈비와 식사로 나오는 시원한 막국수는 천하의 일미이다.

강원도 맛 자랑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가 홍천의 고추장 삼겹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양촌리란 마을 전체가 고추장 삼겹살 식당을 운영하는데 멀리서 보면 저녁 석양의 붉은빛과 흰 연기가 어우러져 식감을 더 돋운다. 타 도시에는 볼 수 없는 정말 맛있는 음식이면서 가성비가 매우 좋다는 장점도 있다. 횡성 한우와 진부령의 황태가 있지만, 전국 어디서나 사들일 수 있기에 제외한다. 농산물로는 찰옥수수, 감자, 고랭지 채소는 미식가의 침을 흘리게 한다. 강원도 먹거리의 별미로 메밀전병과 김치만두를 추천한다. 강원도의 토지 특성상 메밀이 많아서 그런지 메밀 음식이 많다. 메밀전병은 봉평장에서 맛보았는데 정말 맛이 일품이다.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김치만두는 식당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집 식구들이 동원되어 수작업하였기에 가치가 높아진다. 김치만두 속은 옛날에는 꿩고기로 주로 했지만, 지금은 돼지고기, 김치, 숙주, 당면, 두부, 다양한 양념으로 만든다. 멸치 육수에 끓여서 먹는 맛은 천하일품이다. 여기에 살얼음이 살짝 얼린 동치미 국물이 있으면 밤새 폭음도 말끔하게 해장된다.     

 강원도의 힘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연경관이다. 새벽 4시에 출발하여 속초 해돋이를 가기로 했다. 밤늦게까지 동창회하고 온 아내와 처가 식구 9명이 출발했다. 너무 일찍 출발했는지 이야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모두 잠에 곯아떨어진 모양이다. 1시간 정도 지나 미시령 고개 정상 주차장에 도착하니 1m 앞을 분간하기 힘이 든다. 운무(雲霧)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영화에서 신선이 구름 위를 걸어가는 모습이 아니라 차를 타고 구름 위를 달리는 모습이다. 짧게 산 인생이지만 이것을 못 보고 죽으면 얼마나 원통할까를 생각해 본다. 경험한 것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아쉬운 내 짧은 글에 한숨이 나온다. 잠든 식구를 깨워 평생 볼 수 없는 미시령 운무를 보게 하고는 다시 속초항으로 출발했다. 해돋이를 성공적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오늘도 미시령의 운무를 보니 수평선의 해가 반쯤 얹힌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고 판단하지만, 계획에 있으니 간다. 바닷가 날씨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니 한편으로는 기대하며 운전한다. 잠시 시끌벅적한 환호가 있더니 금세 조용해진다. 아직 첫새벽이라 일출은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속초 해변의 안개가 가득하다. 속초항 주차장 앞자리에 차를 세우고 해돋이를 기다리다 잠시 졸았다. 눈을 뜨니 안개 걷히고 날이 밝아 오면서 해돋이가 시작된다. 식구를 깨워 장관을 보게 하고 소원도 빌어본다. 가족의 평화를 기원한다. 아침 식사는 속초항에서 매운탕으로 속을 풀고 동해안 낙산사의 의상대, 경포대 해수욕장을 거쳐 정동진 선 크루즈 호텔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펼쳐지는 동해안의 바다는 우리의 마음을 풍족하고 대담하게 해 준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현실적으로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았을 경우 이 길을 달려보라고 하고 싶다. 속이 확 트이는 기분이다.     

 강원도의 또 다른 힘은 계곡의 아름다움과 청정 자연환경이다. 강원도에서 운전하다 보면 지역 불문하고 같은 길을 가는 것 같다. 철원, 화천, 영월을 가도 똑같다. 그 이유가 계곡 따라 길이 있기 때문이다. 비 온 후의 여름 계곡은 강원도 전체의 정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월의 남한강에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청렴 포의 단종애사를 느끼며 유속이 완만하고 물이 맑은 남한강에서 래프팅 체험하고 자연석에 새겨진 김삿갓 시비를 보노라면 자연이 주는 선물이 이리도 “좋구나” 하고 탄복을 찾아내게 한다. 강원도 계곡은 영월, 화천, 양구, 철원을 가보면 오염이라고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수려한 자연경관에 또 하나의 재미를 주는 것이 홍천강 낚시 체험이 으뜸이다. 많이 잡지는 못하지만 시원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던진 낚시에 아주 가끔 올라오는 민물고기는 손맛은 물론이고 여행과 체험을 만끽하게 한다.     

 강원도의 또 하나의 힘은 문학관이다. 우리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서 넣은 여행 계획이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이효석 문학관은 찾았다. 우리 아이들도 읽은 책이라 설명이 필요 없다. 오히려 문학관에서 조금 떨어진 봉평장에 갔더니 메밀로 만든 국수, 메밀전병, 메밀 전 등 다양한 음식으로 식사하며 옛 정취를 느낀 문학적 체험이 싱그러웠다. 아직 피지 않는 메밀밭을 보면서 가을이 되면 새하얀 꽃과 달빛의 어울림을 상상하니 감성이 저절로 감흥이 일어날 것 같다. 처가에 돌아오는 길에 원주에 박경리 문학공원도 들렸다. 박경리 원로 작가가 사는 곳으로 토지를 집필하기 위해 공원을 만들며 실제적인 체험을 하면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 곳이다. 토지의 무대인 하동의 최 참판 댁을 방문했고 ‘토지’ 드라마를 보고 책을 정독했기에 박경리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2박 3일의 여행이지만 강원도의 힘을 보았다. 먹거리, 기후, 자연환경, 계곡의 물이 모두 맑고 깨끗한 청정자원임을 알 수 있다. 과학기술이란 힘으로 인간의 편리성과 풍족함을 채워오던 인간에게는 휴식이 절대로 필요하고 휴식은 인위적인 그것보다는 자연에서 찾을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안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개발되지 않은 강원도는 우리의 가장 친숙한 휴식의 공간이 될 것이다.     

 홍천에서 휴가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이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은 맑다. 아내도 만족했는지 옆에서 아주 맑은 음성으로 조곤조곤 대화해 준다. 아이들도 좋았다고 하면서도 아들은 게임을 하지 못한 2일이 무척 아쉬운 모양이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겨울에 얼음과 추위 체험과 산골 숲 체험을 하려고 생각해 본다.


                                                   2004. 8. 19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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