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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Mar 12. 2024

작은 음악회

작은 음악회     

 태어나서 자란 곳이 아니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타향이고 객지(客地)가 된다. 우리나라는 1960년 말에서 1970년대에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면서 많은 사람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고 힘든 객지 삶을 살다 보니 수구초심(首丘初心)은 당연하리라 생각한다. 이 당시의 유행가 가사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가장 많음을 볼 때 얼마나 힘든 객지 생활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산에 터 잡아 살아온 세월이 30년이 흘렀다. 내가 정착한 가장 오래된 곳이다. 그래도 아직 마산은 객지이고 타향이며 퇴직하면 떠나야 할 곳으로 생각한다. 처음 마산에 내려와 같은 학교의 여 선생님 남편이 ‘대건 고등학교’ 출신이라며 동문회가 있다고 소개받아 마산 무학산 등반 동문회 모임에 처음 참석한 후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한 ‘재 경남대건 동문회’가 30년이 되었다. 처음은 아버지 같은 대 선배님과 담배조차도 피우기 어려운 선배님들의 모임에 참석했는데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우리 동기가 동문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또 동문 선후배의 인간관계를 배제하고 현재의 객지 생활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동문 선 후배의 각별한 인간관계임을 보여 준다.     

 2018년 9월 27일 ‘재 경남대건 동문회’ 월례회가 열렸다. 보통 월례회는 저녁에 식당에서 조촐한 소주 파티를 하는데 이날은 화왕산 자락의 회장님 별장에서 숯불 돼지 바비큐와 송이 파티, 작은 음악회를 하려고 집행부에서 기획한 날이다. 12시까지 별장에 도착하라는 총무님의 문자가 왔다. 마산에서 친구와 부부 동반으로 동행하여 휴게소에서 커피도 마시고 화왕산 관룡사에 가서 부처님께 삼배도 드리고 12시 조금 넘어 도착하니 낯익은 선후배님들이 보인다. 유도 9단인 모임 최고 선배님은 아직 60대 같은 모습이고 교장 출신 선배 부부, 농사일하시는 선배 부부, 전국에서 최고로 작명을 잘한다고 하시는 ‘거림 작명 연구소’ 소장님, 오늘 작은 음악회를 열어주실 선배님 부부, 몇 년 전에 창원에 내려오신 선배님, 우리 동기 부부 4팀, 총각 같은 50대 중반 교수님 부부, 대만에서 직장 생활하다 휴가 왔다가 참석한 멋쟁이 후배, 동문회 살림살이와 잡다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동문회를 이끄는 총무 부부, 오늘 모임 막내이지만 50이 넘은 연구소 책임 연구원이 모여서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었다.     

 박사님이 곱게 굽은 숯불 바비큐와 소주 한잔을 한다. 어제저녁 먹은 소주의 잔존이 남아 있는데 또 술을 먹느냐고 예쁜 표정으로 주의를 환기하는 부인이 있어 소주가 더 맛이 있다. 전부 차가 있어 음주 운전하지 않으려고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산에서 직접 채취한 송이가 도착했고 귀한 음식이라 아껴서 조금씩 맛을 보았다. 향긋한 송이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향을 맡은 우리는 최소한 3년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좋은 음식으로 즐겁게 동문 선후배 간의 삶을 이야기하니 얼굴에는 ‘행복해’하는 표정이 역력할 때 작은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옛날에 음악회 간다고 하면 대단한 사람으로 알았다. 특히 클래식 음악회는 부유하고 대단한 식자(識者)만이 참석할 수 있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일반인은 일반대중 가수의 허름한 삼류 극장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에 다니는 것이 상식처럼 생각했다. 최근에는 음악회가 대중화되어 있다고 해도 클래식 음악의 난해함으로 쉽게 접근이 어렵고 일반 대중 가수들의 공연도 엄청난 입장료에 선뜻 가기 쉽지 않다. 축제가 열리는 곳에 많은 가수가 초청되어 노래를 듣지만, 감흥은 별로 없다. 오히려 TV에서 방영되는 ‘열린 음악회’가 더 감흥이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축제장에 잘 가지 않는다. 오늘 우리 동문회에 ‘작은 음악회’를 주도할 선배님은 우리나라 국채보상 운동의 주역인 서상돈 님의 증손자로 창원의 중견 기업을 경영하다가 어떤 사정으로 그만두시며 그 화(anger)를 극복하기 위해 음악을 한 분으로 지금은 합포구 청 앞 광장에서 퇴근길 음악회에 음악 봉사로 색소폰을 연주하시며 종교단체나 축제 행사장 등 다양한 곳에서 연주하고 계시는 분이다.      

 아담한 화왕산 자락에 비가 올 듯 말 듯하고 하늘 얕은 곳에 구름이 많은 날씨에 잔디가 유난히 푸른 별장 광장에서 색소폰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에 문외한이라 색소폰 연주가 완벽한지는 몰라도 그 흥에 손뼉도 치고 몸도 가볍게 흔들고 아는 노래라 잔잔하게 흥얼거린다. 재미가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표정이 모두 상기되어 있다. 한 곡의 연주가 끝나고 건배도 한다. 또 한 곡이 감미롭게 연주된다. 소주가 참 달콤하다. 그만큼 멋진 연주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 동문을 대표할 노래 실력의 소유자가 구수한 가요무대 노래를 한다. 그리고 친구 부인이 가벼운 율동으로 노래한다. 전부 정겨워한다. 엄숙하고 열정적인 음악회가 아니라 내가 흥겨워하고 내가 즐거우며 손뼉도 치고 환호도 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음악회를 했다. 나는 이것을 ‘작은 음악회’라 칭하고 싶고 그 어떤 음악회보다 더 멋진 음악회라고 하고 싶다. 가슴에 남은 음악회가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음악회가 끝이 나니 흡족한 표정으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대화한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간 시간이다. 송이 라면을 준비하고 있다. 보통 라면 10개를 끓이려면 가스레인지에서는 라면이 퍼져 맛이 없다. 여기서는 장작불로 솥에다 라면을 끓인다. 팔팔 끓는 물에 라면 넣고 3분 정도 끓여 송이버섯 넣고 약간의 뜸을 들이고는 먹는다. 모두 맛있다고 환호한다. 국물까지 깨끗하게 먹고 대청소한다. 오후 4시가 되어도 갈 생각이 없는 듯하다. 헤어지자고 악수하고 30분이나 지나 각자 집으로 간다. 회장과 총무의 기획으로 이루어진 작은 음악회는 그 어떤 음악회보다 가슴에 감동을 준 이벤트였다. 참여하여 주신 동문님들이 자랑스럽다. 모두 ‘힐링(healing)’이란 선물을 받아 가는 날이었다.     

                                      2018. 9. 28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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