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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Mar 15. 2024

여행은 즐거워 (초등학교 50주년 수학여행 다녀와서)

여행은 즐거워 (초등학교 50주년 수학여행 다녀와서)


 삶을 살면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공통분모라 해도 시비(是非)를 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쾌락의 총량이 많으면 큰 행복감을 맛보게 되고 쾌락의 양이 적으면 관심을 적게 두는 것도 일반적인 행위의 지침이 될 것이다. 교육을 통해 쾌락의 양을 추구하면서도 정신적인 쾌락을 가미하여 우아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만이 가지는 특징일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추구하는 쾌락의 종류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과학적 근거나 심리학적인 전문성을 떠나 보통 사람이 많이 추구하는 쾌락에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의식주 해결에서 오는 쾌락일 것이다. 의식주 중에서도 가장 친근하게 가장 가까이서 자주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이 맛있는 음식 먹기일 것이다. 의식주가 최소한으로 해결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쾌락을 추구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고통이 오는 것이 많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공통 주제나 공통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사람의 쾌락에서 으뜸이 될 수 있다. 가족은 선택이 아니라 이것에서 벗어나지만 남, 여 간의 사랑이나 친구와 신뢰, 소통되는 사람과의 대화, 학문적인 공동 작업이 여기에 속한다. 삶에 여유가 조금 생기면 문화 체험이나 환경 체험도 중요하다. 인간의 삶의 모습이 담긴 것이 문화이고 인간이 극복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주변 환경이기에 체험을 통해 자기의 삶을 개척하는 것이 사람에게 양질의 쾌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행이 이 체험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통신 기술과 교통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경제적 여유와 생활의 여유가 동반 성장하며 여행에 많은 애착을 갖게 되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에는 여행을 다닌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조선의 선비들이 금강산 관광이나 왕족들의 온천 관광이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여행은 있는 사람의 특권임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일반 농민들은 생업에 1년 365일을 매달려야 했고 해가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생활에서 24 절기에 맞추어 세시풍속을 즐기고 농사일이 끝나고 지주(地主)들이 불러주는 남사당패나 놀이패의 공연 보는 것이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에 철도가 개통되면서 여행객이 많아짐을 볼 수 있다. 영상을 보면 창경궁 동물원에 전국에서 모여든 여행객이 엄청 많음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나의 첫나들이는 진해 벚꽃 관광이다. 작은아버지의 군대 동기들이 ‘계(契)’를 만들어 효도 관광으로 간 여행인데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참여한 여행이다. 단체로 찍은 사진에 1965년 4월로 날짜가 있다. 내 기억에는 진해에 큰 군함이 생각나고 어느 부부가 과일을 준 것이 기억이 난다. 훗날 어머니 말씀에 내가 배탈이 나서 아이 업고 다닌다고 고생했다고 한다. 너무 어려 여행이라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우리 세대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수학여행이 여행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수학여행도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못 가는 학생이 다수가 있었던 시절이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생각해 본다. 1973년 6학년 수학여행이다. 관광버스에 부모님 모시고 갔다. 우리 반이 42명인데 2/3 정도 간 것 같다. 두 사람 앉은 좌석에 3명씩 앉아 갔던 기억이다. 1971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대구에서 경주까지 고속도로를 가는데 우리 버스는 50km도 못 가는 버스고 고속버스는 100km를 달려 총알보다 빠름에 감탄한 기억이 있다. 경주 불국사와 황성공원을 거쳐 포항항구에 가서 바다를 보았다. 산골에 사는 우리는 바다를 처음 본 친구도 있었다, 그만큼 수학여행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선물이었다. 1975년 중학교 2학년은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2박 3일 일정으로 서울로 갔다. 나도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이기에 상당히 설레는 마음이었고 그 자체로도 흥분될 일이었다. 기차도 처음 타본 기억이다. 경복궁과 창경궁 비원을 구경한 기억이 있다. 서울 오가는데 기차 타는 시간이 많아 서울은 몇 곳도 구경하지 못했다. 그래도 시골에서 서울 구경한 것으로도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다. 1978년 고등학교 2학년은 수학여행이 설악산이었다. 그 당시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는 전부 설악산에 갔다. 숙박시설이나 교통편이 설악산이 최적이었는 모양이다. 설악산에서 일탈 행위 하다가 담임 선생님에게 죽을 만큼 맞은 학생도 있고 처음으로 캠 파이어도 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나이가 되니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의 여행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수학여행 후 친구들과 여행의 후일담을 많이 했던 기억이다.     

교직에 있으면서 수학여행 인솔 교사가 되었다.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고 다음이 학생의 즐거움이다. 1990년이라도 열악한 환경조건에서 수학여행을 갔고 3박 4일 동안 잠은 5시간도 채 못 자고 버스 이동에 잠깐씩 졸았다. 책임감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수학여행의 질도 좋아져 비행기 타고 제주도를 다녔고 현재는 정부에서 수학여행 비용도 전부 납부해 준다. 그래도 학생들을 인솔해 보면 여행에는 별 관심도 없고 핸드폰 하고만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다. 자기가 원하는 여행이 아니었기에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을 살펴보면 부모와 해외여행을 다녀서 국내 여행은 별 흥미가 없어서 핸드폰과 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2023년 2월 26일 초등학교 수학여행 50주년 기념으로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 간 곳으로 여행 일정을 잡았다. 대구에서 출발하여 경주 안압지, 불국사 구경하고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 구경 후 점심 식사로 회와 대게를 먹고 간절곶을 돌아보고 포항의 스카이워크 공원을 구경한 뒤 대구로 돌아온다는 여행 일정이다. 초등학교 동기 13명이 참석하기로 했다. 9시 30분 출발인데 9시 15분에 전부 모여서 바로 출발했다. 안압지는 입장료 1인 3,000원씩 지불하고 갔지만 그리 볼 것이 없는 모양이다. 기념사진만 찍고 불국사로 향했다. 불국사는 개인적으로 많이 다녔지만, 동기들과 옛날이야기 하면서 걷는 시간이 좋았다. 다보탑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경내를 대충 구경하는 데 1시간이 소요되었다. 큰 사찰임이 틀림없다. 예상 시간보다 40분 늦게 출발하여 구룡포로 가는데 구룡포 진입에 정체가 심하다. 식사 예약 시간 30분 지나 식당으로 갔다. 소주잔을 앞에 두고 싱싱한 회에 값비싼 대게를 먹으니 50년 전의 김밥이 생각났다. 이구동성으로 어린 시절 배고픔을 이야기한다. 식후 일본인 가옥 거리와 간절곶을 관광하고 시간 관계상 스카이워크는 생략하고 대구로 향했다. 동기 13명이 기분 좋은 표정이고 모두 좋았다고 이야기하면서 다음에 또 여행을 가자고 한다.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 나는 주로 부부 동반 여행을 많이 간다. 가까운 친구와 부부 동반은 시간이 길어도 즐거운 일이 많지만,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과 여행을 가면 가끔 꼴불견 행동을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있다. 공자의 ‘서(恕)’ 사상을 교육한 후에 여행을 같이 가야 할 사람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여행을 다닐지 모르지만 즐거운 여행을 다니고 싶다. 


                                                             2023. 3. 6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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