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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Mar 20. 2024

2박 3일

2박 3일

                              

 귀(貴)하고 귀한 딸이 해외 근무를 해야 한다고 한다. 회사 규정상 해외 근무를 2년은 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작년에 해외 근무 나가기 싫어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직속 과장과 이사님이 사퇴 면담하면서 퇴사하지 말 것을 요청하여 받아들인 모양이다. 해외 근무를 위해 전셋집을 정리해야 되는데, 국가적으로 문제가 된 전세 사기범의 집이라 보험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2월 18일 출국으로 잡아 놓고 설날을 딸 집에서 가족이 보냈는데 보험처리가 늦어 3월 18일로 출국이 늦추어졌다.     

 평소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해결하고 부모에게 기대지 않는 딸인데 이번에 2년 해외 근무하려니 마음이 착잡한가? 엄마에게 서울 좀 올라오면 안 되느냐? 묻는다. 옆에서 내가 전화 목소리 듣고 있다가 아빠도 조퇴하고 무조건 올라간다고 이야기하니 딸이 너무 좋아한다. 전세금을 보험회사에서 돌려받고 출국 준비하는데, 밤이 늦도록 근무한다.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니 퇴사를 막았다고 생각했다. 더 반가운 것은 아들도 누나 가는 길에 배웅한다고 한다. 반일 연가를 내고 기차를 타고 온다고 한다. 딸은 가족이 2일 동안 지낼 숙소를 마련하고 가족 공동 게시판에 올려두었다.     

3월 15일

 조퇴를 신청하고 수업을 오전에 당겨서 했다. 점심 먹고 여유 있다고 생각했지만, 고속버스터미널에 간당간당하게 도착하게 생겼다. 시내버스를 탔는데 고속버스터미널의 다른 방향으로 가서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뛰어가서 시간을 맞추었더니 아내가 반겨준다. 넓은 의자에 기대어 잠을 자려고 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들은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고 하고 딸은 오늘도 회사 일이 바빠서 좀 늦을 것 같아 7시 정도 끝날 것 같다고 한다. 저녁을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는다고 예고했는데 취소하고 형편에 따라 결정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3시간 55분 걸리는 운행 시간에 2시간 30분 정도 잘 가더니 정체가 시작되었다. 도착 예정 시간도 1시간 30분 늦게 표시되었다. 아들에게 전화하여 누나 짐이 많으니 누나 회사 앞에 가서 도와주라고 이야기하니 기차는 정시에 도착하여 벌써 회사 앞 커피집에 있다고 한다. 버스 탄 할머니가 정체가 오래되니 생리 현상에 힘들어한다. 우리도 나이가 더 들면 당할 일이라 마음고생을 함께 해 준다. 그래도 버스 기사가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갓길에 세워 할머니의 고민을 덜어 준다. 고마운 운전자이다.      

 7시 30분에 하차하여 지하철을 타니 딸이 퇴근하여 숙소로 간다고 하면서 ‘공덕역’ 10번 출구로 오라 한다. 옥수역에서 바꾸어 타고 공덕역 10번 출구로 가니 딸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시간이 8시다. 친구 집에 가려니 9시 마감이라 포기하고 숙소에 가서 저녁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의논하기로 한다. 아내가 오전에 밭에 가서 미나리와 몇 가지 푸성귀를 장만하였다. 간단하게 수육 하나 시켜 저녁을 먹는다. 반주가 필요한 내가 마트에 가서 술을 준비하자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늘 마누라와 다투는 일인데 서로 양보가 안 된다. 그래도 식구라서 금방 좋은 대화로 분위기가 호전되었다. 회사 일이 바빠서 처리하지 못한 여러 가지를 해결하려고 한다. 주민등록 주소 이적하기, 비자 발급 신청서 작성, 휴대전화 로밍하기, 기타 등등 많기도 하다. 침착하게 세심하게 일 처리 하는 딸이 자랑스럽다. 오전 수업과 서울 이동에 고단하였는지, 반주 한잔한 내가 10시 좀 넘어서자, 이불을 깔고 잠을 자려고 준비한다.     

3월 16일

 새벽 이른 시간에 잠에서 일어났다. 식구들이 곤하게 자고 있다. 될 수 있으면 식구들을 잠을 많이 자게 하려고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갔다. 숙소 앞에 경의선 숲길을 어제저녁에 보아 둔 것이 있어, 나가 보니 개를 들고 산책 온 사람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상대하는 어려움보다 반려견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많다. 젊은 사람이 더 많다. 경의선 숲길은 ‘새창 고개’라고 팻말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선혜청 새 창고를 짓고 붙인 이름이다. 30분 정도 ‘소요유(逍遙遊)’를 즐기다가 숙소로 와 보니 나갈 때 그 모습이다. 다시 잠자리에 누워 식구들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본다. 10시 30분이 되자 모두 일어난다. 아침을 밖에 나가서 ‘콩나물국밥’을 먹으려다 아이들이 어릴 때 먹었던 참치 비빔밥을 먹기로 하고 준비하여 먹으니 전부 옛날 맛이 난다고 좋아한다. 오늘 일과는 남산을 여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남산 입구에 내려 계단을 타고 1.3Km 정도 걸었더니 팔각정이 나온다. 커피 한잔씩 들고 타워를 구경시키려 했는데 아들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막무가내식으로 일을 추진한다고 핀잔을 받는다. 여수에 가서 케이블카를 타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며 사과했다. 30분 정도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하다가 버스 타고 광화문으로 내려왔다. 딸이 휴대전화 요금을 조정하기 위해서다. 해외 근무 가서 테니스 치고 싶다고 백화점에 테니스화를 구매하려고 했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백화점에서 내려와 명동거리 구경을 갔다. 뉴스 화면을 통해 본 명동거리에서 간단하게 요기하고 명동 성당으로 갔다.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명동 성당은 웅장하였다. 대구의 계산 성당과 모양새는 같지만, 규모에서 더 큰 것 같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잠시 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딸이 해외 근무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하고 귀국하길 바라는 기도였다. 체력에 고갈이 온 것 같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저녁 식사는 원래 계획은 딸 회사 근처에 있는 소고기 파티였으나 계획을 수정하여 엄마표 국수를 먹기로 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계획 수정에 반발한다. 아버지가 너무 아끼려 한다고 말하고, 딸의 효도를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행위라고 항의했다. 소고기 먹으러 가는 것도 힘들고 해외 가면 먹기 힘든 것이 국수라 국수를 먹자고 설득하여 아들의 동의를 받았다. 세상 편리한 것이 숙소에 앉아 시장을 보았고 30분 후에 숙소 문 앞에 재료가 도착했다. 그 시간에 딸은 친구가 숙소 가까이 와서 만나러 갔고 저녁 식사 준비는 업무 분담하여 아들과 내가 육수랑 고명을 준비하고 국수 삶는 것은 아내가 하기로 했다. 잠시 후 딸이 돌아왔고 아내가 국수를 삶아 만찬이 시작되자 저녁 식사에 약간의 제동을 걸었던 아들이 맛있다고 두 그릇을 먹는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를 끝내고 담소를 시작한다. 우리 식구들은 토론도 잘하고 담론도 잘한다. 그래서 즐거운 시간이다.     

 저녁 9시 넘어가자, 딸이 마지막 짐 정리를 했다. 모든 짐 정리가 끝나는 시간이 11시가 되었다. 내일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 30분에 아들 기차 타러 서울역에 가고 5시 40분에 숙소에 나와 공덕역 5번 출구에서 딸은 공항버스를 타고 딸이 버스 타면 우리는 고속버스를 타로 가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와 딸이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린다. 아들 씻고 나머지는 가볍게 세수하고 머리만 감는다. 그리 준비하여 아들이 5시 30분에 숙소를 나가고 누나가 택시를 호출해 준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방 안에 앉아 택시를 호출하는 시대이다. 40분이 되자 우리도 짐을 챙겨 숙소 정리하고 나왔다. 딸의 가방이 생각보다 무거워 두 사람이 낑낑거리며 도로로 올려 공항버스 타는 그곳까지 15분이 소요되는데 아침을 먹지 않아서 식은땀이 흐른다. 나도 처음에 아들하고 기차 타려 했던 생각이 미안해진다. 고속버스로 바꾸어 딸을 배웅한 일은 너무나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공항버스 도착하고 딸과 포옹하고 배웅했다. 딸이 버스 타자마자 카카오톡이 와서 보니 택시를 호출하였으니 지하철 타지 말고 택시 타고 가란다. 3분 후에 도착한다는 내용이다, 세심한 딸이 대견하고 감사했다. 마산 내려오는 버스에 앉아 딸을 생각하니 해외 근무에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잠시 눈물이 난다.     

 마산 도착하여 쉬고 있으니 오후 3시 45분에 비행기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다. 다음 날 저녁 늦은 밤에 영상통화가 와서 아주 잘 적응하고 한국이나 외국이나 별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떠날 때 가족이 없었으면 우울하거나 공황장애가 올 수 있었는데 가족 덕분에 모든 일이 해결되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역시 우리 딸이다. 마음이 편해진다. 잘 근무하고 와라 자주 연락하자.                        

                                    2024. 3.19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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