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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Mar 14. 2024

맛 기행(2박 3일)

맛 기행(2박 3일)      

 대학 시절에 중학교 때 읽은 단편 소설이 TV를 통해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지금은 제목도 모두 잊었지만, 내용은 중년의 남자가 무작정 여행을 떠났는데 동해안 철 지난 해수욕장에 횟집 여주인과 마주 앉아 횟집 여주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주는 내용인데 가끔 소리 내어 치는 파도 장면과 갈매기의 울음소리와 횟집 여주인의 흐느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장면에 매료되어 나도 언제 저런 여행을 갈 수 있을까? 하고 자주 생각했다.      

 2009년 11월 말이다. 올해는 너무 바빠 일주일이란 시간이 하루에 비유될 만큼 빨리 지나갔다. 학교 동료 교사로 평소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학교 이야기. 학생 이야기, 인생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선생님이 있다. 1997년도에 보충 수업비를 받을 때 얼마씩 적금 들어 부부 동반으로 동남아 여행을 다녀와 평소 술 먹고 애태운 집사람들의 마음도 풀어준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올 2학기는 한 번도 술좌석을 하지 못했다.      

 11월 말에 회식하면서 여행을 가자고 누군가 제안을 한 모양이다. 나도 동의했다. 그런데 또 바쁘게 살다 보니 잊어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술을 먹으면서 그냥 한 소리로 생각하여 기억이 없다는 편이 맞다. 12월 중순에 망년회(忘年會) 하면서 여행 이야기가 나와 까마득히 잊어버린 기억을 되살렸다. 같은 학교 근무해도 나는 바쁘고 두 분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데 내가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방학 중 방과 후 수업 때문이다. 나는 방학은 방학이고 무조건 내일까지 300,000원을 내 통장으로 입금하고 여행 방향이나 내용은 두 사람에게 일임했다. 그런데 두 사람 간에 이견(異見)이 생겼다. 한 사람은 전라도 맛 기행을 원했고 한 사람은 강원도 풍경과 얼음 축제에 가고 싶다고 한 것이다. 조율(調律)은 내 몫이다. 갑론을박(甲論乙駁)하다가 전라도 맛 기행을 택했다.     

 기실 연말은 무지 바쁘다. 생활기록부를 완성해야 하고 시험 채점에 내년 3학년 학습 계획과 3학년 진학, 겨울방학 우수 학생 진학지도 프로그램 짜기, 방과 후 학습 계획 등이다. 올해 우리 학교에서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경영학부에 학생 1명이 진학했다. 그래서 내년에도 꼭 1명 이상 진학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힘들어하는데 교감은 3학년 학년 부장을 12월에 미리 정해 놓고 나와 마주치면 온갖 계획을 물어본다. 엄청난 스트레스다. 내 스타일은 맡은 일은 내가 주도하여 끝까지 관철해야 하는데 이번 여행은 총무를 자처하고도 하나도 준비된 것이 없다. 12월 28일부터 30일까지 2박 3일 동안 전라도 쪽으로 여행을 간다는 사실 하나만 알고 있을 뿐이다.     

 12월 26일 노는 토요일이다. 우수 학생 지도를 위해 학교에 와서 자율학습 지도를 하다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30분 정도 인터넷으로 전라도 전역을 서핑했다. 전라도를 고집한 선생님의 일정은 목포에서 세발(細拔) 낚지, 홍어회, 삼합을 먹고 변산반도 쪽 여행을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인터넷 서핑으로는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코스가 없어 반대하지 않았다.     

 2009년 12월 28일 방학식을 했다. 11시에 학교를 마치고 1년 동안 선생님들 수고하셨다고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식사 초대가 있었다. 종전에는 친목회에서 1박 2일로 가까운 온천에 가서 회포를 푸는데 올해는 다수의 선생님이 반대하여 온천은 가지 않고 점심 식사로 대처하는 모양이다. 간단하게 식사하고 3명이 2시에 모여 출발했다. 목포 방향으로 가기로 되어 있지만 차 안에서 즉석 회의가 열리고 목포는 거리가 멀고 일정 진행상 별로 견학할 것이 없다는 이유로 전주로 가기로 의견 통합했다. 이번 여행은 ‘전라도 맛 기행’이기에 전주비빔밥이 저녁 식사로 정해졌다. 내비게이션을 장착했지만, 쉬운 길이라 생각하고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에서 장수 나들목에서 전주로 가야 하나 이야기하다 금산 인삼 휴게소에 가서야 잘못된 길임을 알았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도로가 비교적 잘된 국가가 아닌가. 고속도로 여행은 아니다 싶어 약간의 불만이 있던 차에 국도(國道)로 간다고 하니 마음속으로 희열이 일어났다.     

 국도로 전주 가는 길에 처음 만난 관광지가 대둔산이다. 시간이 없어 직접 등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친구들과 같이 등반한 산이다. 그래서 등반하려는 욕심은 없지만, 경상남도에서는 보기 힘든 산이다. 바위로 절벽을 이루는 산으로 기암괴석이 일품인 명산이다.      

 전주의 한옥 마을에 내비게이션의 힘을 빌려 도착했다. 어떤 집이 맛이 좋을까 궁리하다가 손님 많은 곳을 택하기로 했다. 월요일이라 여행객이 적은 지, 그리 혼잡한 식당은 없었다. 한옥의 고즈넉한 처마에 서서 주위를 살피다가 ‘마패’라는 식당으로 갔다. 육회와 전주비빔밥을 시켰다. 친구가 논산 훈련소에 입대하는 것을 환송하기 위해 먹은 1982년도 전주비빔밥과 2009년 12월 28일 저녁 7시에 먹는 전주비빔밥의 맛 차이가 크다. 내가 배가 불러서 그런지 아니면 전주비빔밥의 맛이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차이가 크다. 82년도는 수많은 반찬에다 막걸리를 먹는데 안주가 전혀 필요 없던 생각을 떠올리며 막걸리를 시켰지만, 막걸리도 없고 전통주 1병으로 식사했다. 이제 출발인데 벌써 실망하면 안 되지.     

 저녁 식사 후 군산(群山)으로 가기로 했다. 군산은 전라도의 산업단지가 밀집되어 있고 고군산열도와 선유도가 있으며 새만금 간척지가 부안까지 연결된 도시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교 야구의 명문고 군산상고가 있는 도시이다. 될 수 있으면 선착장 부근에 숙소를 구하려고 비응항 가까이 갔으나 개발 중이고 식사가 곤란해 군산 시내로 와서 하루를 묵었다. 조촐한 여관에 짐을 풀고 소주 한잔하려고 밖에 나갔다. 군산의 명물 음식이 무엇인지 몰라 홍어회를 먹기로 했다. 목포에 가지 못한 한(恨)을 조금이라도 풀어 보려고 술집으로 갔다. 그러나 일행 중 비위가 약한 분이 홍어회 한 점 먹고는 운전하였더니 피곤하다며 먼저 숙소로 가버렸다. 둘은 전라도 특유의 음식상이 아니라 약간 실망했지만, 소주 한잔을 하면서 내일 여행 이야기하면서 소주 2병에 막걸리 1병을 먹고 숙소로 갔다. 좀 피곤하다. 피곤하여 잔 잠은 새벽 2시에 오줌 때문에 깨어났다. 이제 50이 되니 전립선이 좀 약해진 모양이다. 화장실 다녀와서 자려고 누웠더니 웬 기차가 지나가는지. 일행 중 한 명이 피곤했는지 코골이는 한다.     

 9시에 있는 선유도 배 시간 때문에 7시에 여관에서 나왔다. 여관 앞에 있는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얼큰한 김치와 시원한 콩나물이 어울려 정말 맛있는 콩나물국밥이다. 땀을 흘려가며 식사하니 전북 군산시의 최고 맛은 콩나물국밥 같았다.      

 군산여객터미널에서 선유도 가는 배를 탔다. 선유도에 도착하니 봉고차를 개조한 차량을 가지고 호객행위를 한다. 우리가 선유도 갔을 때는 자전거로 선유도와 주변을 관광하기로 했는데 추워서 자전거 대여하는 곳에 부서진 자전거만 있고 멀쩡한 자전거는 너무 오래되고 작은 것이라 포기하고 걸어서 관광하기로 했으나 선유도 해수욕장을 지나자, 일행이 걷는 것은 포기하자고 한다. 그래서 명함을 받은 사람에게 전화하니 봉고차가 왔다. 젊은 사람인데 관광 안내 책자만큼 선유도에 대해 잘 설명해 준다. 


 선유도의 장례식을 설명한다. 초장(草葬)이라고 한다. 초장이란 시체를 짚으로 싸서 임시로 매장함이다. 시체를 볏짚으로 만든 조그만 공간에 넣어 두었다가 뼈가 앙상하면 뼈를 추려서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처음 보는 장례식 모습이다. 이런 장례식을 치른 이유는 바닷일 하면서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이 많아 좀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생긴 장례식이란다. 사람 썩는 냄새가 진동(振動)했을 것인데 이런 장례식을 한 것을 보면 정이 많은 마을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선유도와 장자도를 잇는 다리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큰 강물 같은 흐름을 보고 서해안의 조수간만의 차가 얼마나 큰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유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일품이다. 겨울이라 정리가 되지 않아 쓰레기가 어지럽지만, 여름에 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에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완료되면 선유도도 섬이 아니라 육지가 된다고 한다. 인간의 힘이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새삼 놀라움을 일으킨다.      

 해수욕장 뒤편의 ‘망주봉’은 어느 선비가 산봉우리에 올라가 한양의 임금을 그리워했다가 된 전설의 바위이다. 시골에서 안빈낙도하지 무슨 권력에 그리 탐닉하려 하느냐고 생각해 본다. 점심 식사하러 식당으로 갔다.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서해 ‘볼락회’를 먹기로 했다. 좀 비싸지만 그래도 맛 기행인데. 맛있는 회와 소주를 마시고 오후 3시에 쾌속선을 타고 군산으로 왔다. 다음은 변산반도로 가기로 했다.     

 군산을 빠져나와 부안으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50분 만에 능가산 내소사(來蘇寺)에 도착했다. 내가 불자(佛子)는 아니지만, 산사(山寺)를 찾아가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절을 좋아한다. 그런데 내소사는 정말 아름다운 절이었다. 약간 어둑해지는 시간에 일주문을 넘어서는 순간 쪽 곧은 전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서 우리를 반겼다. 대장금 촬영지란 사진도 있고 양반들이 거만하게 말을 타고 대웅전에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대웅전 앞에 건물을 세웠으며 대웅전의 연꽃 모양의 문살은 참 특이했다. 아직도 많은 불사를 일으키고 있는 절인데 지금 건축하고 있는 것만 하고는 더 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 사찰을 제대로 알려면 암자를 찾아가야 진풍경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늦은 시각에 왔기에 그 아름다운 암자는 한 곳도 못 보고 발길은 돌려야 했다.     

 부안에 조그마한 모텔 방 두 개를 잡았다. 전날 코골이가 심한 선생님의 낯빛이 어두웠지만 즐거운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모텔 밑에는 찜질방이 있어 밥 먹기 전에 찜질했다. 황토방에서 땀을 흘리고는 하루에 제일 기다려지는 저녁 겸 술 파티를 위해 식당을 찾았다. 식당은 손님이 최고 많은 곳을 찾는 것이 불문율이었기에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식당가를 거닐다가 사람 많은 ‘군산 식당’을 택했다. 종업원이 그리 상냥하지는 않았지만, 내색 없이 해물탕 대(大) 자를 주문하고 소주도 주문했다. 13가지의 반찬이 나오는데 이것이 진짜 전라도 음식이구나! 할 정도로 맛있었다. 밥보다는 술을 잘 먹는 우리 일행인데 반찬이 맛있어 밥부터 먹고는 배가 불러 소주 2병과 막걸리 두 병으로 식사를 마쳤다. 일하는 그것보다 노는 일이 힘이 드는지 어디 술집을 배회하지 않고 활명수 1병씩 마시고 맥주를 좀 사서 숙소로 왔다. TV에서는 연말 시상식을 한다고 떠들썩하다. 잠을 청하니 잠이 참 잘 왔다. 그런데 코골이 심해서 방 2개를 구했는데 이날은 코골이 선생님이 너무 조용했다. 아침에 일어나 코를 골지 않았다고 하자 모텔값 30,000원 변상하라고 아우성치면서 웃는 아침으로 출발했다.     

 2009년 12월 30일 오전은 부안군 변산반도를 여행할 예정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대명 리조트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세수하고는 채석강에 가기로 하고 내비게이션에 의뢰했는데 우리가 묵은 숙소 뒤편이 채석강이었다. 채석강은 기암괴석들과 수천만 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퇴적암층 단애로, 강(江) 자가 붙어 강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중국의 채석강(彩石江)과 그 모습이 흡사해 채석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 채석강에 밀려오는 파도는 일품이었다. 어제도 서해안의 조수간만의 차를 구경했지만, 오늘 아침에 보는 서해안의 바다는 정말 놀랍다는 표현 말고는 더 말할 수가 없었다. 군인들의 ‘충적 훈련’하는 모습의 파도 모양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추운 겨울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파도의 위력을 뒤로하고 새만금 간척지로 향했다.     

 오랫동안 신문 내용을 달구었던 새만금 간척사업이라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이었다. 아직 어느 쪽이 바다인지 구분이 되지는 않았지만 대단한 역사였음을 실감했다. 우리 일행은 고민에 쌓였다. 이 많은 바닷물을 언제 다 빼느냐는 것이다. 아직도 어느 쪽이 바다인지 모르겠는데 언제 물 빼고 건설하느냐는 의문을 남기고 불멸의 이순신 촬영지로 갔다. 이곳은 어느 곳이나 다름없는 세트장이고 다만 TV에 나온 장면이라 안면이 있을 뿐이었다.      

 고창 선운사로 향했다. 서해안 고속도로 통과하여 1시간 정도 가니 선운사 나들목이 나오고 20분 정도 가니 선운사가 있었다. 눈바람을 맞으며 선운사에 가니 내가 보기에는 평범한 사찰 같았다. 대웅전에 가서 삼배를 올렸다. 우리 가족 무탈하게 1년 동안 돌봐 주심에 감사드리며 1배 하고 직장생활 1년간 열심히 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감사드리며 2배 하고 우리 어머니 감기 들지 않게 잘 보살펴 주십사 하고 3배를 올렸다. 눈바람 속에 30분 정도 경내를 돌아보고 선운사 입구에 있는 풍천장어구이 식당으로 갔다. 맛 기행이기에 토속음식과 영양식을 먹으러 간 것이기에 풍천장어는 뺄 수 없는 코스이다. 식당에서 장어 3인분에 고창 ‘복 분자’ 술을 시켰다. 창밖에는 눈이 날리고 있다. 집에 갈 걱정보다는 눈보라의 장엄함에 감탄하고 있는데 시킨 음식이 나왔다. 장어가 살이 많이 쪄 통통하고 복분자 술은 술이라기보다는 복분자 진액에 가까웠다. 내가 근무하는 진동 장어구이도 전국의 명물인데 서로 비교해 보니 진동 쪽에 별표 하나를 더 주고 싶었다. 그 이유는 풍천장어는 고추장구이이고 진동 장어는 간장구이라 맛이 담백하고 내 입에 익은 음식이라 별점을 더 주고 싶다. 그래도 아주 맛있고 기억에 남는 점심 식사였다.     

 바로 마산으로 오려다가 고창의 고인돌 이정표를 보고 고인돌을 보러 갔다. 15분 정도 가니 고인돌 유적지가 나왔다.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한 고인돌 유적인데 관리가 어찌나 부실했는지 화가 치밀었다. 고등학교 국사책에 소개된 고인돌이 폐가 뒤편에 나뒹굴고 있는 모습에 세계 9위 수출국이라고 떠드는 정부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조금만 더 들이면 폐가를 매입하여 허물고 안내판이라고 둘 수 있을 유적지를 이렇게 방치하고 국격(國格)을 높인다고 떠들어 대는 우리 정부를 원망하면서 전라도 맛 기행을 마치고 마산으로 왔다. 그렇게 눈보라 치던 전라도 날씨는 경상도에 접어드니 햇볕이 쨍쨍하다. 대한민국이 참 넓다고 생각한다.      

 5시경에 집에 도착했다. 우리 아들이 방학하였다고 맛있는 저녁을 사주려고 했다. 나는 엄청 맛있는 음식과 기분 좋은 여행으로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되지만 아침 7시 20분에 나가면 밤 12시 되어야 오는 우리 아들이 아닌가. 2010년에는 고3이 된다. 성실한 아들이니 걱정은 없지만, 노력만큼 성적은 나오지 않는다. 아들은 추운데 밖에 가지 말고 집에서 맛난 음식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돼지고기 두루치기 음식 솜씨를 발휘하여 모든 식구가 행복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가족과 함께 대화하면서 먹는 식사가 가장 맛있는 음식 같다. 두루두루 행복한 여행이고 저녁은 행복한 가정이다.     

                                  2009. 12. 30 저녁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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