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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Mar 19. 2024

「건축학 개론」을 보고

「건축학 개론」을 보고     

 교직 25년 동안 바쁘게 생활하다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휴가(休暇)가 마련되어 영화를 몇 편 관람했다. 그 시기에 나온 영화 중에 ‘건축학 개론’이란 영화가 있었는데 제목도 그렇고 시답잖은 청춘의 연애 이야기로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학 재학 중인 딸이 건축학 개론 영화가 재미있다고 추천했다. 추천 직후 휴가가 끝이라 출근했기에 영화관에 갈 시간이 없었다. 휴가 중 못한 교사의 임무를 더 충실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기에 영화는 머릿속에도 없다. 2012년 6월 16일 토요일 아침 6시이다. 오후에 자율학습 감독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다. ‘건축학 개론’이란 영화가 문득 생각났다. 집에서 TV로 보는 영화 사이트에서 거금 4,500을 결재하고 옆에 자는 아내도 깨웠다.     

 이용주 감독이 만든 영화로 내용은 건축과 대학 1학년이 음악과에 다니는 여학생과 엮어내는 아주 풋풋하고 절제된 어쩌면 절제보다는 용기가 없어 순수한 사랑 이야기다. 건축학과의 승민(이제훈)과 음악과의 서연(수지)이 건축학 개론에서 조우(遭遇)하여 사랑을 만들어 가는 순수한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속으로는 서로 좋아하고 사랑해도 속마음을 표식 하지 못해 시간이 흘러가다가 서연이 술에 취해 바람둥이 선배가 집으로 데려다주는 장면을 목격한 승민이 서연에게 멀어져 간다. 15년이 흐른 후 서연(한가인)이 승민(엄태웅)에게 나타나 제주도 바닷가에 집을 건축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집을 건축하면서 지난 과거를 회상해 보니 아직도 서연을 사랑할 수 있다는 감정을 받지만, 약혼자가 있는 현실에 더 비중을 두고 결혼하여 미국으로 떠나면서 서연에게 받았던 CD와 CD 재생기를 서연의 집으로 택배를 부치고 서연이 택배를 전달받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연기자의 절제된 연기력과 순수함을 잘 표현한 젊은 승민과 서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재수생인 승민 친구는 배역에서 연기를 잘하여 인기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가 인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보통 영화는 15년 뒤에 첫사랑을 만나 현실을 무시하고 다시 첫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첫사랑도 오해 때문에 서연을 떠나지만, 다시 15년 전으로 회귀하지 않고 약혼한 여자와 결혼한다. 사랑이 있어서 결혼하는지 자기 과거의 상처를 덮기 위해 떠나는지 조금 모호한 태도를 보이지만, 결혼하여 외국으로 나가는 허구보다는 실화 같은 영화이다.      

 아내가 묻는다. “당신도 저런 사랑을 해 보았느냐고?” 나는 당연히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가 본다. 이제 이름도 얼굴도 기억 없지만 수수한 여학생의 얼굴 한 명이 떠오른다. 대학 2학년 가을에 학교 교정 나무 밑 의자에 앉아서 물 한 모금도 없이 1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여학생은 같은 대학 음악과 작곡 전공을 하는 1학년이었는데 소개해 준 친구가 나를 얼마나 자랑했는지 그 여학생도 나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몇 번 데이트하다가 아무 이유 없이 헤어졌다. 헤어지자고 헤어진 것도 아닌데 그냥 만나지 않으니 헤어지게 되었다. 내가 그 당시에 나의 초라함에 내가 나 자신이 싫어졌기 때문이었다. 옷이라고는 한 벌로 1년을 입고 다닌 그런 나 자신을 누가 좋아할 것인가? 또 데이트할 때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 자신을 내가 싫어했으니 남도 같다고 생각했다. 두 달 정도 지나 여학생을 소개해 준 같은 과 친구가 슬며시 내게 물었다. “같은 시골 마을에 사는 동생인데 마음에 들지 않더냐?”

“ 그렇게 순수하고 영혼이 맑은 여학생은 처음 보았다. 내가 지금 가난하여 커피도 한잔 사줄 처지가 안되어 만나기 어렵다.” 말하니 그 친구는 “그런 조건은 문제 되지 않으니 다시 한번 만나 보라고 한다. 동네 동생이 나와 대화하면 참 유식하고 마음이 편해 참 좋다”라고 하더란다.

그러나 나의 선택은 다시 만나지 않았다. 

사람을 가능성 또는 미래형으로 볼 시기가 대학생 시절인데 왜 나는 그 당시에 현재형과 완성형을 고집했는지.

                                    2012. 6. 18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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