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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Apr 01. 2024

참사랑

 창덕은 회사 일로 외국 출장을 두 번이나 다녀왔고 세령은 평소처럼 골프 모임이나 운동으로 하루 소일을 하며 보냈다. 세령이 창덕에게 문자 보낸 지 한 달이 넘었다. 세령은 자존심이 무너질 대로 무너져 우울 증세가 오기도 했다. 이제는 기억 속에 지우려고 노력한다. 만남이 미천해서인지 그리 오래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창덕은 세령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갑갑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런 분야에 경험이 미흡하였기 때문이다. 사업이라면 세령과의 관계가 지금쯤 호전을 넘어 넓은 벌판을 달릴 것 같은데 남의 여자와 사랑의 인연을 맺는 것은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온 숙제 중에 가장 어려운 숙제 같았다. 

 외국 출장 중에 홀로 호텔에 앉아 카톡으로 세령의 프사를 보며 온갖 좋은 상상을 하며 카톡을 몇 번이나 쓰고 지우고를 반복해도 끝내 보내지는 못했다. 어느 날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점심 먹고 운동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세령의 손에 잡은 핸드폰에 갑자기 카톡이 온다. 창덕이다.

”세령씨 안녕하세요. 홍창덕입니다. 허락도 없이 이렇게 카톡하여 죄송합니다, 세령씨를 만나 너무 행운입니다. 앞으로 자주 연락드려도 되죠.“

 창덕에게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세령이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데 창덕의 카톡을 보니 갑자기 심장이 멈출 것 같고 가슴이 벌렁거리며 지금까지 화난 것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이 붉어지며 가슴까지 떨린다니 육십 평생 살아도 이런 일은 없던 일이다. 한참 카톡을 응시하다가 가슴을 차분히 내려놓고 답장한다.

”홍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어디 편찮으신 곳은 없죠. 저도 신사의 참모습을 보여 주는 사장님을 만나건 행운 같아요. 가끔 카톡이라도 연락하고 살아요.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세령 드림“

세령이 답장을 보내자 바로 창덕에게 카톡이 왔다.

”세령씨 내가 한 달 전에 세령씨에게 편지를 쓴 것이 있는데 보내도 될까요?“

세령을 카톡을 보고 소리를 내 웃었다. 

일하는 아줌마가 ”사모님 무순 좋은 일 있으세요“한다.

웃음을 멈춘 세령은 창덕이 예의 바른 남자가 아니라 바보란 생이 들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키스해도 될까요? 허락 맡고 첫 키스 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ㅎㅎ 그럼요, 편지 받아본 지 오래되었는데 편지 받는다니 가슴이 설레요“

오히려 세령이 연애의 고수처럼 창덕을 주도해 가는 카톡 내용이다.     

「연서(戀書)

 세령씨에게 연락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니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거요. 사람에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 현실에 좋은 일로 다가올 때를 우리는 기적(miracle)이라고 표현하고 나쁜 일로 나타나면 이변(異變)이라고도 하고 흔히 하는 말로는 “신세 조졌다”라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이번에 세령씨를 만난 것은 기적이란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작년 모임에서 세령씨를 처음 보는 순간 부산에도 이런 미모의 여성이 살고 있었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초면에 빤히 쳐다보는 것도 실례라 생각하여 곁눈질로 쳐다보고 속으로 좋아하며 감탄했습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이 상석이라 수많은 사람이 인사하러 오고 인사를 하는데 그 많은 사람에게 미소로 화답하는 모습에 남편의 사업이 번창하는 것이 아내의 공이 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랑이 인사시켜줄 때 퍼뜩 악수를 청하여 손이라도 잡아 그 촉감을 느끼고 싶었지만, 초면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실행에 옮기기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 시간에 남편이 갖다준 음식을 아주 얌전히 한입, 한입 먹는 모습에 옛날 양반집 품위 있는 귀부인의 모습에 저의 정신이 황홀했습니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유흥 시간에 세령 씨의 노래였습니다. 단아하고 곱디고운 중년의 여성에게 마이크를 주자, 준비된 초대 가수처럼 노래를 신청하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모인 사람들이 가곡 정도나 팝송을 예견했는데 1950년대 노래인 홍콩 아가씨를 선곡하자 모든 사람이 약간의 실망을 하는 표정이었는데 노래를 듣자마자 그런 실망스러움은 모두 사라지더군요. 열창 뒤 앙코르곡에도 주저 없이 선곡했고 빨간 구두 신은 사람이 빨간 구두 아가씨를 부르니 분위기와 노래와 노래 부른 사람이 모두 하나가 되는 연출을 보고 세상에 미모에 재능을 모두 가진 사람도 있구나. 하고 탄복했습니다.     

  부부 동반 골프 모임을 요청한 남편분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내 마음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골프 모임이 없었다면 나는 세령씨 생각에 상사병이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조명 아래 보던 세령씨 보다 햇살에 곱게 비추어진 세령씨의 세련된 화장한 모습은 더 화사했습니다. 무슨 운동을 하셨는지 탄탄하고 건강한 몸매에 고급 옷을 소화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세령씨 남편이 벌칙을 제안했을 때 가슴이 뛰어 아내가 볼까 엄청 두려웠습니다. 내 평소 골프 실력의 2/3 정도 발휘했는데 하나님도 무심하신지 16번 홀에서 이글이 나올 게 뭡니까? 원통하고 억울하여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욕했습니다. 세령 씨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대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에 세령 씨를 묻어줄 수 있어 너무나 좋았습니다.     

 세령 씨의 문자를 받고 이렇게 내 마음을 글로 써 보니 속이 후련해집니다.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보여 줄 수 없다는 것,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세령 씨를 다음에 만날 수 있으면 꼭 포옹 한번 해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20. 3 창덕 올림.」     

 긴 문장의 연서이다. 손 편지 같으면 코팅하여 보관하거나 책상 유리 밑에 넣고 두고두고 보고 싶은 내용이다. 세령도 국어 교사 출신이라 시나 작문을 어느 정도 할 줄 알지만, 답장은 사양했다. 너무 빠르면 여자가 너무 헤프게 느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머 홍 사장님 너무 감사해요. 집에 있는 여자에 불과한데 이렇게 좋게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진짜 감사합니다. 편지 보고 또 볼게요.”     

 창덕과 세령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상대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골프를 친다거나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는 일은 딱 한 번 있었다. 창덕이 거래처와 골프 약속을 했는데 상대가 갑자기 약속을 어겨 세령과 같이 라운딩하고 식사하고 차 마시며 둘이 조용히 여행 갈 약속을 했다. 창덕과 세령은 물이 모래에 스며들 듯 별 표시 없이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졌고 수시로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세상 사는 이야기 취미생활 이야기 골프 이야기를 하며 자기 마음을 표시 나지 않게 이모티콘으로 사랑을 표시하여 전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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