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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Apr 03. 2024

참사랑

 창덕이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들어선 시간이 6시다. 현숙이 문을 열어 주는데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하다. 전에는 출장 갔다 오면 수고했다며 가방을 받아주고 아양을 떨었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창덕은 현숙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죄를 짓고 오는 몸이라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늘 출장에서 돌아오면 하던 행동을 하여도 현숙의 반응이 없다. 현숙이는 밥을 먹었느냐? 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소파에서 간간이 한숨을 쉬며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다. 

분위기가 이상해 창덕은 현숙이 옆에 앉았다. 

현숙이가 ”저리 가요. 꼴 보기 싫어요“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왜 나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창덕이 머뭇거리며 말하자

”솔직히 이야기하세요. 어디에 무엇 하러 갔다 와서요.“

”출장 갔지. 중소기업 회장 모임에“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네. 내가 당신의 욕정을 풀어 줄 수 없어 모른 척 넘어가려고 했는데 끝까지 거짓말을 하네. 당신 이런 사람이었어.“

현숙의 목소리가 가늘지만 날카롭다. 

창덕의 생각이 어지럽게 돌아간다. 무슨 일 때문인지가 궁금하다.

”무슨 일인데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나?“

”이번 출장에 어떤 여자와 동행했나요?“

”혼자 갔다가 왔는데?“

”진짜 나쁜 사람이네. 끝까지 오리발이야.“

그러더니 전화기를 내밀며 여자 사진을 보여 준다.

세령이다. 방긋 웃으며 걸어오는 세령이 모습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억“하는 소리가 가늘게 방안을 울려 퍼진다.

창덕은 사건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이 사진이 뭔데. 내하고 무슨 상관인데“

”이 여자 작년 송년회 모임에서 우리 앞에 앉은 여자 맞죠.“

”몰라 기억에 없는데.“

”당신 시골 친구 와이프가 수상하다며 보낸 사진이야!. 군위 휴게소에서 보았다며“

창덕은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 

이래서 밤일은 쥐가 알고 낮일은 새가 안다는 속담이 있었구나. 

참 신기하네. 

그 짧은 시간에 사진을 찍어 마누라에게 보내준 친구 와이프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생글거리며 웃던 모습이 얄밉게 보인다. 양의 탈을 쓴 늑대로 보였다.

창덕은 생각이 많아졌다. 

여기서 사실을 고백하고 살려달라고 빌어 볼까? 

그렇게 했으니 어쩌란 말이냐로 배를 내밀어 볼까? 아니면 

끝까지 시치미를 떼고 변명 해 볼까? 

현숙이보다 더 세게 나가 막장을 볼까?

이런저런 생각 하다가 끝까지 변명하기로 했다.

”맞아. 군위 휴게소에서 만났지. 

골프 치러 간다고 하더라, 커피 한잔하자 했더니 커피집으로 오던데. 

그때 친구들과 같이 만난 거야“

”우연이 필연적으로 되었나요?“

”친구 와이프가 무슨 오해를 했던 모양이네. 커피 마시고 각자 갈 길 갔는데.“

”거짓말인 것 알아요. 솔직하세요. 한 번 봐 드릴 때니?“

창덕은 할 말 없다며 화를 내고 자기 방으로 가버린다.

침대에 홀로 누워 이 일을 어떻게 매끄럽게 처리해야 하나 많은 깊은 고민을 해 본다.     

세령은 모텔을 나와 어제 아침에 세워둔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비가 13,000원이다. 

집으로 오니 남편은 아직 없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자기 방으로 가서 침대에 조용히 누웠다. 

기분 좋았지만, 섹스 뒤의 노곤함에 오는 피곤함이 몰려온다, 

천장의 불빛을 쳐다보며 어제와 오늘의 일들을 회상해 본다. 

참 개운하고 기분이 좋았다. 

61년 동안 살았던 것 중 최고의 시간이었다. 

창덕의 예의와 인품과 대화기술, 머리에 든 상식과 실력, 상대에 대한 배려와 포용력이 최상이었기 때문이다. 

세령이 평소 행동은 늘 계산적으로 하는데 이번 여행은 마음 내키는 대로 계산 없이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머리가 시키는 대로 말을 했다. 몸이 시키는 대로 성적 행위를 했다. 그런 태도를 모두 포용해 주는 남자가 너무 믿음직스럽고 좋았다. 

술 취해 토를 해도 다 받아주고 자신을 품에 안아주는 남자, 오늘 모텔에서의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긴 시간의 행위에 눈을 반쯤 뜨고 상상해 보니 이게 천국이 있다면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좋았다. 

사실은 창덕이 오늘 긴 시간의 정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정이 되지 않았기에 가능한 시간이었다.     

 세령이 깜박 졸았다가 일어나니 저녁 10시가 되었다. 남편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이틀 동안 전화기를 끈 상태로 있었음을 직감한 세령이 전화기를 켜니 문자와 카톡, 부재중 전화가 다수가 있었다. 부재중 전화는 남편이 한 것이고 문자는 골프와 관련된 것이다. 카톡은 대부분이 단체 카톡이고 창덕의 카톡이 조금 전 온 것이 있다. 얼른 열어보니 

”세령 씨 황홀한 여행이었습니다. 집에 별고 없지요. 다음에는 더 멋진 여행을 합시다.^♡^ 굿밤하세요.“ 

세령도 다른 카톡은 제쳐주고 창덕의 카톡에 답장을 먼저 한다. 

”오빠. 황홀한 여행이라 지금도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에요. 너무 좋았어요, 오빠 사랑해요♥♥♥“     

 아파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보니 남편이 초저녁인데 술이 만취 상태이다. 코로나-19, 4단계인지라 밤 9시까지 영업했기에 일찍 들어온 모양인데 평소보다 많이 취해 있다. 집에 들어선 세령 남편이 ”연애하니 재미가 좋더나?“

결혼 36년 동안 한 번도 세령에게 불손하거나 비아냥댄 적이 없던 남편이 불쑥 이런 말을 하니 세령의 등골이 오싹해진다. 

세령은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드시고 헛소리하세요.” 

평소에도 남편의 실수를 옹골차게 냉정하게 몰아붙이는 세령이다. 

남편이 “바람피우니 재미있더냐고?” 큰소리를 친다. 

“야 이 시발 이놈의 인생 이게 사람 사는 거냐? 집에 계집년 바람피우는 꼬락서니 보려고 내가 돈 벌었고 마누라 아꼈나.?” 

남편의 말투가 점점 거칠어진다. 

세령도 정신 차리고 “무슨 말 하세요” 쏘아붙였다. 

송년 모임 때 우리 앞에 앉은 부인이 전화가 와서 자기 남편과 내 마누라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고 전화 와서 내가 알았지. 

“당장 꺼져” 씩씩거리며 한마디 더 한다.

“씨발 당장 눈앞에 사라져” 하더니 자기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번 여행을 창덕 부인이 어찌 알았단 말인가?

방에 들어온 세령은 창덕에게 카톡을 했다.

“오빠. 큰일 났어. 방금 남편이 들어와서 오빠 아내가 우리 둘이 바람피우러 갔다고 하면서 집 나가라 하고는 자기 서재로 들어갔어요. 오빠도 알고 있어요.?”

한참 후에 카톡이 왔다.

“세령 씨. 나도 집에 오자마자 아내가 다그치길래 나는 무조건 아니라고 발뺌했어요. 군위 휴게소에서 만난 고향 친구 와이프가 세령씨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낸 모양이에요.”

1분 후에 또 카톡이 왔다.

“세령 씨 우리 불륜 아니고 참사랑이에요. 떳떳하게 대처합시다. 설령 이혼한다고 해도 우리 사랑 부정하지 맙시다.”

세령은 눈물이 났다. 결혼 36년 만에 겪는 최고의 시련이다. 시련이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경제적으로 저축도 있고, 남편에게 위자료를 받으면 노후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자식에게는 불륜 엄마로 낙인찍히는 것이 가장 큰 난제였다. 세령은 이틀 동안 느낀 황홀한 기분은 온데간데없고 눈물과 더불어 밤새 마음을 졸였다. 남편의 서재에 가서 무릎 꿇고 이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어 볼까? 하다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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