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業, Karma)
-어느 여고생의 슬픈 인연-
전화가 왔다.
엄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처음 엄마 목소리를 듣는다.
별 감흥도 없고 좋다는 느낌도 없다.
엄마라는 느낌이 전혀 없는 중년의 그저 그런 여자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엄마가 어떻게 생기고 어떤 모습일까를 전혀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가끔 할머니가 술에 취해 엄마 욕을 하고 손녀에게 앙탈을 부릴 때 엄마가 옆에 있으면 이 수모는 안 당할 것 같을 때 가끔 생각나던 엄마인데 아무런 느낌이 없다니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생각해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소라는 고등학교 3학년의 평범한 여학생이다. 평범하다기보다는 미래의 희망도 별로 없고 공부도 그다지 하고 싶지 않고 누군가의 정이 그리운 학생이었다. 집에 들어가는 것도 별 의미가 없지만, 학교에 오래 머무는 것도 좋은 것이 없는 소라이다. 그래서 자율학습이 없는 비 진학반을 선택하여 하루하루 의미 없는 날을 보내는 것이 일과다. 다행인 것은 담임을 잘 만났다는 것이다. 12년 동안 자기 이름 불러 준 사람도 없고 아무도 관심 가져 준 사람이 없는데 이번 담임은 처음 조회 시간에 그냥 담임 말에 미소를 보냈을 뿐인데 친절하게 다가와 이름을 부르며 “너는 웃은 모습이 이쁘네.” 하며 칭찬까지 해 준다. 칭찬이라고는 처음 듣는 소리라 자기 귀를 의심해야 했다. 담탱이는 키도 크고 미남이며 온화한 낯빛과 목소리가 약간 중 저음이고 자상해 보인다. 나이는 40대 후반이거나 50대 초반으로 아직은 겪어 보지 못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파악이 안 된 상태라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소라는 생각했다. 3학년 진급하여 담임의 면담이 있었다. 그래서 1주일간은 야간 자율학습을 하자고 한다. 담임이 반 아이들의 일정을 다 알고 있기라도 하듯 종례 시간에 아르바이트가 바쁘거나 학원에 갈 학생, 기분이 안 좋은 학생들은 일찍 귀가시키고 하루에 면담할 학생만 남겨 두었다. 소라는 두 번째로 면담 일정이 잡혔다고 한다. 소라는 가슴이 복잡하다. 지금까지 학교 선생님이나 담임과 면담하면서 자신이 처한 생활상의 진실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11년 동안 담임을 만나면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자기의 처지를 이해 해 줄 사람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담임이 하는 행동 보니 약간의 신뢰가 간다. 진실을 이야기해 버릴까? 하고 생각하면서 무료한 저녁 시간을 보냈다.
담임이 첫 번째 학생과 복도에서 면담한다. 사뭇 진지해 보이면서 두 사람이 함박웃음도 웃는다. 보통 면담이라면 “어디 사노” “가족 관계는” “아버지 어머니 직업은“”담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정도 물으면 면담이 끝나는데 첫째 학생에게 거의 30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소라가 담임 앞에 앉는다.
”소라는 웃는 모습이 일품이야. 매일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가 보네“ 한다.
헛다리를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매일 죽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야?.
”선생님 아니에요, 처음 들어 보는 소리예요.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말 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