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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Apr 18. 2024

업(業)

”소라의 참모습을 몰라서 그런 거야. 너 표정이 밝아 보여. 마음이 따뜻하다는 표식이야“

담임이 다음 말을 이어 간다.

”소라야. 웃다가 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행복해질 수 있어. 지금처럼 늘 웃도록 해 봐라.“

담임이 약간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소라야. 네가 웃는 모습 뒤에 근심이 좀 보이는 것 같아, 내 눈에는.

혹시 근심이 있으면 내게 말해 줄래. 지금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담에 마음 풀리거든 이야기해 주어도 되고, 혹시 그런 근심이 없으면 선생님이 잘못 본 거 사과할게.?“

소라는 가슴이 뜨끔하다. 점쟁이도 아니고 자기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불길한 느낌이 든다. 소라는 엉겁결에 ”선생님 사실 제가 많이 아파요. “해 버렸다.

선생님이 ”호사다마(好事多魔)이고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더니 표정이 밝은 소라에게도 아픔이 있구나.“

호사다마고 미인박명이고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라 무슨 뜻인 줄도 모르는 소라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담임은 소라가 한참 울기를 기다리다 뒷주머니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준다. 

소라는 담임에게 아빠 냄새를 맡았다. 내가 갖고 싶은 아빠 모습이다.

소라는 ”선생님 담에 이야기할게요. 저 오늘 집에 가고 싶어요. “

담임은 기꺼이 승낙하며 일어서 소라의 등을 또닥또닥해 준다.

소라는 선생님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선생님 저 한 번만 안기면 안 돼요.“

선생님이 팔을 벌려 소라를 포근히 안아준다.

소라는 가방을 메고 운동장을 정신없이 뛰어 집으로 간다. 

담임이 자기에게 베풀어준 짧은 면담 시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라는 동생이 아마추어 권투 선수로 고등학교 1학년이다. 그런데 시합 나가서 이겼다는 소리 한번 들어 보지 못했다. 시합 갔다 오면 눈이 퉁퉁 부어 연고 발라주고 달걀로 문질러 주지만 누나에게 대들지 않고 할머니가 주책을 부릴 때 서로 위안이 되어 주어 사랑스러운 동생이다. 동생은 누나가 다니는 학교가 마산 시내 변두리에 있는 학교라 학생들의 질이 안 좋다고 생각하고 누나를 괴롭히는 이가 있으면 누구라도 주먹으로 제압해 준다고 누나에게 약속해 주어 소라는 자기의 약점을 잡고 괴롭히는 아이가 있으면 동생에게 기대어 볼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담임이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 동생에게 필요 없다고 잘라 말하고 다음 시합에는 꼭 한번 이기고 오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고등학교 입학하더니 합숙한다고 체육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 할머니가 술 마시고 난동을 부리면 누구에게 기댈까? 약간 고민이 되었다.


 소라는 41세의 아버지 강규선이 있지만 지금 같이 살지 않는다. 소라와 같이 사는 사람은 술로 한세월을 보내는 아주 늙은 할머니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젊지도 않은 65살의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24평형 서민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받는 기초 생활 수급자이다. 공부는 할 의욕도 없지만 누가 공부하라고 한 번도 하지 않아서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남들이 학교에 가니 지금까지 학교에 다녔을 뿐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꼭 졸업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그렇다고 꼭 실천한다는 보장은 하지 않았다. 현재 고3이지만 교과서 이외는 참고서를 구매한 적도 없고, 필요도 없었다. 소리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여학생 30명으로 한 반을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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