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명의 각자 개성에 따라 자유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특별한 반을 이끄는 담임이 바로 소라 담임이다. 22년간 교직을 수행하고 있고 갓 50이 된 중년의 남자로 키도 크고 얼굴이 온화하며 아들도 여학생과 같은 고3 학생을 둔 선생님이다. 선생님의 아들이 고3이라 그런지 아니면 아빠처럼 자상한 성격과 인품 때문인지 몰라도 모두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는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아니면 아빠라고 호칭하고 조퇴를 부탁하면 아주 해맑은 미소로 허락하는 선생님이라 아빠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홍 선생님은 학생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 주려고 선생이란 직업을 선택한 사람 같다. 늘 미소로 학생을 대하면서도 예의에 어긋나면 다정한 미소로 조용조용 설득하는 베테랑 담임이다.
소라는 3월 중순에 담임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담임은 소라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 줄 요량이다. 학년 부장인 담임은 학생들 자율학습 교실을 한 바퀴 돌고 단둘이 교실에 앉았다. 담임이 웃는다. 그래도 소라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담임의 속마음을 알았다고 생각했기에 이제 자기에게 있는 모든 비밀은 담임에게 모두 털어놓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라야 네가 매일 조금씩 더 밝아지는 것 같아 선생님이 기분이 좋아.“
담임이 또 독심술을 펴고 있다.
”선생님 저 대학 안 갈 거예요.“
”왜? 안 가려고 하지. 좀 천천히 생각해 보자. 선생님이 소라에게 딱 맞는 적성 찾아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 줄게?“
”아니에요, 선생님, 우리 가정이 개판이에요. 대학 갈 형편이 안 돼요.“
담임이 양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웬 개판?“
소라는 현재 어디 살고 있는지 모르는 아버지와 죽었다고 들은 어머니와 늘 저녁이면 술을 마시고 잔소리하는 할머니 이야기를 담임에게 진솔하게 하였다.
소라는 또 울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참았던 분노가 서서히 폭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 어머니에 대한 미움, 할머니의 애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소라는 담임과 1시간 정도를 온갖 이야기로 면담을 거쳤다.
면담을 마치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기도 하고 뻥 뚫린 것 같기도 했다.
4월 중순에 어머니와 만나기로 했다. 하교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평일 오후 2시에 만나자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결석할까 생각하다가 결석하면 담임의 슬픈 눈이 떠 올라 일단 학교는 갔다. 조례를 마치고 나가는 담임 뒤를 따라가 조퇴 좀 시켜 달라고 했다. 담임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묻는다.
”엄마가 만나자고 해서 조퇴하려고요.“
담임은 지갑을 꺼내더니 만 원을 주면서 엄마 만나러 갈 때 장미꽃을 사서 가란다.
담임이 사람인가?
성인(聖人)인가?
신(神)인가? 어안이벙벙하다.
왜 나에게 이렇게 잘 대해 줄까?
내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이러는 거야? 생각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