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윤헌 Apr 25. 2024

업(業)

가게 문을 열고 첫날 매출이 5십만 원 정도 수입이 되었다. 사채 5천만 원을 3년간 갚는 조건으로 이율 20% 적용하여서 한 달에 2백2십3만 원을 매달 지불하기로 했는데 매일 50만 원, 한 달 28일 일하면 1,400만 원이 매출 오르면 30% 재료비 4백2십만 원을 제하고 월세 일백만 원을 지불하고 가스비라던가 세금을 150만 원 정도 하면 월 수익이 600만 원 정도는 된다는 계산으로 시작하니 벌써 재벌이 된 기분이다. 둘은 정말 열심히 했다. 6개월까지는 하루 70만 원까지 매출이 올라 배달 아르바이트도 한 명을 둘 정도였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가는 것 같았다. 

 미순의 둘째 동거인이 돈 버는 재미에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고 너무 열심히 하다가 원인도 모를 병에 걸리고 말았다. 설사를 자주 하고 헛구역질하는 병인데 큰 병원에 입원하여 온갖 검사를 하여도 병명이 없다는 것이다. 의사는 세계 학회에 이 병이 무엇인지 의뢰해 보겠다고 한다. 아마도 6개월 정도는 걸린다는 것이다. 분식집 가게는 일하지 않고 병원비만 잔뜩 쓴 1개월에 모아둔 돈이 바닥이 났다. 3개월이 지나자, 사채 업자들이 돈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미순은 주방장을 구해 장사를 시작했지만 전 같이 장사는 되지 않았다. 이제 주방장 월급도 줘야 하니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주방장이 자기 일 있다고 나오지 않고 농땡이를 치는 날이 종종 있다. 병원비도 만만찮다. 6개월이 되자 사채는 눈덩이 같아 불어나고 둘째 동거인의 병세는 호전되는 것이 없고 세계 학회에 보낸 병명이 왔는데 아직은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한다. 앞길이 막막하다. 6개월을 더 버틴 미순은 병원비, 사채에 시달리다가 결국 사채 업자에게 가게를 넘겨주는 대가로 천만 원을 받아 천만 원을 병원비로 예탁하고는 나이 27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온 미순은 염치가 없었다, 집 떠난 지 7년 만에 집에 온 것이다. 그것도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 실패하여 오갈 때 없어 찾아온 집이다. 그러나 부모는 죽은 줄 만 알았던 딸이 집에 오자 기쁨이 더 컸다. 아버지는 별로 내색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행색이 초라한 미순을 울면서 맞아 주었다. 어머니는 규선 이야기를 했다. 딸과 아들을 데리고 와서 딸 찾아내라고 한바탕 야단법석을 피우고 갔던 것이다. 그리고 2번 정도 찾아와 미순의 소식을 물었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하자 그 사람 다음에는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큰소리치고는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순은 7년 동안 떠난 집이라 약간은 낯설지만 그래도 고향 집의 평온함에 안락하게 며칠을 보내고는 무엇을 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28살의 나이로 세 번째 남자와 처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하였다. 거제 조선소에 하도급 업체인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검소하게 살아가는 반듯한 청년이다. 무슨 인연인지 옆집 아주머니의 중매로 두 달 만에 결혼식을 하였다. 오랜 방황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행복을 맛보는 미순이다. 둘은 결혼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을 임신했고 두 살 터울로 딸까지 출산했으며 시집은 홀로 사는 시어머니가 거제에 작은 식당을 하는 집이라 서울에서 식당 일을 경험한 미순은 자기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은 며느리 잘 보았다고 칭송이 자자했다. 미순의 고향에서는 미순이 다른 애들을 낳은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모두 취직하여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 시집가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미순은 소라를 더는 찾지 못했다. 엄마로서 마음속에는 늘 소라와 규창이 있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미순은 시집과 친정을 오가며 부지런한 삶을 살았다. 마치 집을 나간 7년의 몫을 다하려는 사람처럼.

여기까지가 엄마가 소라를 버리고 간 인생의 역정이었다.

소라 엄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소라야 미안하다“

눈물을 훔치며 이야기하는 엄마를 빤히 쳐다보는 소라는 측은하기도 하고 뻔뻔하기도 한 엄마를 어떻게 이해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엄마가 집에 갈 시간이라며 시간을 재촉했다. 소라는 왠지 서운한 감이 들었다. 지금 같이 사는 식구는 자기가 정성을 다해야 하고 자기는 딸로 인정하지 않은 것 같아서 속이 상한다.

그래도 엄마라도 만났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엄마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할머니가 또 술에 취해있다.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업(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