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윤헌 Apr 24. 2024

업(業)

규선과 결혼식도 하지 않은 채 같이 살아간 시간이 4년쯤 지났다. 소라가 3살이고 동생이 돌을 지났을 때 이미순은 이제는 결혼 생활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보따리를 꾸리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기로 한다. 안방에는 아침임에도 시어머니는 술에 만취되어 이미순에게 온갖 욕을 하다가 술에 곯아떨어져 자는지 그냥 있는지 조용하다. 이미순은 미리 준비한 돈 20만 원을 들고 아이들에게는 엄마 잠깐 나갔다가 오겠다며 소라에게 이야기하고는 집을 떠나 버렸다. 집을 떠나 마산 고속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를 타고 무작정 서울로 갔다. 애 둘 엄마지만 나이는 겨우 24살이다. 처음 떠나려고 결심했을 때는 소라와 규창이가 눈에 아른거려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시어머니의 주사(酒邪)와 1년 전부터 부쩍 술주정이 심한 신랑을 믿고 살기에는 앞길이 너무 막막하여 홀로 떠나기로 하고, 결심한 이상 어떤 후회도 하지 않으리라 맹세한 이미순이다.     

 이미순은 서울에서 아가씨 행세로 대형 갈비 식당에서 숙식이 제공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수수한 모습의 미순은 일 하나는 깨끗하게 처리하는지라 곧 사장으로부터 인정받아 3개월 만에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직으로 인정받아 나름대로 통장에 쌓이는 돈 액수를 보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주정과 사랑 떠난 신랑보다는 돈이 좋았다. 그러나 이미순도 엄마인지라 늦은 밤이면 혼자 소라 사진과 규창이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정이 많은 엄마였다. 이미순은 2년 동안 일하며 밖 출입은 거의 하지 않고 식당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저축한 결과 1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저축했다. 기술이라도 있으면 작은 가게라도 낼 수 있는 돈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이라 기술 교육이 없었기에 무슨 기술을 배울 것인가를 고민해도 뚜렷한 해답이 없다.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밤늦도록 일하고 오전에 시간을 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믿음이 없던 미순이라 혼자 애태우기만 할 뿐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주방에 주방 보조로 있는 총각이 미순이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둘이 결혼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평소는 쳐다볼 시간도 없었지만 회식할 때 미순이 옆에 앉아 수줍게 맥주 마시던 총각이다. 이름 정도는 알지만, 신상정보는 아무것도 모르는 총각이다. 미순은 속으로 주방 보조 오빠를 좋아했지만, 애 둘 딸린 도망간 주부라는 것을 알면 무조건 퇴짜 맞을 것이 뻔한 일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았다. 주인아주머니의 말이 나오고부터는 주방 보조는 맹렬히 미순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식당 일 마치고 자려고 하면 문자로 잠시 보자고 하여 주차장에서 30분씩 자기 삶의 희망을 들어 주어야 했고 어떨 때는 늦은 시간이지만 포장마차에서 소주도 한잔하는 시간도 가졌다. 주방 보조도 무척 어려운 환경에서 중학교 겨우 졸업하고 요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그릇 닦는 아르바이트부터 출발하여 지금은 주방장 보조로 일하는데 나이는 28살이라고 한다. 미순보다는 2살이 많다. 그리고 총각도 착실하여 6년간 모은 돈을 거의 쓰지 않고 저축하여 작은 분식집이라도 차려서 살고 싶다고 했다.     

 둘은 몇 번 만나면서 정도 들었고 모텔도 한번 다녀왔다. 그리고는 결혼하자고 한다. 그러나 미순이가 결혼식을 할 처지가 아니다. 친정집에 안 가 보았는지가 벌써 6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결혼식에 올 하객도 거의 없는지라 결혼식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주방 보조는 자기 홀어머니에게 인사만 드리고 같이 살자고 했다. 식당 쉬는 날 강화도 총각 집에 가서 바닷일 하는 늙은 어머니를 보고는 서울에서 동거를 시작했고 이때부터 두 사람이 모은 돈 5천만 원으로 분식집을 열기로 하고 동대문 시장 부근의 조그만 가게를 계약하는데 가게 전세가 장난이 아니다. 5천만 원을 턱도 없고 1억에 월 백만 원이다. 사회 경험이 별로 없는 두 사람은 목이 좋아 사채를 빌려 가게를 계약했다. 

작가의 이전글 업(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