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은 규선의 전문학교 과사무실에서 규선의 행방을 물어 퇴근 시간에 규선이를 찾아갔다. 규선을 만나 임신 사실을 알렸고 규선이는 약간 당황스럽다는 표정과 헛소리 몇 번 하더니 인정하고 그냥 자기 집에 홀로 사는 어머니에게 자기 애를 가진 여자라고 소개하면서 같이 살아야겠다고 선전 포고하듯 엄마에게 통보한다. 남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했지만, 미순은 규선과 고3 때 3일 정도 여관에서 섹스했을 뿐인데 이렇게 홀로 사는 시어머니와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시어머니지만 어른이기에 잘 대해 줄 것으로 생각한 이미순은 규선이 집에 들어간 지 10일 만에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시어머니는 24살에 결혼하여 25살에 규선이를 낳고 27살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보상금 하나 없이 3살 먹은 아들 하나만 달랑 남은 셋방에서 출발하여 20년을 식당 설거지부터 시작하여 노점상을 하면서 아들을 전문학교라도 졸업시켰는데 느닷없이 족보도 없는 어린 여자아이가 임신하여 나타났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같이 살아가려니 하루 이틀은 참았지만, 일주일이 넘어가자 울화통이 치밀어 견딜 수가 없어 소주 2병을 먹고 대판 잔소리하는데, 잔소리만 하는 게 아니라 불순물을 토하고 아래로는 오줌도 싸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어린 미순에게는 복도 지지리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이미순이 학생 시절에 화려하게 우아하게 산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현재 모습을 이해 못 할 일도 아닌데 이런 모습을 보니 자신의 운명이 왜 이런 것이냐고 반문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이미순의 친정도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며 아들 하나에 딸 둘을 키우는 집이라 여유로운 생활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잡비를 받으려면 책을 사야 한다고 거짓말을 해서 몇 번이나 재촉해야 몇천 원을 주는 것이 전부인지라 고등학교도 겨우 갈 정도였다.
소라를 출산한 지 1달 지나자 미순에게도 행복은 찾아왔다. 술주정하던, 시어머니도 평상심을 찾았고 규선도 매달 일정한 봉급이 나왔기에 미순은 소라 키우는 보람과 미래가 보여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미순이 태어나 직접 계획하여 돈을 쓸 수 있었고 아이의 이쁜 옷도 엄마로서 사 줄 수 있는 기쁨은 솔직히 말해 처음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지지리 궁상이던 아버지 밑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 시어머니의 횡포가 조금은 있었지만, 규선의 성실함과 딸의 재롱을 막을 수는 없었다. 비록 2층 전세의 초라한 신접살림이고 어린 나이에 애를 낳은 부끄럼도 이제 당당한 미순이다.
미순은 둘째 아들을 낳고 행복의 정점을 찍었다. 아들을 낳은 기쁨에서 그런지 신랑은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고 시어머니는 아들을 저주하면서 술을 마시고 주사에 젖어 세월을 보내는 형국이다. 시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혼자된 몸으로 규선이 하나 키운다고 재혼도 하지 않았는데 규선이가 이미순을 임신시켜 집에 데리고 온 후에 배신감으로 하루하루 잠을 못 이루고 술로 아픔을 대신하다가 규선이 취직하여서는 이미순에게 경제권도 넘겨주니 심장이 보통 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아들까지 낳으니 이제 모든 것이 이미순에게 빼앗긴 것 같아 속이 더 상하여 매일 주사(酒邪)를 부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