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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Apr 29. 2024

업(業)

세상의 일이란 한 치 앞을 내대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일인 것 같다. 이런 것을 고3 나이에 깨달은 소라는 왠지 성숙한 여자가 된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나타난 것이다. 소라 아빠가 집에 찾아왔을 때는 혼자의 몸이 아니라 새엄마와 동생 둘을 데리고 나타났다. 규선이가 여자를 데리고 엄마에게 인사시키던 날 할머니는 술에 만취하여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고함을 지르며 패악을 질렀다. 이러다가 아파트 주민들에게 쫓겨나는 것이 아닐까 두려운 소라였다. 할머니의 행패에 규선이 물러날 리 없었고 식구를 데리고 가버렸다. 또 아빠와 이별이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시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했다. 고3이라 여름 방학 보충 수업이 있었지만, 담임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수업하지 않기로 했다. 대학에 갈 처지도 안되고 실력도 되지 않았기에 후회도 없는 소라였다. 학교에 있어도 공부는 하지 않았고 방학이라도 특별히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할머니의 주정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방학이 되니 할머니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 더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나오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 달 일하니 돈이 조금 생겨 기분이 좋아진 소라였다. 더운 여름이 슬금슬금 지나가더니 2학기가 개강 되었다. 소라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아침에 학교 가지 말까 생각하다가 담임 얼굴이 떠오르면 학교로 가게 되었다. 담임이 슬퍼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추석이 지나가고 할머니의 생활이 비교적 평온하게 지속되었다. 술주정도 많이 하지 않고 음주도 많이 줄었다. 소라는 할머니가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엄마와는 가끔 통화도 했다.     

 10월이 왔다. 날씨도 청명하고 따뜻하다. 소라는 아침에 학교에 가지 않았다. 여름 방학에 한 아르바이트 시급을 모아두었다가 가출 자금으로 사용했다. 담임이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소라가 전화를 받지 않는 장소가 울산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소라 엄마입니다. 늘 저희 딸한테 신경을 써 주시고 두 번이나 이렇게 딸, 아들 만나게 도와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형편이 어려워서 선물이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렇게 염치 불고하고 문자를 드립니다. 소라가 선생님 자랑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희 부족한 딸아이 잘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사는 게 힘들어서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찾아뵙겠습니다. 늘 수고하시고 저의 딸 많이 보살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거제에서 소라 엄마」      

 문자를 받은 담임은 소라가 가출 중이란 이야기를 해 줄 수가 없었다. 엄마가 가출한 10월에 딸인 소라도 가출을 했기 때문이다. 가출할 이유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도 술을 많이 잡숫지 않아 좋아졌다고 했기 때문이다. 담임은 할머니와 통화도 하고 동생하고도 통화를 했지만, 소라가 가출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담임은 소라의 장기 결석으로 졸업이 힘들었지만, 소라의 장래를 위해 반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납부금이나 앨범비를 대신 해결해 주고 고3이란 특수성을 내세워 장기 결석임에도 퇴학 처리하지 않고 졸업자 명단에 올렸다, 그 후 소라에게 전화는 오지 않았고 행방도 알 수 없었다.      

                                                  -the end-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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