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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May 17. 2024

분리불안

1. 인연(因緣) 만들기     

 1985년도 늦은 봄, 나른한 오후 시간에 미장원에 서너 명의 아줌마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웃고 떠들고 있다. 원장은 연탄불 위에 있는 고데기로 의자에 앉은 할머니의 머리를 파마에 열중하면서도 아줌마의 수다에 말 한마디 지지 않고 다 참여하고 있다. 오후 시간이라 손님이 별로 없었다. 거기 모인 아줌마들이 미장원 근처에 사는 살림 사는 공무원 부인도 있고 신랑이 자그마한 알루미늄 창틀 만드는 공장 사모님도 있고 저녁 장사하는 술집 마담도 있었다.     

 오후 3시쯤 되었을까? 긴 생머리를 한 아가씨가 미장원 문을 열고 들어온다. 모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다. 이 변두리 마을에 저런 미인이 살고 있었단 말인가? 미장원 원장은 잘 알고 있는 사람인가 반말하며 어서 오라고 한다. 동네 아줌마에게 공손히 인사하고는 의자에 앉는다. 미장원 원장이 “ 피아노 학원은 우야고 이 시간에 미장원에 다 왔을까?”

“네~ 머리가 길어 답답하여 머리 정리 좀 할까? 하고예. 바쁘면 다음에 올까예?”

“아니다. 다 했다 이쪽 사람은 머리하러 온 게 아니다”

“머리숱을 좀 쳐 주시고 끝은 좀 잘라 주세요.?

피아노 학원 원장인지 강사인지 몰라도 참 예의 바른 모습이다.

시간이 저녁 준비할 시간이 되어가자 아줌마들이 뿔뿔이 자기 집으로 갔다.     

 다음 날 점심 먹자마자 희숙은 미장원으로 갔다.

”우얀 일인교 알루미늄 사장 사모님이 이틀 연속 미장원에 다 오시고?“

”뭐 하나 물어봅시다. 어제 피아노 학원 선생님 잘 아시능교?“

”잘 알지는 못하지만 길 건너 “정 피아노” 원장 하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오는 단골이라예.“

”아가씨가 이쁘고 예의 발라서 우리 동생하고 인연을 맺어 주고 싶어서예.“

”동생은 뭐하는데예“

”국립 대학교 나와서 구미에 전자 회사에 다니는데 참 잘 생겼서예. 미장원 원장님이 중매 좀 써 주소. 중매비는 섭섭하지 않게 드릴게요.“

”저 아가씨도 부산에 국립대학 출신이고 피아노 실력 있다고 소문 나서예. 동생 사진 한 장 줘 보소. 중매함 써 볼게요.“

희숙은 동생 인물만큼은 자신 있었다. 자기 학력은 별로였지만 친정 오빠나 동생의 학력은 누가 봐도 최고 수준이다. 잘생긴 동생 규혁이는 국립대학이 아닌 전문학교 전자과 출신인데 아가씨가 탐이 나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어차피 그 당시에 중매는 거짓말이 남발하던 시절이라 마음속으로 그리 죄책감도 없었다.     

 일주일 후에 규혁이 증명사진을 가지고 미장원에 갔다. 미장원 원장도 규혁이 사진을 보더니 입을 딱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다. 부리부리한 눈에 쌍꺼풀이 완벽했고 신성일 사진 보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키는 우찌 돼요?“

”176cm이고 몸매도 탄탄해요. 체육 대회를 하면 대표로 달리기 상을 다 타 올 정도예요,“

”알았심더. 아가씨에게 기별하여 의중을 떠 보겠심더.“

”아가씨 마음에 든다. 하거든 사진 한 장 부탁합시데이. 동생에게도 물어봐야 되거든요.“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알루미늄 창틀 가게로 미장원 원장이 뛰어갔다.

”사모님 예. 처자 사진 가지고 와서 예.“

”아가씨가 우리 동생 맘에 든다 합띠까?“

”내가 사모님 집안 이야기 좀 하고 사진 보여 주니 한번 만나 본다고 하길래, 사진 한 장 달라고 해서 바삐 와서예.“

미장원 원장은 희숙의 말에 두 배는 더 얹어 허풍을 친 모양이다.

중매쟁이의 특징이다. 그래서 잘 되면 술이 석 잔이고 잘못되면 뺨이 석 대라 하지 않던가.     

 중매의 말이 오가고 한 달 뒤 초여름 일요일 아침 11시에 대구 금호 호텔 커피숍에서 규혁과 현주는 마주 앉았다. 규혁이 그리 말주변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평소에도 여자들과 이야기하거나 노는 것에 별 관심이 없던 규혁이었다.

”안녕하세요. 김규혁입니다.“

”안녕하세요. 정현주라 합니다.“

”누나가 나가보라 해서 나왔는데 어리둥절합니다. 맞선은 처음이라서요“

”저도 단골 미장원 아주머니가 규혁 씨 집안 자랑을 많이 하면서 꼭 나가 보라 해서 나왔어요.?“

”현주씨는 대구 본토 베기가 아니죠.? 말투가 여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네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서 대학 마치고 대구 왔습니다.“

현주는 순간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해 버렸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별거하면서 대구에 도망해 오듯 하여 어릴 때 배운 피아노를 바탕으로 피아노 학원에 다녀서 초등학생 몇 명 지도하는 게 전부인데 미장원 원장이 대학 나왔다고 이야기해서 자기도 모르게 대학 졸업을 이야기했다.

”네 학원 학생들은 말을 잘 듣습니까?“

말주변이 없는 규혁은 첫선에 나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다.

”미장원 원장이 규혁 씨 누나가 매력 있고 이쁘다고 하던데요. 나도 얼핏 보았는데 이쁘더라고요.“

규혁은 누나가 그리 멋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기와 세 살 터울이라 많이 싸우고 누나를 많이 울렸다는 사실만 머릿속에 있다. 누나는 어릴 때 몸이 약해서 늘 엄마 등에 업혀 한약방을 다녔고 시골 아버지들의 고집 때문에 높은 학교로 진학도 하지 못했다. 

규혁은 현주를 향해 미소를 보냈고 현주는 규혁의 미소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잠시 당황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호텔 커피숍에 앉아있으니 정말 탤런트가 영화 찍는 것 같은 분위기다. 찻잔을 나르던 호텔직원도 곁눈질로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다가 점심 먹으러 가까운 식당으로 갔다. 평소 먹성이 좋던 규혁이라 만둣국 백반을 먹었고 현주는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첫선 본 사람의 데이트 식단으로는 아주 조촐했다. 점심 먹고 몇 정거장을 걷다가 헤어졌다. 규혁은 명함을 현주에게 주었고 현주는 피아노 학원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현주는 규혁이에게 첫눈에 반했다. 첫째가 덩치도 있고 몸매도 듬직하고 둘째가 말이 많지 않은 점이고 셋째가 잘생긴 얼굴이고 넷째가 직업이 있으니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겨우 고등학교 3학년 자퇴한 내가 대학 졸업한 규혁에게 인증받을까를 고심했다. 규혁도 현주가 마음에 들었다. 첫째 이쁘다는 것이고 둘째 수다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 후에 규혁이 현주에게 전화하였고 두 사람은 만나서 데이트를 즐겼다. 만난 지 2달이 채 못 되어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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