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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08. 2023

고전(古典) 체험  -論語 學而篇-

고전(古典) 체험

-論語 學而篇-


 고전(古典)을 읽어라. 고전에서 인생의 지침이 나올 것이다. 어릴 때부터 들어오던 말이나 현실감이 나지 않았다. 실감(實感)보다는 의혹이 많았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머리로 이해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막상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최근에 논어(論語)의 학이편(學而篇)에 실려 있는 글을 실제 체험하고는 왜 고전이 중요하고 위대한가를 체험했기에 글로 옮겨 본다.     

 논어 학이편(學而篇)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이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이다. 아주 평범한 말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 정보사회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에서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금방 퇴물이 되는 세상이라 자꾸 배워야 한다. 특히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와 동떨어진 사회에 서 있다는 것은 불행 중에 최고의 불행일 것이다. 현재 70살 이상 먹은 세대 중에 컴퓨터를 운용하는 사람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의 삶의 질에 차이는 천양지차(天壤之差) 일 것이다.     

 나는 정보화 사회에서 스마트 폰을 즐겨 사용한다. 카카오톡도 사용하고 카카오스토리에도 친구가 142명에 사진도 43장도 올려놓고 페이스북도 매일 아침 검색을 한다. 카카오스토리는 30대 이상이 많이 애용하는 편이고 페이스북은 20대가 많이 사용한다. 5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수많은 제자로부터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서 편지를 받았고 문자로도 안부 문자를 받았으니, 정보화에 근접한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고 기뻐하고 있다.     

 또 하나는 독서이다. 나는 담임을 하면서도 자율학습 시간을 통해 독서를 꾸준히 해 왔지만, 지금처럼 독서에 열중해, 본 적은 없다. 월요일은 도서관 휴관이라 화요일 아침 9시만 되면 진동 도서관에 간다. 엄청 많은 장서(藏書)가 있기에 마음대로 책을 고르는 재미가 아주 좋다. 나는 늘 철학 관련 서적 1권, 교육 심리학 서적 1권, 소설이나 수필집 1권을 기본적으로 고르고 두 권은 책 제목이 좋거나 작자의 이름을 보고 골라 총 5권의 책을 빌려온다. 대여 기간은 10일간이지만 난 매주 화요일이면 반납하고 또 5권을 책을 빌려온다. 가끔은 정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10일을 채우지만, 정독하는 책은 한두 권이고 나머지는 내가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읽는다. 이제는 수업 마치고 10분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는다. 너무 재미가 좋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학이편 두 번째 문장이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이다. 벗이 있어 스스로 멀리서 찾아주면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있다는 것은 무조건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지천명(知天命)이 넘으면 친구의 존재는 훨씬 더 귀중하리라. 공자는 벗이 찾아주면 즐거움이라 했는데 나는 내가 찾아주고 친구가 기꺼이 반겨주는 것도 멀리서 찾아오는 기쁨보다 못지않으리라 장담한다.     

 친구도 여러 부류가 있지만 나는 소중히 여기고 자주 소통하는 친구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죽마고우(竹馬故友) 형으로 고향 친구 또는 초등학교 동기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엇으로 규정하기 힘든 친구인데 고등학교 동기로 남들보다 더 친하게 지내는데, 관포지교(管鮑之交) 형도 되고 백아절현(伯牙絶絃) 형도 되는 친구들이다.     

 초등학교 동기들은 매년 두 번씩 정기 모임을 하지만 상조회가 강해 1년에 6번 이상은 만나는 것 같다. 언제 만나도 늘 같은 마음으로 만나고 같은 행동을 한다. 5월 19일에 친구 장인상이 서울이라 새벽같이 서울에 조문하였다. 서울에 거주하는 여자 동창도 나오라고 연락하고 갔는데 친구가 정말 고맙다고 한다. 하루에 서울을 왕복한다는 것이 힘든 줄 알지만, 친구니까 갔던 것이다. 조문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데 교육부 장관이 앞에 앉아 있다. 형님과 지인이라 가서 인사를 했다. 반갑게 악수하고 인사해 준 교육부 장관이다. 평교사와 교육부 장관의 만남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인데 친구에게 오니 이런 일도 있다고 생각하니 친구를 찾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인 것 같다.     

 5월 17일 석가 탄신일이다. 아버지 사십구재를 올린 법당이 있는 포항에 갔다. 법회하고 점심 공양을 마친 뒤 포항에 있는 고등학교 친구에게 전화했다. 포항에 사는 고등학교 동기가 두 명인데 두 명 모두 너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저녁에 밥 먹자고 하니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저녁 7시에 마치는 친구가 있어 7시에 약속하고는 포항 오천에 있는 오어사(吾魚寺), 호미곶에 관광을 마치고 약속 장소에 갔다. 부부 동반하여 6명이 모여 참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장장 6시간을 수다를 떨어도 끝이 없다. 부인들은 10년 만에 만났다고 하는데도 스스럼없이 대화가 오간다. 다음날 숙취로 약간 늦게 일어나 생각해 보니 서울 가도 환대해 준 친구가 있고 대구 가도 환대해 준 친구가 있고 포항에 가도 기쁘게 맞이해 주는 친구가 있으니 얼마나 기쁜가! 친구들이 건강하게 재미있게 살자.    

(대학 시절 지리산 등산 때 찍은 친구들 사진)     

 논어 학이편(學而篇) 셋째 구절이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한가?이다.      

 현대인은 모두 자기 과시용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화려한 옷에 짧은 치마를 입고 남의 눈에 확 들어오게 하려고 노력한다. 정부에서조차 홍보부를 만들어 정부의 일에 부풀린 홍보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 내 주위에 있는 선생님들도 자기 일을 과시하는 경우가 참 많다.      

 나는 어린 시절 도덕 교과서에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 늙고 어수룩한 노인이 무엇인가 열심히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있어 주변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였고 경찰이 노인을 조사해 보니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깨진 유리 조각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린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고 있는데 발에 찔리면 큰일이니 유리 조각을 주었다고 한다. 그 노인이 ‘페스탈로치라’는 위대한 인물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그 후로 나는 내가 한 일을 남에게 과시하는 것을 엄청나게 자제한다. 그 때문에 친한 동료에게 문책도 가끔 당하기도 한다.      

 교무회의에서 경상남도 교육감이 1년에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 3,000명 정도 되니 퇴학하는데 숙려기간을 두어 퇴학을 자제하라고 한다는 전달이 있다. 초등학교는 학교 그만두는 학생이 많지 않을 것이고 중학교도 의무 교육이니 그 숫자가 적다고 보면 고등학교에서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 많다고 가정할 수 있다. 시내 연합고사 지역의 학생은 탈락이 적다고 보면 우리 학교 같은 경우가 퇴학을 많이 시킨다는 것이다. 기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아 결석일 수 따라서 중도 탈락하는 학생이 많이 있다. 한마디로 선생은 최선을 다하는데 부모나 학생이 학교에 다니지 않으려고 하여 중도 타락한다고 강변하는 담임이 많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작년에 정직 3개월 중징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니 2명이 장기 결석이다. 한 명은 2학년 때 내가 담임한 학생이라 등교시키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나는 인간의 진정성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기에 믿음을 향상 우선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전화 1통으로 바로 학교에 다니도록 했는데 또 다른 장기 결석 학생은 내가 담임을 하지 않은 학생이다. 2학년 때 학년 부장하면서 어려운 학생이기에 자주 이야기했고 많이 포옹해 주었던 학생이다.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아니고 삼고초려(十顧草廬)를 해도 먹고사는 게 우선이라 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학생이 강변한다. 부모 없이 누나와 둘인데 누나는 대구 근교의 간호학과에 다니기에 이 학생에게 영향력이 별로 없고 큰아버지가 있는데 큰아버지도 거의 포기한 것 같다. 오히려 큰 아버지가 집에서 나가라 하여 돈을 벌어 생겨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 6번을 방문하여 학교 다니자고 종용했다. 학생이 아르바이트하여 먹고살아야 한다며 완강하게 거부한다. 최후의 수단인 퇴학 통지서를 보내니 반응이 온다. 물론 퇴학시키려고 보낸 통지서는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퇴학시키지 않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내가 23년 동안 담임하면서 퇴학이든 자퇴든 시켜 본 학생이 몇 명 되지 않는다. 다시 학생 가게로 가서 협상했다. 등교하면 조퇴는 시켜 준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생 명단에 이 학생의 이름을 넣을 수 있었고 나를 아는 몇몇 지인에 의해 역시 “홍 부장님이 시네”라는 덕담도 받았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니 올해 담임 배정에 나는 빠졌고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울분을 삭였지만,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렵게 졸업시킨 학생도 전화도 없고 스승의 날이라고 카톡도 없다. 화를 내지 않는다. 언젠가 그 학생이 내가 고마울 때가 있겠지. 인간을 길들이는 것은 채찍이 아니라 시간이라 하지 않던가?     

                                      2013. 5. 26 憲     

※1년 후 수능 시험 마치고 나오는데 휴대전화기 홍보를 위해 교문에 있다가 내가 나오니 길에서 아버지라고 크게 불러 찐한 포옹을 하여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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