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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13. 2023

권위적인 선생님 반성

권위적인 선생님의 반성     

 올해부터 우리 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명사(名士)를 초청하여 선생님의 자질 양성을 위해 연수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번이 두 번째다. 첫째는 3월 말에 교원대학교에 재직 중인 임 응 교수님을 초빙하여 “창의적인 수업 설계”라는 주제로 연수받았다. 감동적인 연수임이 틀림없지만 내가 어떻게 실제 수업에 적용할지는 내 마음속에 명확한 계획이 수립되지 않아서 실천하기에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받을 연수는 부산 동명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윤형진 특수 교육 담당 선생님이다. 평교사로 교직에 입문하여 특수 교육을 위해 박사학위까지 취득하여 장애 학우들을 가리키는데 정열을 바치는 분으로 강의도 매우 재미있고 내용도 매우 알찬 강의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는 특수반이 편성되어 있지 않기에 몸이나 마음으로 느끼는 감동이 강의하시는 선생님의 열정에 미치지 못함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강의 내용의 핵심은 장애인(障碍人)으로 이해하지 말고 장애인(長愛人)으로 이해하고 다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함을 싫어하거나, 힘들어하지 말고 좀 더 가까이 가서 들어주고 이해하면 우리와 똑같이 살아갈 수 있는 인간임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이제 나이가 서른아홉 살이 된 졸업생이 생각난다. 21년 전(1990년)으로 기억을 거슬린다. 교사 경력 2년 차에 첫 담임이다. 그 당시는 51명이 한 반의 정원이었다. 우리 반은 교통사고 입원으로 복학한 학생이 있어 52명이었다. 첫 담임이라 모두 착하고 천사 같다. 열과 성을 다해 학생들을 파악하는데 3일이 지나자 눈에 들어오는 약간의 특별한 학생이 보인다. 말이 어눌하고 수업 시간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선생님의 시선을 교란하는 학생이다. 일주일 지난 일요일 자정에 전화가 왔다. 이 학생의 부모다. 학생이 일요일 참고서 사러 간다고 점심시간에 나가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자정에 체육복을 입고 서점이 많은 곳을 가본다. 서점은 문을 다 닫았고 주변에 사람도 별로 없다. 학생을 찾는 데 실패했다. 첫 담임이라 학생이 잘못되면 담임이 무한 책임이라고 생각했기에 많은 걱정을 하다가 쪽잠을 자고 아침에 출근했지만, 학생의 빈자리만 보일 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학생의 집을 방문하니 부모가 하는 말이 “내가 그놈을 어떻게 키웠는데 학교에서 무엇을 요구했는지 밖에 나가 아이가 없어졌다는 말이고” 한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금은 학생과 부모와 주변 관계를 잘 설정하지만, 첫 담임이라 부모가 나이가 많은지도 몰랐던 시절이다. 부모와 한참을 대화하다 보니 이 학생이 ‘업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날 오후에야 학생이 등교했다. 마산에 참고서가 없어 부산까지 갔다 왔다고 한다. 그것도 기술 참고서를 사러 갔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첫 담임인데 저 아이를 1년 동안 어찌 지도할까. 생각하니 참 막연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모자라는 학생이 아니라 정상적인 학생으로 규정하고 잘못하면 철저하게 응징했다. 생활면에서는 잘못하면 훈계와 더불어 벌로 청소도 시킨다. 다만 학습적인 면은 아량을 최대한 적용하고, 작은 일을 해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학년에도 우리 반이 되었다. 비교적 적응이 많이 된 것 같다.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번에 강의 오신 윤형진 선생님은 부모님이나 도우미와 함께 수학여행을 가야 한다고 하신다. 그러나 그 당시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담임이 못 간다고 하면 못 가고 가능하다고 하면 갈 수 있던 시절이다. 이 당시 우리 반에는 이 학생보다는 상태가 약간 좋지만, 어릴 때 아파트에 떨어져 뇌를 다친 학생도 정상적인 활동을 못 하는 학생도 있었다. 약간 걱정도 되는데 학년 부장과 학생부장이 두 학생은 수학여행 갈 수 없다고 진단한다. 지금이라면 그냥 동의하고 말았겠지만, 그 당시는 혈기 왕성한 교사가 용납이 안 되는 결정이라 반발하고는 두 명 모두 수학여행을 데리고 갔다.      

 설악산에 가기에 종일 차를 타고 가는데, 버스는 45명 정원인데 52명을 태우니 7명은 서서 가야 할 판이다. 한 시간씩 교대로 앉고 서고 한다. 그런데 이 두 학생은 열외다. 노래를 부르는데 이 학생이 신청한 곡이 ‘학교의 종이 땡땡땡’이다. 그리고 ‘송아지’이다. 나는 그때야 이 학생의 정신연령이 초등학교 1학년에 멈추었다고 생각했다. 수학여행에서 생긴 일화(逸話)가 너무 많지만 하나만 소개하면 전 학년이 여관 마당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즐겁게 놀다가 잠자러 들어가는데 우리 반 학생 30명이 잠을 잘 방에 문이 잠겨 있다. 여관에 이야기하자 예비키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문을 노크해도 대답이 없다. 창문으로 쳐다보니 이 학생이 이불을 안고 코를 골며 자는 것이다. 무려 두 시간이나 문을 발로 차고 창문을 흔들어 겨우 입실하여 잠을 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때 우리 반 학생들이 정말 고맙다고 생각한다. 아~~ 이래서 학년 부장과 학생부장이 데리고 오지 말자고 했구나. 경륜을 너무 무시한 것을 잠시 후회했다.      

 이 학생이 이렇게 된 원인이 마흔이 넘은 부부에게 누군가 집 앞에 아이를 갖다 놓고 갔는데 나이가 든 부모가 금(金)이야 옥(玉)이야 키웠다고 한다.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하다 보니 초등학교 1학년 이후 지능이 발달하지 못한 것 같다. 장애가 선천적인 것이 아니고 후천적임을 알고 계속 지도하면 괜찮아질 것이라 믿었지만, 쉽지 않았다. 겨우 졸업을 시키고 몇 번 우리 집으로 찾아와 차비를 얻어갔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이 전혀 없다. 이번 교육을 받으니 문득 이 학생이 생각이 난다. 인생 끝까지 책임을 져야 진정한 선생님인데.     

 저녁 자율학습을 한다. 종회 시간에 연수받은 내용을 간단히 우리 반 학생에게 소개했다. 부언(附言)으로 의지가 적음도 현대인에게는 장애(障碍)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장애인(障碍人)에게는 많이 들어주고 이해하면서 장애인(長愛人)으로 대우해야겠다며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관대한 선생님이 되겠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고 이야기하니 일부 학생은 인상이 찌그러지고 일부 학생은 농담임을 알아차리고 일부 학생은 아예 관심조차 두지도 않는다.     

 저녁 자율학습 시간이다. 열심히 공부한다. 복도에서 이 반 저 반을 다니며 잠자는 아이는 깨워주고 MP3를 듣는 학생은 못 듣게 하고 잡담 나누려고 하는 학생은 제지한다. 남들은 자율학습지도는 그냥 노는 줄 알지만 이렇게 열심히 해야만 학생들이 공부한다.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선생님이 아침 7시 30분 출근하여 저녁 10시 30분에 퇴근하는 아주 무식한 직업인이다. 하루 15시간 근무하는 집단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무식한 직업인이기에 남의 말을 쉽게 듣지 않는 약점이 선생님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며 다니는데 우리 반에 한 학생이 문을 열고 나오며. “화장실에 갈깁니다.” 한다. 순간적으로 “들어가 앉아!! 허락도 없이 화장실을 다니고 있어” 하면서 짜증을 냈다. 그러자 학생이 하는 말 “배 아파 똥이 마려워 죽겠는데도 선생님 허락이 필요합니까?” 한다. 학생의 말이 맞는 말이다. 


 한 시간, 열심히 들은 연수는 왜 했다는 말인가? “알면 실천해야지” 철학도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은 가장 기본적인데. 급한 생리 현상인데도 허락이 필요하단 말인가. 내가 민주적인 선생님으로 약간 자부하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비록 장애 학생이 아니라 일반적인 학생에게도 많이 들어주고 칭찬하는 것이 선생님의 할 가장 큰 임무인데 내가 그걸 잊어버렸다니~~~.     

 차를 타고 퇴근하는데 자꾸 뒷머리에서 ‘똥 누려도 맘대로 못가나? ‘라는 말이 귓가를 맴돈다.     

                                               2011. 4. 13 저녁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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