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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13. 2023

귀환(歸還)

귀환(歸還)     

 5년 만에 3학년 학년 부장과 담임으로 돌아왔다. 4년 동안 인성 부장과 환경복지 부장의 책무를 수행했다. 남은 퇴임 기간까지 담임 업무는 안 할 줄 알고 담임하던 모든 기억을 지우고 현실에 주어진 일에 충실하였다. 부장으로 주어진 일의 임무를 완벽까지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이 인정해 줄 만큼은 해결했다는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며 학교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사적인 생활은 즐기면서, 여유로운 삶을 지향했고 주변의 같은 또래 사람에게 약간의 시기와 질투를 받으며 퇴근 후 취미생활과 가끔 기분 좋은 음주(飮酒)를 즐기기도 했다. 2017년에는 맡은 직위도 내려놓고 평교사로 수업에 집중하다가 시간이 되면 퇴직하겠다고 관리자에게 통보(?)까지 해 놓고 봉사활동으로 상조회 총무를 맡기로 했다. 그러자 젊은 선생님이 곁에 와서 경상남도 교육청 소속 상조회 최고령 총무라고 농(弄)을 한다. 그래도 10년 이상 차이 난 선생님이 이런 농담을 해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2017년 2월 10일에 2017년 업무분장(業務分掌)을 발표한다. 발표하기 전에 교장 선생님이 나에게 3학년 부장을 맡아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난 4년 동안 담임을 하지 않았기에 감각이 무디어 3학년 진학시키기에는 힘이 든다고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최근 비담임이라면서 학생들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도와준 이력을 내세우면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그래도 이제 삶의 향기를 느끼며 살아가는 나에게 그런 중책은 안 된다고 거절하고 나왔다. 막상 업무 분담에서 “3학년 부장 홍윤헌 선생님이라고 발표하며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했다”라고 덧붙인다. 뭐라 더 이야기하기 힘들었다. 어영부영하다가 수락한 꼴이 된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책임 완수나 하자.     

 3월 개학하자 분주하게 움직인다. 출장이 많아졌다. 서울에 1박 2일로 명문 대학에 입학사정관을 만나러 갔다. 종합 생활기록부 작성의 포인트와 면접, 자기소개서, 교사 추천서 잘 작성하는 방법이나 대학에서 보는 요점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니 한 시간 정도 면담해도 에너지가 쭉 빠진 느낌이다. 몇 개의 대학을 차례로 방문하니 진학에 자신감과 촉이 형성되는 기분이다. 또 며칠 있다가 영남권 명문 대학을 방문하여 정보를 취합했다. 아직 좀 어리둥절 하지만 적응되어 가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든든한 것이 3년 연속 3학년 담임하는 선생님 두 분이 있어서 부장이라도 자존심 버리고 모르면 솔직히 모른다고 이야기하며 자문한다.


 출장이 많아지니 학교에 있는 우리 반 학생이 걱정된다. 나 없이 잘하고 있나 싶은 걱정이 된다. 실제로 최근에 수업하는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 담임 맡으면서 최고 걱정이 3월 이내에 학생 이름과 학생을 동시에 알 수 있느냐가 걱정이 되어 잠을 설친 적도 있다. 그것은 기우(杞憂) 임이 틀림없었다. 이틀 만에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러도 틀리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담임으로서의 본능이 살아나는 기분이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하면 일찍 등교하는 학생이 한두 명 있다. 옛날에도 늘 그랬듯이 일찍 등교하는 학생과 교실 청소를 한다. 나는 집에서는 청소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학교 오면 청소를 잘한다. 반백의 스승이 양복을 입고 빗자루 들고 교실을 청소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청소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학생이 등교한다. 일일이 미소로 맞이한다. 내 기분이 좋아진다. 올해 반 학생을 간단하게 면담하였는데 불우한 환경보다는 대부분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이다. 한 명의 여학생이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안 계신다고 한다. 피부도 아주 희고 얼굴도 해맑은 미소를 지닌 여학생이 그런 처지라니 내 가슴이 아프다. 표시 안 나게 잘 보살펴 주리라 생각해 본다. 5년 전에는 반 전체가 남학생으로 엄마 홀로 사는 가정이 많아 등교하는 남학생들을 많이 포옹(free huge) 해 주었지만, 지금은 아직 공감이 형성되지 않아 미소와 간단한 인사만 한다. 등교가 끝나면 바로 자율학습을 시작하고 나는 독서를 시작한다. 그렇게 하루가 기분 좋게 시작한다.     

 3월 중순에 마산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학년 부장 모임 한다고 연락이 왔다. 같은 처지에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처지라 소속은 틀려도 소주 몇 잔에 쉽게 친해지는 집단이다. 이야기에 공통분모가 있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잘 통한다. 5년 만에 다시 부장 모임을 가니 전부 낯선 사람이다. 세대교체가 된 것 같다. 내가 원로부장임이 틀림없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 대부분이고 40대 초반 선생님도 보인다. 다음에 이 모임에 참석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한다. 그래도 정보를 많이 얻기 위해서는 참석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5년 전에 같이 3학년 부장하던 선생님들은 교감이나 교장이 되었든지 아니면 명예퇴직을 한 선생님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가슴이 아픈 일이다.     

 이제 한 달이 지나간다. 같은 학년 담임이 감기로 고생한다. 보통 3학년 담임 맡고 3월 말쯤이면 몸살 내지 감기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면역체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나도 시간 외 수당을 상한선까지 받을 정도로 학교에 오래 있는 편이다. 토요일에도 근무한다. 아직 어린 아동이 있는 여자 선생님들은 될 수 있으면 일찍 귀가시키고 토요일에는 집에서 가족과 같이 보내라고 주문한다. 우리기 직장 생활하는 이유가 가족의 행복이 목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있는 여자 선생님들이 작년에 없던 행운이 왔다고 좋아한다. 귀환했으면 발자취를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귀환이 남에게 욕되지 않기를 고심해 본다.


                                                              2017. 3. 24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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