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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14. 2023

김밥 두개

  김밥 두 개     

 2007년 10월 19일 우리 학교가 소풍 가는 날이다. 우리 반은 무학산 등산을 계획했는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급하게 창원 성산 아트홀의 창원 미술 협회 미술 전시회에 가기로 변경하였다. 전시회를 감상하고 안보회관에서 안보 영화 상영을 보며 안보 교육 체험으로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따뜻한 가을 날씨에, 정상에 올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려고 기획한 소풍이지만 비가 온다니 어쩔 수 없이 하루 때우는 방식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 행사를 바꾸려면 급식에 문제가 많아 날짜를 변경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다.     

 아침에 10시까지 성산 아트홀 광장에 모이기로 했다. 나는 9시 20분에 도착하니 우리 반이 아닌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많이 보였고 다른 학교의 학생들도 꽤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다른 학교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했다고 생각하니 쓴웃음이 난다. 현대인의 유기체적 삶 때문에 무엇 하나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시가 가까워져 오자 우리 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걸어오면서 출석 눈도장을 찍는다. 모두 한마디씩 한다. “샘 예!~~~비가 안 오고 날씨가 아주 좋은데∼예”. 10시 10분에 인원 점검하니 몇 명의 학생이 지각했다. 늘 지각하는 학생인데 소풍이라고 일찍 오겠는가? 그래도 선생님은 지각없기를 기대는 했는데……. 20분 후에 3명이 나타났다.     

 10시 30분부터 관람하기로 하였으나 다른 학교 학생과 유치원 학생, 초등학교 학생이 많아서 11시에 입장하였다. 매번 전시회 관람에 학생을 인솔하여 보지만, 그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수백 점의 그림을 감상하는데 10분이면 충분한 시간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전시장에서 자주 횡포(?)를 부린다. “모두 그림 한 점 앞에 서라 그리고는 눈동자 돌리지 말고 3분씩만 쳐다봐라. 느낌이 오면 아주 좋고 느낌이 안 와도 자꾸 쳐다봐라.”

학생들 표정이 그리 달가워하는 표정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구조적 문제인 것 같다. 뒤에 따라오는 학생들이 정체되어서 빨리 가자고 아우성을 친다. 그래도 고집을 피워본다. 우리 반은 남학생이기에 덩치에 자신이 있으니…….1층, 2층, 3층까지 관람하고 나온 시간이 11시 40분이다. 점심을 먹고 12시 20분에 안보회관으로 이동하니 12시 15분까지 이 장소에 모여달라고 전달한다.     

 반 학생들이 점심은 싸서 왔는지 아니면 돈으로 가져왔는지 약간의 걱정이 된다. 개성이 강한 학생이 너무 많고 엄마가 없는 학생이 다수가 있기에 걱정이다. 성산아트홀 밑에 뷔페식당이 점심 특선으로 5,000원 했던 기억이 있어 알아보았더니 11,000원이란다. 학생에게 정보를 제공하자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 옆 반 선생님이 우리도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한다. 아침에 아내에게 김밥 좀 싸 달라고 부탁하려다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옆 반 선생님은 학생이 도시락을 주더라고 싱글벙글하면서 같이 먹자고 한다. 조금 있으니 2학년 부장 선생님이 김밥 먹자고 한다. 부장 책임이 무거웠는지 자기는 집에서 3인분 정도 싸가고 왔다고 한다. 그래서 잔디가 있는 곳으로 장소를 옮겨 먹기로 했다.     

 막 자리를 옮기려는데 우리 반 최고로 주체성이 강한 학생이(자기 엄마 없이 아버지와 같이 사는 학생임) 누구의 도시락을 뺏었는지 일회용 김밥 도시락을 두 손으로 들고 입에는 김밥 가득 물고는 하는 말……. “샘예!!! 김밥 잡수소이” 한다. 고맙다고 받아 보니 김밥 다 먹고 달랑 2개가 남아 있다. 그래도 웃으면서 김밥 하나 입에 넣는데, 언제 왔는지 우리 반 학생이 한 개 남은 김밥을 달랑 채어 가버린다.

“샘예!! 잘 먹게심더…….”

김밥은 준 학생이 협박한다. “너 인마 죽는다. 샘 밥을 우예 훔쳐 가노.”

김밥을 가져간 학생이 말하기를. “나도 배고픈데 우짤기고…….샘 미안합니다. 담에 돈 벌 거든 맛있는 거 많이 싸 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꼭 맛있는 것 싸 줘야 한다. 알았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것이 현실이다. 내 나이 또래 샘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예의(禮義)인데도 요즘 학생들은 쉽게 한다. 표현도 쉽다. 이것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아니면 시대의 흐름으로 수용해야 하는가를 반문하면서 옆 반 선생님의 김밥을 같이 먹는다.     

                                           2007. 10. 23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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