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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15. 2023

소등식(消燈式)

소등식(消燈式)     

 2008년 11월 7일 금요일 밤 9시다. 3년 동안 불 밝혀 공부한 교실에서 소등식을 했다. 며칠 남지 않는 수학능력시험을 눈앞에 두고 3년 동안 즐겁고, 힘들었던 추억을 뒤로하며 시행하는 소등식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큰 행사이다. 3년 동안 할 것이라고는 공부밖에 없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밤늦도록 불 밝힌 교실을 떠나는 섭섭함을 하나의 추억으로 남기는 일이 소등식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학생이면 누구나 아주 하기 싫은 자율학습이라 자율학습을 하지 않기 위해 얕은꾀로 핑곗거리를 만들어 냈으며, 튼튼한 육체를 얼마나 구박하고, 거짓의 아픈 표정을 위해 애쓴 연극이 얼마나 많은 3년이었던가? 자율학습 빠지는 방법 중에 치과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치료가 오래 지속되고 또한 예약하는 관계로 담임 선생님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대구의 D 여고 학생이 자율학습 도망갔다가 복도에서 담임에게 체벌받는 동영상이 유포되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런 사건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담임 선생님을 완벽하게 속여야 하는 어려움을 고등학교 3년 내내 머릿속에 간직해야 했다.     

 수시 모집에 많은 학생이 합격하였기에 실제 수학 능력 시험이 필요한 학생은 별로 없는 것이 우리 학교 실정이다. 올해는 내가 3학년 1반을 맡으면서 수시 모집에 응시했지만, 수학 능력 시험 최저 등급이 필요한 대학에 진학을 권했기에 우리 반 학생은 2명 빼고는 모두 수학 능력 시험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막바지에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하고 있다.     

 다른 반 학생의 숫자는 몇 명 되지 않았기에 우리 반만 마지막 자율 학습하는 날에 소등식을 하자고 반 학생과 대화로써 절충하였다. 모두 좋은 반응이다. 돈 들이지 않고 추억을 만들려니 좋지 않을 수 없겠지? 

반장에게 의견을 제시해 보았다. 

“학급비 얼마 남아 있냐?”(학년 초에 게시판 만드는 데 사용하라고 학교에서 4만 원 지원한 것은 좀 아껴 쓰고 좀 남아 있다고 반장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반장이 “2만 원 남아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2단 케이크로 할까? 아니면 떡으로 할까?” 돈이 모자라면 내가 전액 부담할게.

오늘 저녁 시간에 잠시 나가서 결정해 와라. 반드시 초는 5개 있어야 하고, 「수능 대박」이란 글씨가 쓰이는 것을 선택하도록 하자. 

“네 알겠습니다.” 반장이 대답했다.

 그날 저녁에 문자가 왔다.

‘떡값 35,000원 (정성떡집 271-5800)

무지개떡이고 35명 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도 답했다.

’응 수고 내일 보자-담임‘     

 2008년 11월 7일 마지막 수능 모의고사를 치른다. 아침에 느닷없이 5명의 여학생이 시험을 치지 않겠다고 한다. 모의고사 치는 그것보다는 그냥 공부하는 게 좋다고 한다. 미리 신청한 모의고사 비용 1인당 6,000원은 어찌할까? 하니 그건 모르겠다고 한다. 해결책은 시험지 공급업체에 혀 꼬부라진 소릴 하던가? 담임이 그냥 줘 버리던가 해야 한다. 담임 처지에서는 그냥 치면 좋으련만 강요할 수 없는 상황이다. 좀 얄밉지만, 수능시험 며칠 앞두고 신경전 벌일 수 없을 것 같아 참았다. 내 경험상 시험 치르는 것이 가장 공부가 많이 된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이해가 적은 것 같다.     

  반장에게는 저녁 시간에 떡 케이크를 좀 찾아오라고 했다. 돈 20,000원 주면서 5,000원은 음료수를 좀 준비하라고 하니, 반장이 자기 돈으로 하겠다고 우긴다. 같은 반에서 똑같은 선생님에게 배운 학생인데 참 차이가 크다는 걸 느낀다. 이런 생각 잠시 하다가 10,000원을 더 주면서 너희들 좋아하는 과자도 좀 사 와라. 다른 반 학생도 몇 명 있으니까? 반장은 고맙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반에서 단국대학교, 인천대학교, 국민대학교를 최종 합격한 김 0사 학생에게 대략 초안을 잡아 주고 진행을 맡겼다. 학생회 부회장을 하면서 많은 일을 경험한 학생이라 미덥다.     

 모의고사 채점을 하고 저녁 식사를 했다. 다른 반에서 평소 자율학습 하는 학생보다 숫자가 많이 늘었다. 왜 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오늘 좋은 행사가 있어 남아 있다고 한다. 8시 30분에 1, 2학년 자율학습을 마치고 하교했다. 이제 3학년 교실에만 불이 밝다. 9시에 학년 부장 선생님과 옆 반 담임 선생님이 오셨다. 떡 케이크를 책상 위에 놓고 다른 반 학생들도 오라고 한다. 35,000원짜리 케이크에는 팥으로 “수능 대박”이라 글자가 있고, 초도 5개 꼽았다. 수능이 500점 만점이라 5개를 꼽았다. 여기저기서 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환호한다. 이 환호가 자율학습이 끝나서 하는지 아니면 깜깜한 교실에 5개 촛불의 불빛이 강해서 환호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 맞을 것 같다.     

 김 0사 학생이 원숙한 진행을 한다.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도 하고 함께 힘든 시간도 회고했다. 3학년 부장 선생님께 격려의 말씀도 부탁하고, 안 0호 반장에게 답사도 부탁한다. 평소 워낙 말없이 묵묵히 자기 일과 반의 일을 똑 부러지게 하는 학생이 좀 어눌하지만, 답사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컵에다 음료수를 따르고는 나에게 건배 제의를 한다. 

“수능 대박을 위하여” 하자 모두 “위하여”를 제창하고 환호한다. 케이크 자르기도 하고 맛있는 무지개떡을 먹으며 서로 잘하자고 덕담도 한다. 30분 지나자 대충 끝이 나서 집에 가자고 하니 다른 반 학생이 밀대를 가지고 와서 청소해 준다. 베풂의 미덕에 바로 화답이 온다.     

 퇴근하면서 독서실에 가는 학생 두 명을 태우고 갔다. 오늘 저녁 괜찮더냐고 물어보자 매우 좋았는데 너무 짧다고 한다. 각자 돌아가며 개인의 소감도 들어 보았으면 더 좋았다고 한다. 그 생각을 못 했네, 촛불 타는 시간이 한계가 있어서 그렇게밖에 못 했다. 다음에 소등식 하면 일반 초를 꼽아 놓고 진행해야겠다. 이래서 또 1년이 지나간다.      

  3년 동안 담임하면서 학생과 부대끼며 학교생활을 하고 나면, 수능 시험 치러 가는 제자를 보면 자식 이상으로 정이 가는 학생이다. 우리 딸도 이번에 수능 시험을 치지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지 못했다. 자꾸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닦달만 했다. 3학년 1반 학생들 모두 시험 잘 치고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여 행복한 삶의 터전을 마련해 달라고 빌어본다.     

                                     2008. 11. 8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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