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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19. 2023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고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고.


 독서광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독서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20년 가까운 고등학교 담임을 맡다 보니 자율학습이란 명목으로 학생들과 교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 무료함을 달래고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려고 독서를 한 것이 이제 습관이 되어서 남에게 빠지지 않을 정도로 독서한다. 그런데 올해 들어와서는 독서를 많이 하지 못한 것 같다. 반 학생들이 워낙 개성이 강해서 지도하느라 너무 힘을 뺀 모양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자율학습 감독을 하면서 우연히 학생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책 「마시멜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몇 장을 읽어 보니 어린이 동화 같은 것이 재미있어서 쉬는 시간도 잊어버리고 2시간 동안 아주 재미있게 책을 읽고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감상문을 쓴다.     

 지은이는 「호아 킴 데 포사다」이고 출판사는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발간한 이 책은 미국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시멜로를 소재로 운전자 찰리, 사장님 조나단의 대화를 시작으로 출발하면서 찰리의 행동이 변해간다는 이야기인데, 내가 읽고 느낀 점은 3가지이다. 첫째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행동하지 말고 참고 견디며 절제된 행동을 하라 이고 둘째는 눈앞의 욕심에서 오는 무지의 선택이 아니라 냉철한 예지력(叡智力)을 바탕으로 정확한 계산 위에서 판단하라는 것이고 셋째는 찰리가 고등학교 때 차를 몰고 메이퀸과 드라이브를 즐겁게 보낸 화려한 생활이고 반면 조나단은 공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많은 고생을 한 것이 나중에는 찰리는 운전자이고 조나단이 사장으로 바뀐 것을 보면 세상은 참 공평하고 앞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2007년 9월 15일 토요일이다. 1년에 1~2번 찾아오는 감기 때문에 그리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출근길에 올랐다. 화창한 가을 날씨가 되어야 수확의 계절이 되는데 추석을 9일 남겨둔 시점에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학교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에 갑자기 하늘에서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주머니에서는 전화벨 진동이 심하게 몸서리를 친다. 2분 후 학교에 도착하기에, 운전 중에 전화를 잘 받지 않는 습성 때문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잘 걸리지 않던 신호등에 차를 멈추었다. 호주머니에서는 전화기 진동이 계속 내 몸을 닭살로 만들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받아 보았다. 학부모라 한다. 00 엄마라고 했다.     

 전화를 건 요지는 작년에 자기 아들이 기숙사에 있었는데 전자수첩을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전자수첩을 기숙사에 있는 친구가 찾았다고 했다. 전자수첩에 비밀번호를 걸어 두었기에 그 번호를 넣으니 쉽게 작동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자수첩을 소지하고 있는 학생이 학교 학생회장이란다. 학생회장이 아들 친구를 두들겨 패 주고 비밀번호를 알아내고는 자기 것이라 우긴다고 아침에 문자가 왔더라는 것이다.


 학생 분실물 사건이 일어나면 굉장히 신중해지는 것이 나의 성격이다, 전자수첩이 우리 반 학생의 물건이라 단정되어도 그 물건을 소지한 학생을 도둑으로 몰리게 되니 신중에 또 신중해야만 한다. 학부모의 전화를 받고 잘 조사해 보고 문제 해결을 원만하게 해 주겠다고 대답해도 학생의 어머니는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꼭 물건을 둘려 받고 훔친 학생도 처벌을 원하는 것이다. 난감하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교무실로 가면서 머릿속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가설을 세워본다. 처음 대안으로 기숙사 사감과 학생부장 그 반 학생 담임과 함께 4자 회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학생회장을 불러서 조용히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학생부에 공식적으로 사건의뢰를 하여 문제 해결할 것인가? 마지막으로는 경찰서까지 갈 수 있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어제저녁에 먹은 감기약 기운이 몸 전체를 휘감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출근하면서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학생회장이 식당에서 나오며 나에게 인사를 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너 내하고 이야기 좀 할레? “라고 말을 하려다 잠시 참고 교무실로 갔다. 내 자리에 막 도착하여 커피 한잔하려고 준비하는데, 전화 진동 벨이 내 몸을 요동치게 만든다. 발신자 번호를 보니 아는 모르는 전화, 번호다. 

“선생님 방금 우리 엄마에게 전화 왔지요”라고 한다. 

전자수첩을 잃어버린 학생이다.

그래서 내가 ”응 “이라고 대답하자 

전자수첩의 주인인 우리 반 학생이 이야기한다. 내 친구가 내 골탕 먹이려고 거짓 문자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러면 ”전자수첩은 찾았는가? “

“네”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침 독서를 위해 교실로 갔다.

기숙사에서 문자 넣었고 맞았다는 학생이 나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나도 아무 말 없이 미소를 건넨다.

사건의 전말(顚末)은 전자수첩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책장에 잘못 넣어 두었는데 그것을 우리 반 학생이 찾아주면서 장난을 친 모양이다.

이야기를 듣고 학부모에게 문자를 보낸다.

’모든 문제 해결되었습니다. 00이 담임 선생님‘

조금 있다가 문자가 학부모한테서 왔다.

’ 감사합니다. 조금 전에는 우리 아이가 맞았다는 말에 너무 놀라서 급한 마음에 강하게 전화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마시멜로 이야기 첫 번째에 15분 참으면 하나 더 준다는 이야기의 내용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책을 읽고 지식으로 머리에 가두어 둘 것이 아니라 나처럼 실천해 보아라. 많은 이득,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아침 날씨는 좋지 않지만 내 마음은 산뜻하다. 앞으로도 독서를 많이 해야지…….     

                              2007. 9. 15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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