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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18. 2023

아빠라 불리는 선생님

아빠라 불리는 선생님     

 대한민국에 모든 선생님은 『교육함』을 목적으로 교단에 서 계실 것이다. 목적은 모두 같지만, 그 방법론에서는 천차만별이고 각양각색인 것은 학생을 위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방법에 따라 학생에게 인정받는 선생님과 미움받는 선생님이 계실 것이고 비록 현재는 미움을 받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학생을 지도하여 20년이나 30년 후에는 정말 좋은 선생님으로 제자의 가슴에 남는 선생님이 계실 것이고 지금 인기가 많던 선생님이 시간이 지나면 가슴 언저리에서 사라지는 선생님의 지도 방법도 있을 것이다.     

 교직 경력이 20년이 넘었다. 담임도 첫 발령받아 1년은 안 하고 줄 곳 담임을 해 왔다. 주위에서는 왜 자꾸 담임만 하느냐고 핀잔 반, 격려 반으로 이야기하지만, 담임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또 담임이 없으면 무엇인가 허전하여 교직이 싫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기실 우리 학교는 학생 지도가 어려워 대부분 담임을 회피한다.      

 처음 담임할 때는 학생들과 형 아우로 지내며 목표는 무조건 성적 향상이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만 교직자의 신성한 의무를 마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벽부터 자율학습 하여 밤늦도록 자율학습을 하는데 교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야 하고 잠을 자거나, 공부 이외의 행위를 하면 인간적인 모욕감도 서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10번의 담임이 지나면서 학교의 정책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우열반 편성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 학교 학생의 성적이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의 성적이 나쁨에도 우열반 편성한다고 하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우열반 편성을 하지 못할 이유로 몇 가지 논리를 편 것을 보면, 학생들의 장래 문제다. 이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서 동창회를 하면 성적이 낮은 반에 있는 학생들이 동창회에도 나올 수 없다고 하였으며, 둘째는 아이들이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어서 열반의 학생들 발달 장애를 입는다는 것이고, 셋째는 열반의 학생들이 좌절감에 중도 탈락자가 많아진다는 주장이었으나 나의 주장은 아랑곳없고 우열반이 편성되었고 나는 열반 중에도 최악의 열반을 맡으면서 공부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것 같다.     

 올해로 20번째 담임이자 2학년 학년 부장을 맡았다. 작년에 3학년 특별반 담임하여 명문 대학에 다수를 보내고, 올해는 우리 아들이 2학년이라 2학년 담임을 신청했는데 부장까지 하란다. 물론 반은 최악의 남학생 열반이다. 학생들을 분석하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몇 명 있고, 차상위 계층과 빈곤가정 학비 지원(의료보험 24,200원 이하) 자, 농어촌 학비 지원을 합하면 35명 중 19명이나 된다. 나머지 16명도 겨우 밥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이다. 체육대회를 해도 음료수 하나 사줄 학부모가 없어 담임이 지갑을 열어야 할 지경이다. 공부보다는 결석 지각없고 담배 피우지 말고 머리 단정히 하고 복장 깨끗이 한 교육이 나의 임무로 부과되었다. 생활 기록부를 보면 1학년 때 결석 10일 이상 학생이 10여 명이며 지각 10회부터 25회까지 한 학생도 10여 명이 보인다.     

 매로써 다스려야 하나 사랑으로 다스려야 하느냐를 놓고 많이 고민했다. 결론은 양쪽을 같이 실행하는 방법을 택했다. 칭찬을 많이 하되 잘못된 행위에는 가차 없이 매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매는 보기보다 사용을 많이 하지 않은 것 같다. 무단 외출자 3명을 발바닥에 매로 심하게 때렸더니 더는 무단 외출자도 없고 결석도 거의 없다. 다만 한 학생이 우울 증세가 있고 바보와 정상의 ‘경계인’으로 사는 학생만 자기 마음대로 결석한다. 그 학생도 6월부터는 많이 좋아져서 결석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우리 학교는 남녀 공학이라 여학생도 많이 있다. 특별반의 여학생은 별로 애교도 없다. 그렇다고 공부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보통 반의 여학생은 칭찬받으려고 무척 노력한다. 공부 대신 칭찬으로 아이를 바꾸어 보려는 내 노력은 계속된다. 그러자 반응이 일어났다. 우리 아들과 초등학교를 같이 나온 여학생이 “현기 아빠”라고 호칭하면서 친근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누구의 아빠이기에 별로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주체성이 매우 강한 여학생 5명이 있다. 1학년 때부터 많은 선생님으로부터 질책을 밥 먹듯 한 여학생인데 그중의 여학생이 “현기 아빠”에서 현기를 빼 버리고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키 크고 덩치도 큰 나에게 수시로 다가와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다른 여학생도 덩달아 아빠라고 부르며 자기들끼리 다투기도 한다. 우리 반 남학생들이 여학생 보고 한 마디씩 한다. 왜 우리 아빠보고 너희들이 왜 아빠라고 하느냐? 재수 없다. 가라! 소리를 친다. 그러자 여학생들은 더 힘찬 소리로 아빠라고 부른다.      

 3개월이 지났다. 아빠라는 호칭은 여전히 따라다닌다. 그리고 여학생들의 행동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는 술집에서 몰래 술을 먹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학생 상담실로 왔다. 징계 범위를 놓고 5명 여학생 담임과 협의했다. 중징계를 주장하는 담임도 있었지만, 화장실 청소 2시간으로 결정하고자 제안했다. 학년 부장이 경징계를 원하니 안 할 수 없는 처지라 경징계하기로 했다. 내가 상담실로 들어가 “우리 예쁜 딸들 술 먹고 논다고 얼마나 고생 많이 했나.?” 하자 “아빠 미안해요. 다시는 술집에 안 갈게요.” 한다. 그래 내가 너희들 믿으니 잘해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면 더 아프다. 알지? 하니 일제히 “네” 한다.     

 믿어야지 분명히 바뀔 것이다. 5명의 가정사는 알지 못하지만, 정(情 )이 고프고 사랑이 고프고 영혼이 고픈 학생일 것이다. 성적 지상주의에서 휴머니즘으로 바뀌는 데 20년이 걸린 것 같다. 내 주체적이 아니라 학교의 정책 덕에 바뀐 것이지만 나는 잘 바꾼 정책이라 생각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이 나라의 구석구석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내 딸들아, 사랑한다. 

                                2009. 6. 19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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