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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18. 2023

학생부 초보 선생님

학생부 초보 선생님     

 교사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교육철학을 갖고 싶어 할 것이고, 갖고 있을 것이다. 기실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 보내기, 인성적으로 바른 학생 키우기, 봉사하는 정신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키우기, 자기의 소질과 적성을 바탕으로 자아실현을 이룩하도록 키우기 등등 교사마다 나름대로 교육철학을 가지고 지도한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이 최후에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임은 분명하다. 궁극적 목표 설정은 같지만, 가는 방법은 다르기에 학생들 지도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교사들 행위 중 내가 최고 싫어하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상대적 편견을 가지고 폭력을 행사하는 교사이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 약점이 많다. 예를 들어 부모가 이혼한 집안에 학생이 아침에 지각하고 결석하는 학생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런 학생을 엄청난 폭행으로 다른 학생이 겁을 집어먹고 교사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도록 만드는 교사이다. 물론 부모가 항의하지 않을 집안의 아이를 철저히 파악한 다음 폭력을 행사하는 타입이다. 나는 이런 사람을 선생님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학급 경영 실적에는 늘 최고의 점수를 받는다. 가슴 아픈 일이다.     

 수수방관적인 선생님이 있다. 학생 개개 행위에 무관심하게 방치하는 선생님이다. 지각하던, 결석하던, 도망을 가던, 납부금이 많아 학교 재정에 부담을 주던지, 말든지 상관이 없다. 그냥 아침에 출석부 들고 가서 출석 체크하고 업무가 있으면 행정적 업무만 하고 수업하면 선생님의 업무가 다 끝난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이다. 직무태만임이 틀림없지만, 별달리 처벌 규정이 없다. 그래서 ‘철밥통’이란 비아냥거림을 듣는 대표적 사례다.     

 편 가르기에 익숙한 선생님이다. 잘하는 학생과 잘하지 못한 학생을 구별하여 상(賞)과 벌(罰)이 확실한 선생님이다. 칭찬받는 학생은 최고로 좋은 선생님이지만 벌을 받는 학생에게는 끔찍한 삶이고 치유 불가의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에 정말 조심해야 하는 선생님 유형이다. 이런 선생님 반에는 질서는 잡히지만, 학생들이 늘 불안해한다. 그리고 서로 반목하며 책임 문제에 아주 민감하다.     

 자기 기분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중심 없는 선생님이다. 학생들은 이런 선생님을 ‘변태(變態)’라고 지칭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역 이용하는 타입이다. 기분 나쁘면 절대 접근 금지하다가 기분이 조금 좋으면 필요 없는 조퇴도 하고 없던 병도 생기는 타입이다. 그러나 늘 조심해야 한다. 기분은 늘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분 좋을 때 찾아가서 부탁하다가 갑자기 기분이 바뀌면 큰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인격적으로 학생을 대우하는 선생님이다. 정확히 해부는 안 해 보았지만 참 재주가 좋은 선생님이다. 늘 학생들이 좋다고 아우성친다. 젊으면 젊었다고 이야기하겠지만 50대인 선생님인데도 학생들이 그리 좋아한다. 인간에게 누구나 공평하게 대우하기는 어렵다. 어리석은 학생도 있고, 똑똑한 학생, 폭력적인 학생이 있는가 하면 말썽 부린 학생이 있는데도 모두 좋다고 아우성친다. 교과 수업받는 학생들도 좋아한다. 그렇다고 실력이 엄청 좋아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학생들이 좋아한다. 


 원칙과 소신이 있는 선생님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나쁘지도 않지만,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인기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았을 때는 이런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판단하는 것이다. 수학과 선생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학문의 영향이 인격에도 미치는 모양이다.     

 학생과 대단히 친숙하고 장난도 잘 치는 선생님이다. 때에 따라서는 폭력도 행사하고 어찌 보면 성폭력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여학생과도 스스럼없이 장난을 잘 치는 선생님이다. 학생들도 좋아한다. 그러나 나이 든 선생님은 아니라고 못 박는 스타일이다.     

 재치 있는 말을 잘하는 선생님이다. 순간순간 넘치는 위트와 재치로 주변을 휘어잡는 스타일인데 요즘 학생들은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진심이 우러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렇다. 나는 옆에서 듣기만 해도 재미있는데……. 수준 차이 때문일까?     

 많은 종류의 선생님 중에 나는 어떤 스타일의 선생님일까? 매일 자기를 규정해 보지만 어느 하나가 내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지조(志操)가 있는 것 같지만 우유부단(優柔不斷)하고 원칙과 소신이 있는 것 같지만 때에 따라 학생의 사정을 다 들어줘 버리고 인격적으로 학생을 대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열광하는 제자는 없다. 그러나 학생들이 늘 다정한 웃음과 선물을 보내준다. 그렇다고 위트와 재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치는 것은 없는데 상담은 많이 한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3%가 부족한 완벽한 선생님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황희 정승의 누렁이와 검은 소가 나오는 우화처럼 학생 앞에서 누구를 극히 칭찬도 하지 않고 나쁜 놈이라고 몰아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 끌고 가는 주체성 없는 선생님도 아니다. 딱 3% 부족한 선생님이다.      

 어제는 올해 마지막으로 학생용의 검사를 했다. 학생부 소속인 나는 2학년 2반, 3반 여학생의 용의 검사 담당이다. 머리 길이 귀밑 25cm, 손톱 길거나, 매니큐어 바르지 말 것, 학생증, 명찰, 소지품 검사, 귀걸이 착용 금지, 교복 착용 등이 검사 대상이다.     

 내가 2학년 3반 여학생 교실에 들어가니 어느 여학생이 윤리 선생님이 왜 용의 검사하러 오시나요? 한다. 옆에 앉은 여학생이 하는 말 “학생부 선생님이잖아” “윤리 선생님은 학생부 선생님 하시면 안 되는데” 한다. 이유인즉슨 단번에 무엇을 고치려 하지 않는 선생님이라 학생부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욕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3% 모자라는 선생님이지만 그래도 내가 지도하는 내용은 따라 한다는 말이다. 한칼에 내리치지 않는 것은 내가 의도하는 것이다. 정말 학생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좋다. 비록 학생부 초보 선생님이지만 더 큰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3학년 여학생 중에 ‘파파’ 내지‘아버지’란 호칭을 많이 쓴다. 나는 단순히 농담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버지만큼 편하다는 이야기다. 3학년 남학생은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바친다. 그래서 학생들의 비밀을 많이 안다. 3% 부족하지만, 괜찮은 선생님이 아닌가? 


                                                          2008. 12. 18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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