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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21. 2023

감사(感謝, Thanks)

감사(感謝, Thanks)     

 감사란 고마움에 대한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나 행위로 규정한다. 원래는 신(神)이나, 절대자, 또는 자연에 대한 숭배에서 인간으로 절대복종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에 그간 자연이 준 모든 음식을 차려 놓고 경건하게 제례를 올리는 행위가 감사의 첫걸음일 것이다. 성경에는 일상생활의 전반적인 것에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하고 감사의 예물을 바치거나 감사의 찬송을 한다. 내가 고등학교 때 우연히 접한 신약성서에서 ‘범사(凡事)에 감사하라’ 문구를 보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을까에 많은 의문을 던졌다. 이 문구가 내 생각에 오래 머물다 보니 나 자신이 모든 일에 조금씩 감사함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음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부분에 감사를 많이 할까? 종교에서 요구하는 범사에 감사하기는 힘들다고 볼 때 개인차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자기에게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일에 대부분 감사를 할 것이다. 그래서 감사함이 많아지면 자기의 부족분이 채워지기에 사람의 행복도 증가하리라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감사보다는 삶의 근원적인 감사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고찰해 보자.     

 첫째로 태어남에 감사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사가 될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지 않으면 세상 모든 일이 나와 관계 맺음이 없기에 태어남이 가장 근원적인 감사의 초석이 될 것이다. 신의 뜻인지 자연의 순리인지, 인간의 욕망인지 알 수 없지만,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난 우리는 살면서 불평도 하고 원망도 하며 또 때에 따라서는 즐거움도 느끼고 현재에 만족도 하며 행복감도 느낀다. 내가 처한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부모를 원망하면 안 된다. 부모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이 세상에 빛을 보게 하고 좋은 조건이든 나쁜 조건이든 우리에게 삶의 장을 열어준 사람이 부모이다. 태어나게 한 사람도 부모이고 가슴으로 키운 사람도 부모이다. 그러니 부모에게는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      

 둘째로 자기 자신에 감사하자. 태어나서 부모나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성장하여 어느 정도 지나면 자립해야 한다. 그 기간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공자(孔子)는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된, 연후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는 법이다.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하여 인간이 부모로부터 자립하는 최소의 시간을 3년으로 보았다. 인간이 자신의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자율적인 의지(意志)로 자기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얼마나 성스럽고 신비한가? ‘인간은 높은 산과 태양과 별들을 보고 감탄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는다.’라고 성 어거스틴은 지적한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자기 자신에게 무한한 감사가 요구되는 이유이다. 내 삶이 풍족하고 편리함도 자신의 의지요, 불만족하고 불평 많고 부족함이 많아 원망하는 것도 자신의 의지이다. 나로 말미암아 모든 현상이 형성되는 것이니 나 자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셋째로 반짝반짝 빛나는 사고(思考) 그리고 망각(忘却)에 감사하자. 신들이 인간의 삶에 은혜와 영광을 주기보다는 늘 어려운 문제를 제공한다. 늘 행복하여지려고 준비하는 우리들의 삶에 방해물로 제동을 건다. 그 방해물이 시간의 부족도 될 수 있고, 병, 가난, 건강, 인간관계가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인간은 그 방해물을 극복하기 위해 총명한 생각과 깊은 궁리로 늘 준비하는 삶을 살았고 현실에 직면하면 어떤 방법이든 문제를 해결한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망각한다. 공부하던 시절에는 많은 것을 암기하는 것이 최고로 좋았다. 공부하면서 많이 암기하지 못한 자신을 조상의 책임으로 원망하던 시기도 있었다. 이제는 많은 것을 잊어버리는 것,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좋다. 설령 옛날의 참 좋은 기억조차도 잊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때에 따라서 약속을 잊어 약속을 못 지킨다든가, 모여서 토론하고 결정하고 수정한 것을 잊어버려 곤란할 때도 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 있었던 즐거움의 기억이 많으면 자만해지고 어려움이나 두려움의 기억이 많으면 트라우마(Trauma)가 생기기 때문이다.      

 넷째 감사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우리가 생활하면서 감사한 마음보다 늘 모자람과 부족함에 불평해 보자. 차고 넘치느냐? 부족한가에 대해서는 1% 차이의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의 차이일 것이다. 절대 빈곤이 있지만, 절대적 빈곤이 우리를 꼭 불행으로 몰아가지는 않는다. 그 사람의 생각에 따라 절대 빈곤이 견딜만한 인생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례를 볼 때 강조하는 것이 부부간에 소통이 첫째요 둘째는 서로 간에 이득을 보기 위해 결혼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부부가 되는 조건으로 서로 득(得)을 보려고 하면 주변의 감사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인생의 반려자로 서로 만나 어떻게 하면 내가 상대에게 도움을 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면 모든 일이 감사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훌륭한 남편을 나에게 보내주신 시부모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시부모에게 효도할 것이고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도록 아내를 정성스럽게 키워주신 장인, 장모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감사의 마음이 생길 것이다. 1%의 긍정적인 사고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인생이니 감사함이 얼마나 감사한가?     

 다섯째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집단에 감사드리자. 홀로 살 수야 있겠지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요즘 많이 보인다. 가끔 고독사하는 사람도 있다. 얼마나 외롭고 불쌍한 일인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려면 공감(共感) 능력이 필요하다. 동식물도 공감 능력이 있지만 고도의 공감 능력이 있는 인간이 너무 좋고, 감사하다. 반증 사례 검사로 우리가 공감 능력이 없다면 부부, 부모, 가족, 사회적 인간관계, 친구 등 형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감 능력이 있기에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반이 된다. 예를 들어 친구가 있음에 감사하고 싶다.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공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음이 절대자의 총애인가 싶을 때가 많다. Helen Keller의 『Three days to see』에서 첫날 첫 번째로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친구들을 보는 것이라 했다. 눈멀고 귀가 먹어 아무것도 듣지도, 볼 수도 없고 단지 감축만으로 느끼는 친절과 동료애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듣기도 보기도 힘든 사람이 그래도 손끝의 감각만으로 느끼는 공감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 Helen Keller는 위대한 사람이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말로 눈빛으로 상대의 말을 들어주면서 공감하자. 그래서 내 주위에 당신이 있어 참 행복하다는 말을 듣자. 그래야 공동체가 있음에 감사를 드릴 수 있다.     

 5가지 이외에도 감사할 일은 너무 많다. 내가 감사를 드리는 5가지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감사함에 감사를 드리는 일이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도 감사하고 공기도 감사하고 물도 감사하고 나무와 자연도 감사하다.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다. 세상 모든 사물이 얽히고설키어 하나라도 없으면 모든 사물이 사라지기에 이 모두에게 감사해야 한다.

                                                            2019. 4. 5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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