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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22. 2023

단상(斷想)

 단상(斷想)


 사람은 어느 시기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기를 택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원초적 불행인지도 모른다. 역으로 자신의 출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으리라 예측해 본다. 태어날 때부터 경쟁의 끝판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생을 선택할 수 없지만, 태어나서는 자기 삶의 선택이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자신의 가치 있는 삶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선택의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자 불행의 원죄가 될 수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하이데거는 ‘피투성(被投性)과 기투(企投)’를 제시한다. 피투성이란 ‘자의(自意)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져 있는 존재‘이고 인간은 살아가면서 불안, 공포, 두려움, 죽음 등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으로든 피하고 싶어 한다. 기투(企投)는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 부딪치기 싫은 것, 나의 무의식이 회피하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 방어하고자 상대와 당당한 맞부딪침이 진정한 나의 자유와 주체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보고 자기의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즉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말에 직면하게 될 운명임을 자각하고 이러한 자각으로부터 자기의 삶을 다시 한번 포착해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시작되는 데 이러한 시도를 ‘기투(企投)’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 갑자(甲子)를 살고 난 후 자기의 삶을 재구성하려면 단상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자신이 총명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늘 어리석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에 한 분인 왕필은 18세에 도덕경의 주석을 달 정도로 총명함이 넘치는데 나는 철학이란 학문을 하면서 새로운 사상을 전개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간 사상가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도 완벽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늘 미흡함이 있어 혼자 바보스러움에 고개를 떨군 적이 많다. 그래서 늘 독서하고 사상의 깊이를 이해하려고 정진(精進)했다. 그리고 그 사상의 덕목을 현실에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작은 문제 해결에도 어려움에 직면한다. 정직, 신독(愼獨)이란 행동강령에 따라 행한 행동은 늘 2% 미흡한 결과를 초래했고, 그 결과는 현실 생활에 불이익을 얻는 일이 많아 혼자 우울해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한 갑자(甲子) 살고 난 후 돌아보니 총명하지 못해 손해를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오히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이익에 몰두하지 못해 내가 손해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은 이익에 몰두하지 않아 더 큰 이익을 얻은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맞벌이 부부를 하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은 약간 있어도 자식들의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되었고 자식들이 성숙하니 자기 일을 부모의 도움 없이 처리하는 것을 볼 때 작은 이익보다는 더 큰 사람을 얻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오직 학생들을 위해 몸 바쳐 일했더니 교장은 되지 못했지만, 제자들이 늘 찾아주는 기쁨을 맛보니 나의 우직함이 인생 전체에 더 도움이 더 크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을 때는 재산이 많은 사람, 수입이 많은 사람을 약간 부러워했다. 결혼할 때 전셋집 얻어가는 주변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는 월세로 결혼 시작하여 단칸방에서 7년간 애 둘 키우며 살았다, 그리고 교사의 월급이 대기업 친구들과 비교하여 60% 수준이라 자본주의 시대에 맞지 않은 직업이라 한탄한 적도 있었다. 딸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과외를 시키려니 내 월급으로 감당하기 힘들었고 재수할 때는 돈 2천만 원이 없어 날개를 꺾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자동차는 늘 중고차로 매입하여 다녔다. 젊을 때는 그것이 약간 불만이었다. 한 갑자(甲子) 살아보니 재산이 있으면, 편리함은 있겠지만 삶에서 행복을 주는 것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적어 월세방에서도 건강하게 살고 부부끼리 오순도순 이야기하니 그게 더 큰 재산이었다. 월급이 적어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다 할 수 없지만, 자식들이 검소함을 일깨워 자신의 앞날에 초석이 됨을 알았다. 늘 중고차지만, 다닐 곳은 다 다녔으며 10년 전부터는 차를 아내가 사용하고 나는 시내버스로 출퇴근한다. 아주 가끔 좀 일찍 마치면 차를 가지고 혼자 갈 수 있는 곳에 못 가는 불편함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유가 있어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보이는 것이 더 많아서 좋은 점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비로소 멈추어야 보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절대 빈곤은 힘들지만, 안락한 집과 기본적인 생활비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무엇일까? 속담에는 ‘누워서 떡 먹기’라 한다. 근데 막상 누워서 떡을 먹어보면 쉽지 않다. 오히려 어렵다. 혹자들은 남에게 충고하거나 간섭하기가 가장 쉽다고 한다. 그것도 실행하다 보면 힘이 센 사람에게 충고하다 맞아 죽을 것이고 똑똑한 사람에게 간섭하다 역으로 충고나 간섭받기 일쑤이고 자기보다 약자를 골라해야 하기에 눈치 없는 사람이 하기에는 엄청 어렵다. 그러면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 어린 왕자에서는 남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하고 중국 고전에서는 자기를 이기는 일(克己)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인간관계가 최고 어려운 일이라 볼 수 있다. 스치는 인연을 잡다가 낭패하는 일, 진짜 중요한 인연이 어리석음에 의해 놓치는 일이 보통 사람에게는 많다. 농업 사회에서는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인연을 맺으니, 인간관계를 쉽게 풀어가지만 현대 사회에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간관계라 어떻게 관계를 맺고 헤어져야 하는가 고민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내게 도움이 되면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내팽개쳐 버리는 결단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힘이 있고 권세가 있으면 이런 방법도 좋은데 내가 평범하면 의리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여 곁에 아무도 없어 대화할 사람이라고는 아내와 자식뿐인데 아내와 자식도 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면 너무 외로워 어찌 살거나!

 한 갑자(甲子) 살아보니 알겠더라. 어차피 남의 마음 얻기 엄청 힘들고 상대가 잘해야 인간관계가 좋아진다고 기대하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지인 중에 입만 열면 돈 이야기 한다. 같이 이야기하기 싫다. 그렇다고 30년 이상 맺은 인연을 버리기는 내 삶에서 용서가 안 된다. 그래서 내린 판단이 상대의 마음과 상대의 상황에 따라 내 기분이 바뀌는 것은 막자. 내 마음을 사심 없이 주자. 솔직 담백함으로 극복하자. 올해 교무실 옆 짝지 선생님이 1년 동안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거짓 없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모든 일을 이야기하는데, 나의 마음이 참 편하다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허물에 따라 내 기분에 좌우가 되면 인간관계가 뒤틀릴 수 있다. 내 의지로 극복하자.     

 평소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이 사람임을 자주 느낀다. 사물이나 재산은 편리함과 풍요로움으로 행복의 수단적 가치는 되지만, 자체적으로 행복을 줄 수 있는 목적적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의 출발이자 행복의 종결은 자기 자신이고 자신에게 줄 영향력은 사람이다.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야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 중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가족 친지이다. 종전 농업 사회에서 친척이 매우 중요했다. 서로 협력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친척이기에 친척의 숫자가 많아야 행복했다. 그래서 씨족사회를 형성했는지도 모른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친척의 의미가 날로 쇠퇴해지고 가족도 품 안에 있을 때는 가족으로 영향을 주다가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지면 남는 것은 아내뿐이다. 아내만으로는 많은 행복을 만들기 힘들어 친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다. 나는 43명이 6년 동안 어린 시절을 보낸 추억이 있는 초등학교 동기 친구는 일 년에 경조사나 모임 통해 7~8번은 만나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또 건해(建海)라는 모임의 고등학교 친구는 우리가 서로 선택하여 친구가 되었기에 45년 동안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들이라 사이가 각별하다. 이해관계도 없지만 서로 베풀려고 노력하는 친구라 늘 마음이 든든하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만나면 더 행복을 주는 친구이다. 다음으로 사립학교에 재직하다 보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단이 직장 동료이다. 오히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리 친하게 지낸 사이는 아닌 것 같다. 오래 근무하면 승진이나 이권의 이해관계가 많아서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이다. 거제도에 한 학년이 두 학급인 중학교에 재직한 선생님의 전언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 제사 지내고 음복 먹으러 오라 하고 생일 잔치한다고 집으로 초대하여 직장이 곧 천국이란 생각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해에 한 사람씩 이해관계가 생기더니 10년 후에는 전부 원수 같이 살아간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 수업 1시간 바꾸기도 어려울 지경이라 한다. 우리도 퇴직하니 그리 만나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다른 학교도 퇴직자 모임을 하는데 잘 되는 곳 보다 만남이 어려운 곳이 더 많아 보인다. 좁은 공간에서 경쟁적 이해관계가 많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한 갑자(甲子) 지나고 친구 관계를 조망해 본다. 지연적이든 혈연적이든 떨어지면 안 되는 사람들 모임에는 특별히 마음을 쓰자. 또한 이 친구들은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면 모든 마음을 열자. 그래서 좋은 사람을 떠나보낼 필요는 없다. 다만 이것은 아니라고 판단되면 과감히 떨쳐버리는 것도 좋은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인연에 얽매여 끌려다니면 인생 자체가 힘이 들기 때문이다. 배우자도 과감히 버리는 세상임을 염두에 두자. 마음에 드는 사람은 물심양면으로 가까이 배려하고 이해관계가 좋지 않으면 모두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제 직장이나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인간관계의 자유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는 것이 겨우 숨 쉬는 것이 전부라는 어느 시인의 이야기도 있지만, 행복하게 살려면 쉬운 것 같아도 주도면밀한 계획과 세심한 배려가 있는 실천이 필요하다. 한 갑자 살고 난 후 인생을 재구성하여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갖추고 아름답게 살아보자.     

                                         2022. 2. 8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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