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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22. 2023

만추(晩秋)의 참살이

만추(晩秋)의 참살이



 불과 반세기 전에는 61세를 수연(壽宴)이라 할 정도로 노인 반열에 올랐는데 급격한 산업 발전에 따른 의료 혜택과 의식주의 편리한 생활, 주변 환경 정화로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 앞으로 퇴직 이후 삶을 어떻게 살아야 참살이가 될까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과 더불어 인생의 플러스알파(α)가 있어야 참살이가 될 것으로 예견되기에 고찰해 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정의(定義)하지만 적용되는 상황에 따라 아주 다양하게 해석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에로스, 아가페로 표현하고 우리 삶에 실질적인 사랑 형태는 가족애, 우애, 형제애, 성애(性愛), 애국심 등으로 표현한다. 한편 종교에서는 사랑을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란 측면에서 기독교는 ‘박애(博愛)’ 힌두교는 ‘카마’ 유교는 ‘인(仁)’ 불교는 ‘자비(慈悲)’ 묵자는 ‘겸애(兼愛)’를 실천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적으로 사랑이란 말을 할 때는 남녀 간의 육체적, 정신적 사랑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적인 남녀 사랑을 고찰해 보면 신라 시대에는 성이 자유롭다고 기록에 나와 있다. 16세 이상이며 누구나 사랑을 할 수 있고 재혼도 가능한 것을 볼 수 있다. 원효대사와 요석 공주의 일화, 무열왕과 김유신 여동생 문희의 혼전 임신, 처용가를 보면 유부녀도 외간 남자와 간통, 서동요에 일국의 공주가 바람난 소문이 일반인이 믿을 정도로 남녀 간의 사랑이 매우 자유분방함을 볼 수 있다. 고려 시대에도 남녀가 개울에서 같이 목욕하는 장면이 자유롭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 가요에는 대담한 성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자료에 의하면 근친상간도 윤리 도덕적으로 별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상속이 딸에게 공평하게 이루어졌기에 재산 누수를 막는 방법으로 근친상간이 정당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건국하여 여성들은 성애의 자유가 많은 제약을 받았다. 결혼에서도 남자는 일부다처제가 용납되고 여자는 일부일처제이기에 여자 재혼 금지. 홍살문으로 여자의 성을 압박했다. 현대에 오면 해방 이후 신여성의 등장으로 자유로운 연애를 시도했으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남성 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볼 수 있다. 특히 경제력이 남성에 집중하니 여성의 권익을 찾기는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부터 맞벌이가 많아지면서 여성의 권익과 성적 자유도 많이 회복된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결혼보다는 이혼이 많은 것을 보면,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독립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정보사회의 영향으로 남녀평등의 자유로운 만남은 새로운 인간관계와 새로운 사랑의 관습이 생겨나고 100세 인생이 시작되면서 노인들의 사랑 문제도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사람의 연애 감정은 나이에 따라 어떻게 변할까? 내가 40대 중반일 때에 어느 한 학생이 “선생님 아직도 아내와 키스하십니까?” 질문하여 대답하기를 “아직 젊었는데 필요하면 하지”라고 대답하자 “늙어서 키스한다니 징그럽습니다.”라고 불쑥 내뱉은 학생이 생각난다. 나는 나이가 40대 중반이라도 아주 젊었다고 생각했고 학생은 40대 중반이면 중늙은이로 취급한 것이다. 나 역시 20대에 40대 중반이 연애한다고 하면 주책없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내가 나이 들어 보니 잘못된 생각이라고 인정하고 그 당시에 내 눈에 비친 주책없는 사람들에게 참회하고 싶다. 한편 식견도 있고 인품도 있는 직장 협의회(60세 이상이 대부분) 회의를 하는데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아 발기 부전 치료제(비아그라)를 정시에 오면 지급하니 지각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에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제는 수긍이 간다. 이런 내 생각에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사건은 2014년 10월 2일 노인의 날 출근길 라디오에 노인의 성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는데 80대 노인들도 아직 성에 대한 집착이 강함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 방송을 들으면서 노인대학에 특강을 가면서 무슨 주제로 강의할 것인가를 주변 노인에게 질문했더니 대부분 사람이 노골적인 성에 대해 강의하라고 조언했다. 인터뷰와 조언이 딱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나의 빈곤한 상상력이 노인들의 삶을 매도한 것 같아 매우 미안함을 느끼는 충격적 순간이었다. 사람에게 사랑의 감정 또는 연애의 감정은 젊은 사람이나 노인들이나 모두 마음은 같다는 것이다. 

 젊은이의 사랑은 우리가 몸소 체험한 것이라 부연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좋았다가 싫어하고 화해했다가 싸우고를 반복하여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까지 들어야 사랑이 완성되고 사랑의 결실인 결혼한다는 것이 사랑의 정설이다. 그리고 사랑의 대상도 광범위하고 만나는 방법도 다양하며 데이트하는 방법도 각자의 생각대로 행해진다. 이제 노인 반열에 이른 사람들의 사랑은 어떻게 실행해야 완숙한 사랑으로 이어질까? 남녀 간의 성적 사랑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은밀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고 또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기에 일괄적으로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은 문제가 있기에 개인적인 능력에 맡기고 싶다. 그러나 여기에 너무 집착하면 본인의 쾌락이나 감정의 충실도에는 많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주변의 시선이나 인간 품위나 체면에는 많은 문제점이 노출될 것이다. 남녀 간의 성적 사랑에 집착하기보다는 삶의 대상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육체적 사랑을 정신적 사랑으로 승화시켜 노후의 참된 삶을 정착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노후의 참된 사랑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자주 가는 목욕탕 2층에 콜라텍이 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부터 70대 후반의 남자들이 같이 노는 장소인 모양이다. 클럽의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온다. 술도 조금 먹는가? 얼굴이 붉은 여자도 보인다. 이런 모습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춤은 운동이고 기분이 좋아지기에 나이 든 사람이 하면 좋은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주장하기 때문이다. 춤을 추고 난 뒤 남자가 나가면 여자들이 종종걸음으로 따라간다. 그분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떳떳하게 나오는 모습보다 무엇을 경계하는 몸짓을 한다. 노후에 홀로 된 사람이나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다양하기에 본인들의 최고 선택을 불륜으로 논할 필요는 없지만, 주변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떳떳하게 살아가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노후에는 취미생활을 활성화해 보자.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떠나라” 하듯이 현재 연금을 받는 세대라면 시간적 여유는 많을 것이다. 연금이 좀 부족하면, 최소의 노동을 하더라도 취미생활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필수이다. 취미를 운동하고 연관 지우면 안 된다. 여행, 춤, 서예, 사진, 바둑, 기타 등등이다. 이 취미생활을 위해 사이버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동호회 가입을 위해 필수적이다. 전국적인 모임도 가능하고 전국적인 정보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취미 동호회 활동을 하여도 아주 국한적이다. 맨날 보는 사람과 다툼이 있으면 다음에는 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의 팁을 주자면 채팅방 중에 ‘띠 방’에 가입을 권유한다. 초등학교 동창회 비슷한 성격의 모임으로 익명성에서 오는 쾌락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노후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운동부에 하나쯤은 가입하면 좋을 것이다. 나이 들면 게이트볼만 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잘할 수 있는 운동을 하나쯤 준비하자. 남자는 여자가 많은 집단의 운동을 하고 여자는 남자가 많은 집단의 운동을 하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탁구는 여자가 많이 친다. 남자가 탁구를 조금만 친다면 탁구장에서 인기가 참 좋다. 반면 테니스는 여자가 적다. 내가 속한 테니스 클럽에 60세 이상인 여성분이 몇 명 있다. 젊은 사람이 깍듯이 대우하고 같이 운동한다. 여자분이 부탁하면 남자들이 무조건 들어준다. 같은 연배이면 모르지만, 젊은 사람들은 실력이 좀 모자라도 잘 대해 준다.

 위에 두 가지로도 삶의 질이 향상되겠지만 하나쯤 더 보태면 금상첨화가 되는 것이 있다. 문학회에 가입하여 글쓰기 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준비가 좀 필요한데 꼭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니라도 공부하면서 서서히 가입하면 된다. 내가 가입한 문학회에 65세 이상 된 분이 아주 많다.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자기 계발이 더 잘 된 분들이 많다. 문학잡지 발행 식전 행사에 특기 발표에 하모니카, 판소리, 시 낭독, 가곡 부르기, 기타 연주 등 아주 다양한 특기를 선보이고 자기가 쓴 시, 수필, 소설이 기재된 책도 발간한다.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비록 남녀 간의 정열적인 육체적 사랑은 아니라도 마음속에 정열적인 열정을 마음으로 품어 내는 품위 있는 인격의 완성체로 삶의 질을 높이는 최고의 삶이라 생각한다.      

 건강하면 누구나 맞이해야 할 노후다. 이 노후를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함께 누릴 수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차이가 날 것이다. 누구나 사람이나 사물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즐겁고 행복하듯이 완숙한 내 인생을 진정으로 돌보고 사랑하는 성숙함으로 경건하게 맞이해 보자. 자꾸 멀어지고 이별하는 많은 것을 곱게 보내주고 아직은 남아 있는 수많은 가치 있는 꿈과 사랑을 곱게 포장하여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만추의 참살이’를 만들어 보자.


                                                                  2017.11.20.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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