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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28. 2023

비평(批評)

비평(批評)


 사람이나 사물의 가치나 수준 따위를 일정한 기준에 의해 따져 매김을 평가로 정의(定義)한다. 어떤 것을 평가할 때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이 정당한가, 절대적이고 합리적인가를 따져야 한다. 화폐나 수학적 개념이 도입되는 기준은 정당한 기준이 있을지 모르지만, 인문학적 평가나 예술적 평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리 쉽게 결정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이 설정한 기준이 아니라 신(神)이 만든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현대인은 신의 존재마저도 부정하는 처지인지라 인간의 평가는 어려워진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 중 최악이 평가이다. 산업 사회가 급속히 발달하면서 효율성, 유용성을 최대화하려니 평가는 자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교육에서도 피드백이란 제도 때문에 평가를 실행하여야 하지만, 인간소외, 비인간화, 인간성 상실의 주범이 되어 버린 것이다.      

 농업시대에는 능력이 많이 떨어져도 자기만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했다. 예를 들어 큰 노동이 힘들어도 ‘꼴머슴’이라 하여 단순한 일이나 간단한 심부름으로 자기가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면, 인간 몫을 기본적으로 수행하고 대우도 비슷하게 받았다. 단순한 일이지만 그 일을 수행하려면 성인이 똑같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기에 노동의 강약은 차이가 있지만, 하나의 몫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여학생이 개근상이 거의 없다. 그 이유가 모내기 철이 되면 어린 동생을 돌봐 주어야 하기에 학교에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학생이 어린 동생을 돌보지 않으면 엄마의 몫이거나 성인이 그 일을 하여야 하고 새참과 점심,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 어머니가 발목을 잡히면 노동력을 그만큼 없어지기에 초등학생과 어머니 노동력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평가에는 반드시 상벌(賞罰)이 따르기 마련이다. 좋은 평가는 금전적 혜택과 칭찬이 따르게 되어 있고 부정적 평가는 굴욕과 좌절을 맛보며 금전적 피해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제로섬 게임(zero-sum-game) 경우에는 상대성에 따라 치명적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가요대전에서 1:1 데스매치에서 둘 다 노래를 잘해도 결과는 한 명만 이기게 되어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심사석에 앉아 판정하는 사람이 대결하는 가수보다 평소 노래를 못 부른 사람이 많아도 그 판정에 승복해야 하는 아이러니(irony)가 존재함을 볼 수 있다.     

 남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성장, 변화, 발전 가능성이 있는 젊은 사람에게는 인정과 배려는 보약이다. 그래서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하여 밀리언 셀러가 되었다. 평가의 좋은 부분이다. 그러나 성인들에게 칭찬은 좀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뇌는 복잡한 것 같아도 참 단순하고 잘 속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어 참 고집스러워 남과 대화가 힘든 고집불통이 된다. 이런 사람에게 인정과 배려는 독약이다. 본인에게만 독이 아니라 주변 사람 또는 그가 속한 단체에도 해악을 끼친다.     

 언론인이나 문인을 보자. 언론인은 각자가 합리적이고 논리적 근거로 세상을 평가하고 비판한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똑같은 사건이나 사상(事象)을 보고 언론 보도를 수행하는데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평가하여 보도한다. 관점이 다른 사람이나 자기가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가짜뉴스’라고 공격한다. 문인들은 각자의 심상(心想)과 대상이 합치할 때 각자의 사고를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시인이고, 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고 개인적인 서정이나 사색과 성찰을 산문으로 표현한 문학 양식이 수필이고 현실의 인생 내용을 중심으로 한 사건을 허구적으로 서술한 산문체의 문학 양식이 소설이다. 다양한 책을 읽어 보면 문학을 평가하는 자체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든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비평은 조심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 맞춤법이 틀리거나 문장 수식 구조가 바르지 못한 경우에 지적할 수 있지만, 내용 자체를 총평이란 이름으로 비평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 선생님의 추천으로 미술 전시회를 갔다가 참 황당한 모습을 목격했다. 창이 없고 둥글납작한 모자, 중앙에 꼬리가 있는 벙거지를 쓰고 흰머리가 많으며, 술을 한 잔 드셨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연세 드신 3분이 미술 전시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전시한 작가에게 "이런 것을 그림이라고, 전시하느냐" 하면서 일방적으로 그림을 매도(罵倒)하는 모습에 경악했던 경험이다. 우리 미술 선생님은 제1회 동아일보 미술 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분으로 가치 있는 미술 전시회이기에 추천하신 미술 전시회다. 비평이 아니라 비난이고 너무 폭력적이라 지성이라고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미술 선생님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자 미술 선생님이 자기가 국전(國展)에 출품하지 않는 이유가 심사위원들의 편향된 시각 때문이란 말씀을 듣고 이해했다.     

 서로 다른 관점으로 작품을 볼 수 있기에 자기 의견이나 관점으로 평가는 가능하다고 본다, 주변에 아주 가끔 시상이 올바르지 못하고 설명인지 서술인지 모를 정도를 시라고 발표하고 형식적인 면이 갖추어지지 않은 작품을 보일 때가 있다. 누가 평가하지 않아도 본인이 시간이 좀 지나면 미흡해 또 다른 작품에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리라 본다. 어느 시인은 오늘 쓴 시를 내일 보면 이런 시를 쓴 자신이 이해되지 않아서 시를 찢어 없애 한 편의 시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단체든 단체장은 전지전능한 사람은 아니다. 대부분이 인사권자에게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오히려 업무적인 면에서는 단체 회원보다 처지는 경우도 더러 있으리라 추정된다. 그런데도 단체장은 모든 일에 관여하고 지시하고 간섭한다. 학교에서 교장이 수업을 가장 잘하여 교장이 된 것이 아님에도 교사를 상대로 장학이란 미명(美名)으로 수업 평가를 하고 수업 방향을 제시한다. 세상에 가장 쉬운 일이 남에게 간섭하는 일이요.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를 아는 것이라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비단 학교뿐만 아니라 일반단체나 기관도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중견 기업 대표 친구와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사장님이 보기에 하늘이 노란색이면 직원들도 노란색이지요.” “그럼요 월급 받으려면 노란색 해야지.” 하하 웃는다.     

 성숙하고 인격적이며 겸손한 사람은 인정하고 배려하면 상대를 칭찬하여 보약 같은 사람이 되지만, 지식이 얕고 경험이 적고,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 완장을 채워주면 주변 사람이 힘이 든다. 우리는 남을 평가하려고 하지 말고 긍정의 눈으로 상대를 보자.     

                                2021. 9.17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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