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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29. 2023

성찰(省察)

 성찰(省察)

-나와 또 다른 생각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바람직한 인간이 되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 ’ 자기반성‘ ’ 도덕적 성찰‘일 것이다. 도덕적 성찰을 강조한 사상들을 열거해 보면, 불교는 참선(參禪)을 강조한다. 무엇이 인간의 참된 삶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맑은 본성을 찾기 위한 수행법이다. 예수는 마태복음 7장 12절에 ’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는 황금률을 제시하였고, 공자(孔子)는 논어 위령공편에서 자공(子貢)이 평생 실천할 수 있는 한마디가 있습니까? 하고 묻자, 한마디로 ’서(恕)‘를 제시하며 실천 방법으로 ’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人))‘를 제시한다. ‘너 자신을 알라.’ 델포이 신전 앞 비석에 새겨져 있는 문구를 소크라테스가 사용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명제이다. 사람이 살아가면 갈수록 가장 어려운 문제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무지의 자각이 바로 자신을 아는 것으로, 끊임없는 물음과 대답하는 산파술의 대화법을 사용한다. 개인적으로는 위의 사상가들 가르침도 나쁘지 않지만 나 혼자 수행 방법으로 ‘신독(愼獨)’을 선호한다.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라는 수행법이다. 불교의 참선이나 도교의 제물(齊物)이 같은 맥락이지만, 혼자 있어도 자신을 절제하는 수행법이라면 자신의 성찰함에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당당할 수 있고, 초등학교 시절 학교 성적이 좀 좋으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미래 자기 모습도 아주 큰 인물로 조명할 수 있다. 그 자신감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하면 자신감이 확 낮아진다.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자존감이 낮다고 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전교 1~2등으로 자존감 높다가 전부 뛰어난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활동하니 열등감 때문에 우울증도 많이 온다고, 「서울대 기숙사」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사람이 모든 분야에 최고가 될 수 없으니 겸손하게 살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이 인간인지라 남보다는 늘 자기가 상대적으로 좋은 삶을 살아간다고 자신만만 하지만, 어느 날 곰곰이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해 보면 자신이 가진 능력이 별것이 없다는 자괴감이 불쑥 찾아온다.     

 최근 자신에 대해 성찰하면서 카오스(chaos) 상태에 자주 직면하게 된다. 30년 넘은 교직 생활로 선생님의 자부심과 당당함은 온데간데없고 자괴감에 어깨를 축 처진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뒤돌아보면 볼수록 나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학생들을 현혹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린다. 그래도 졸업생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으로 우뚝 서 있는 현실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다. 코로나 시기라 바깥 외출을 자제하다가 퇴직한 선배 선생님의 요청으로 소주 한잔하는데 느닷없이 아주 예쁜 아가씨가 식당으로 들어와 공손하게 마스크를 쓰고 인사를 한다. 자세히 보니 졸업생이다. 자기도 가까운 곳에 가게를 하고 4월에 결혼한다고 한다. 지나가는 길에 선생님이 계셔서 아주 반가워 들어왔다고 한다, 코로나 시대지만 둘은 아버지와 딸보다 더 사랑스럽게 포옹하고 축하해 주었다. 이런 것이 비일비재함에도 교사의 직무에 충실했을까? 완벽했을까? 학생 대부분이 수긍하고 이해하는 수업을 하였는가?. 늘 자문자답해 본다. 그래서 가끔 한 번씩 이런 생각을 골똘히 해 본다.     

  나는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잘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데 

상대는 내가 잘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모든 일에 근면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참 미련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공자(孔子)의 말씀대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참된 앎이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를 믿고 정직하게 산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은 너무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겸손의 덕 겸양지덕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아내는 좀 더 적극적이지 못하고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독서를 많이 하여 알짜배기 지식을 골라 쉽게 학생에게 전달하는 수업을 실행하는데

열심히 듣는 학생 중에는 내용이 너무 많아 산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졸업생이든 재학생이든 아무 사심 없이 칭찬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칭찬하는데

나에게 사랑이나 인정받고 싶지 않은 제자는 성추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주체성 있는 생각을 최대한 존중하고 인정한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진심을 잘 모르는 사람은 기준도 없고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인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욕심도 좀 버리고 생각도 단순화하고 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데, 주변의 많은 사람은 돈이 있어야 행복하고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행복하다는 현재를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주장이 옳은가? 상대의 생각이 옳은가? 을 끊임없이 반성하고 성찰해 본다. 나의 주장이 완벽하다고 확신하면, 남의 생각에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고, 내 생각이 확장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반대로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면 내 주체적 의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참 어려운 일이다. 성찰은 하면 할수록 자신의 인격 수양이 많이 배양됨은 틀림없으나, 현실적으로는 나와 상대의 생각이 너무 달라 조율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이름이 상대의 이름과 다르고, 모습도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르고, 사고의 깊이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결정과 상대방의 선택이나 생각이 차이가 나거나 반대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매일 성찰(省察)한 덕분에 내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내가 행복한 이유가 내가 안고 가야 할 힘든 일을 남에게 탓하지 않고 나의 탓이라 생각하며 살고, 내가 아프면 상대도 많아 아플 것이고, 내가 기쁘면 상대가 기쁘면 좋은데 아픈 사람이 많아질 것을 고려하여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항상 긍정적이고 햇살 같은 밝은 미소와 해맑음의 얼굴이 나의 행복한 삶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성찰의 진면목(眞面目)을 깨닫게 된다.                                   

                                               2021. 03. 30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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