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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Jan 03. 2024

인간관계-지속성(持續性)에 대하여

인간관계-지속성(持續性)에 대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 질문은 인간이 태초에 태어나서 사고(思考)가 형성되면서 질문은 시작하였으며 현재도 끊임없이 연구되고 미래에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지속하리라 생각한다. 세계 인구가 70억이라면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듯이 사람의 생각도 각자 다르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질문에 쉽게 결론 낼 것 같아도 워낙 다양한 대답이 만들어지기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으며 설령 결론이 난다면 인간의 종말이 될지도 모른다. 칸트는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인간의 인식, 도덕적 행위, 미학(희망)을 파악하여 인간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인간이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사람의 인식 체계 한계이고 이것 때문에 인간을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기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전제되고 인간의 다양성이란 가장 값진 선물을 얻게 되었다.     

 인간이란 명확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해도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협동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다가 사랑하고 배려하며 인간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부부, 부자, 형제, 자매, 친구, 직장, 이웃이라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발버둥 치지만 많은 갈등 속에서 생겨나는 찰나의 배려에 인간은 행복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 인간관계일 것이다. 어린 왕자라는 책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일까? 묻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상대의 마음을 얻어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함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자녀들이 경제적, 신체적 독립을 하여 자기가 소유하고 있거나 현재 벌어들이는 소득에서 10%만 부모에게 사용하면 최고의 효자, 효녀가 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재산을 조금만 친구에게 베풀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친구가 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음식을 이웃에게 조금만 나누어 주어도 가장 아름다운 이웃이 된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관계가 참 쉽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든 재산이든 조금만 배려하면 좋은 인간관계가 되는데 왜?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인간관계가 어려울까? 능력이든 재력이든 배려든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점 차이가 인간관계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주는 처지에서는 많이 준다고 생각하고 받는 처지에서는 작다고 생각하면 사람 간의 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일방적으로 베푼다는 것은 없다. 서로 주고받기에 이해득실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농업사회에서는 한 세대가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500년 이상 자손들이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조상의 음덕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식들이 편해지고 조상이 이기적이거나 평판이 좋지 못하면 수하(手下)들도 그만큼 어렵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농업사회에서는 인간관계 기본이 지속성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한두 번 잘하지 못해도 만회할 기회가 있고 대부분 사람이 잘 참아준다. 그러나 현대 산업 사회의 생활은 어떠한가? 직장이든 가정생활이든 유목민의 생활이 바탕이고 부평초 신세는 아니지만, 어느 한 곳에 끝까지 정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도 30년 근무도 힘들지만, 구성원이 수시로 바뀌는 처지고 집도 수시로 이사를 한다. 내가 58년 동안 살면서 가장 오래 산 곳이 30년 정착한 마산이다. 30년 살면서 이사를 사글셋방부터 아파트, 주택으로 8번을 했다. 오래 산 곳은 10년 정도 살았으나 적게는 6개월 만에 이사한 곳도 있다. 그러니 가장 오래 산 곳임에도 불구하고 늘 객지고 타향이다. 반듯한 이웃을 사귄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모두가 스치는 인연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아예 인연조차 맺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직장은 사립 고등학교이기에 한 곳에 오래 근무하고 있다. 교직 초창기에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오다가 30년 가까이 되니 친숙하다기보다는 원수 안 지고 살아가는 것이 다행이다 싶을 때가 많다. 각자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약간의 경쟁이 있으며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하다 보니 약점이 보이고 업무로 서로 부딪칠 때도 있으니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자명한 일이다. 어느 시골 중학교에 15명 내외의 선생님 집단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제사 지냈다고 초청하고 생일이라 초청하고 기념일이라 초청하여 정말 좋은 인간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해가 가면서 업무적으로 성격적으로 서로 이견(異見)이 생기면서 관계가 소원해지더니 20년 정도 세월이 흐르니 수업 시간을 서로 바꾸는 것도 힘들 정도로 험악한 인간관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농업사회와 산업 사회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일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100m 잘 뛰었다고 마라톤 우승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도 또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의 지속성을 염두에 두고 활동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상황이 와도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고 상대가 엄청난 실수나 실망을 가져다주어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남의 일을 봐주려거든 3년 상(喪)까지 돌봐 주라’는 속담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러나 농업사회 인간형은 1년을 기다리고 참지만, 산업 사회 인간형의 사고는 한 달을 기다리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현대인이 인간관계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일희일비(一喜一悲)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2018. 10. 31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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