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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Jan 08. 2024

아름다운 임종(臨終)을 위하여

아름다운 임종(臨終)을 위하여     

 TV를 보는데 드라마에서 폐암 말기로 3개월 남은 인생의 엄마가 딸들을 불러 여름에 김장한다고 야단법석을 떤다. 엄마는 죽기 전에 딸들에게 김장하는 법이라도 전수하려는 깊은 뜻을 모르는 젊은 딸들은 여름에 왜 김장이냐고 반항하고 큰딸은 급기야는 막말까지 쏟아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이 장면을 아내와 같이 보면서 죽음을 성스럽게 맞이할 수는 없지만 죽는 사람의 욕심으로 자식들 평생을 가슴 저미며 살아가야 할 수도 있음을 일깨운 드라마라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8899234란 말이 있다. 팔팔하게 99살까지 살다가 2~3일 아프다가, 죽는 것이 가장 좋은 죽음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세상에 부러울 일이 없겠지만 0.0001%에도 해당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살다가 아프면 병원에 가고 요양원 가서 몇 년이고 기약 없이 있다가 죽으면서, 이것이 내 운명이라 생각하면 너무 무책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인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원시 사회나 자연을 터전으로 삼던 농업 사회에서 명(命)이 짧음을 인간의 의지로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격언이다. 현대 사회는 의술의 발달로 죽는 사람의 목숨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현대의 의술이 아닌가? 가족의 나쁜 DNA가 있더라도 음식 섭취나 운동이나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면 얼마든지 가족력을 극복하는 것이 현대인이다. 조선 시대에는 최고의 의술 소유자인 어의(御醫)가 임금의 건강을 살펴도 회갑 넘은 임금이 4명에 불과하다니 죽음에 대해서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고대 사상가들의 죽음에 대한 사상을 보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자고 강조한다. 플라톤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 죽음이고 영혼이 자유롭게 되는 것이 죽음이니 죽음을 찬양하는 편이다. 에피쿠로스는 살아있을 때는 죽음을 느낄 필요가 없고 죽으면 죽음을 느끼지 못하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고 장자는 오히려 아내의 죽음에 노래를 부른다. 자연의 이치로 아내가 먼저 가서 터를 잡으면 내가 따라가는 것인데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강변한다. 논어에서는 부모가 죽으면 3년 상(喪)이 당연하다고 하면서도 죽음 자체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죽음보다는 예(禮)를 숭상함을 볼 수 있다. 불교는 죽음을 열반(涅槃)으로 간주한다. 즉 모든 사상(事象)이 소멸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교훈으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강조하여 현세에서 악업(惡業)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서양 현대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상대가 아니라 절대적이며 정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죽음에 직면한 상황으로 인식하여 삶을 진실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      

 죽음에 앞서 노후를 어떻게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가? 이것이 아름다운 임종(臨終), 성스러운 죽음, 존엄한 삶의 마감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가족이 화목하여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면서 기뻐하는 것이 노후의 아름다운 삶에 법칙 근거일 것이다. 가족의 힘은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기쁨을 전제로 하면서 아름다운 노후를 맞이하는 데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열거해 보자.     

 첫 번째가 건강이다. 늙어서는 육체적 건강도 매우 중요하지만, 정신적 측면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 70세를 살든 80세를 살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병이 치매이지만 치매가 아니라도 공황장애나, 우울증, 불면증, 알코올 중독 등이 있거나 타인에 대한 의심이 심각하면 자기 자신은 느끼지 못하지만, 주변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힘이 들기 때문이다. 육체적 건강은 본인의 힘으로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으면 된다. 어디든 움직임에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중풍(中風)으로 거동이 불편하여 남의 도움이 없으면 못 움직인다면 정신적인 문제와 거의 비슷하게 심각해진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가장 최소한의 자기 독립이 될 수 있도록 평소 건강관리에 최선을 구해야 한다. 


 둘째는 기본적인 경제력이 필요하다. 폐지 줍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폐지 줍는 노인들은 건강상 별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지 모른다. 취미생활이나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면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지만 한 끼 식사를 위해 하루하루 바둥바둥 생활해야 한다면 폐지 줍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고 중한 노동 뒤에는 골병이 따르기 때문이다. 많은 연금이나 노후 자금이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더 바보다. 젊을 때 여유롭게 즐기고 쓸 돈 다 쓰고 노후 자금이 많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젊은 나이에 노후를 위해 쓸 돈을 자제하고 모았다면 아름다운 노후가 될 수 없다. 습관적 절약과 젊을 때 행하지 못한 일들을 늙어서 새롭게 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쓰고 싶은 돈에 80% 정도가 가장 좋다면 늙어서는 노후 자금이 쓰고 싶은 기본 생활에 10% 정도 더 여유 있는 돈이 필요하다. 


 셋째는 부부가 함께 건강해야 한다. 부부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챙겨주는 아름다움이 있지만, 부부가 모두 건강해야 일상에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 세대는 어머니들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부부가 노후를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부부가 일방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집안의 문제나 집 밖의 문제도 부부가 같은 역할이 필요한 세대이기에 부부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가 가까운 곳에 여행 가고 힘이 닿는 대로 지역 축제장에 가서 특산물로 요기도 하면서 즐기는 부부는 노후를 아름답게 사는 최고의 조건이다.


 넷째는 오랜 친구를 많이 만들어 놓자. 마을 경로당 가서 만나는 친구가 아니라 초등학교 동기로 친한 친구, 중, 고등학교에서 서로 뜻이 통해 만난 친구, 대학에서 같은 전공을 한 친구가 많아야 한다.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은 직장 그만두고 만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초등학교 동기들이면 기본이 60년 이상 된 친구들이다. 1년에 몇 번 만나면 그 즐거움으로 오래갈 것이다. 건강하여 술이라도 한잔할 수 있으면 더 기쁜 일은 없으리라. 공자도 멀리서 친구가 방문해 주니 기쁜 것이 인생의 낙(樂)이라고 했다.     

 다섯째 소일(消日) 거리를 만들자. 오래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 많이 움직이는 것이다. 시골 할머니들이 가만히 있는 일은 없다. 조그마한 텃밭을 일구어 반찬거리 만들고 자식들이 집에 오면 차에 가득 실어 보낸다. 살아있는 동물을 키우는 거도 좋지만 식물이 좋은 것 같다. 주변에 텃밭을 일구어 내가 기른 식물을 주변 사람이 원해 팔 수 있으면 더 좋다. 적은 수입이지만 삶에 활력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돈은 연금으로 대체해도 충분하지만, 인간이 욕심을 완전히 비우면 삶의 근거가 없어진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취미 삼아 노동하고 그 노동의 결과는 소량의 수입이 삶에 활력을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취미생활이나 운동하면 건강하게 더 오래 산다. 대뇌를 활용하면 사람이 건강해진다. 1980년대 통계에 보면 고등학교 교사가 65세 정년퇴직하면 5년 이내 사망할 확률이 높고 대학교수는 정년퇴직해도 90세 이상 살 확률이 높다고 했다. 이유가 학문을 계속하기에 오래 산다고 했다. 지금은 이런 통계가 무색하지만, 대뇌 활동을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자. 서예도 좋고 글쓰기도 좋고 악기 하나 배우기, 목수 일이나 전통 가옥 수리하기 취미도 좋다. 젊을 때 하나쯤은 배워두는 것이 좋다. 운동은 가격한 운동도 평소 하는 것이면 무방하다. 우리 테니스 클럽에 최고 연장자가 올해 77세인데 전국 노인 테니스 대회에 준우승도 하는 데 순발력은 좀 떨어지지만, 젊은 사람과 같이 즐겁게 운동한다. 늙어서 배우면 힘들지만 젊어서 미리 준비해 두면, 노후에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등산, 탁구, 수영, 여유 있으면 골프, 힘이 있으면 배드민턴, 조기 축구회 등등 본인의 능력이 있으면 무조건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름다운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명심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자기 생애에 있었던 일을 너무 완벽하게 정리하지 말자. 내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지 않으면 자식들이 싸우는 것이 걱정이어서 매우 완벽하게 정리하려고 하지 말자. 내가 죽고 자식이 싸우는 것도 자식의 몫이고 자식들이 합의하여 분배를 잘하는 것도 자식의 몫이다. 그러니 내 죽으면 자식이 어떻게 하는 것을 걱정하여 다 정리하는 것은 좋지 않다, 꼭 중요한 정보가 있으면 자식에게 정보를 주자. 예를 들어 본인이 관리하는 공금을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한다든가? 나의 지인이나 친구가 돈을 맡겨두거나 빌려 간 사람이 있으면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좋다. 또 하나는 자식의 가슴에 사무치는 언어나 행동은 자제하자. 옛날에도 죽기 전에 정을 떼야한다고 했다. 자식이 부모가 진저리 쳐지면 부모가 죽어도 기대어 살고 싶지 않고 부모에게서 독립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현대는 자식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부모가 죽기에 그리 부모에게 기댈 사람은 없다. 죽는 날까지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와 품위 있는 말투로 살다가 곱게 죽자.

                                              2019. 8. 28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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