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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Jan 18. 2024

기차역에서

기차역에서                                           

기차역마다 흰 치마저고리 입고 강냉이 팔고 빵떡 팔든 시절은 TV에서 볼 수 있는 아련한 역사이다. 검은 연기 뿜어내며 ‘칙칙폭폭’ 하며 달렸기에 기차의 애칭이 되었다. 그래도 기차역이 있는 곳에 살아가는 사람은 농촌이라도 문명을 빨리 접하는 사람이었고 순박한 농촌 사람보다 역 주변에 사는 사람은 깍쟁이로 인식될 정도였다.     

 나는 깊은 산골에서 자랐기에 기차라는 말은 들었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기까지는 기차를 보지 못했다. 단지 노래 중에 “바나나는 길어, 긴 것은 기차”라는 말에 기차는 긴 줄만 알았다. 초등학교 2학년쯤 엄마 따라 큰외삼촌이 살고 계시는 대구 반야월 갔었다. 그 당시에 반야월도 농촌이었다. 공군 비행장 근처라 전투기 뜨는 소리가 시끄러운 곳에서 저 멀리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시커먼 화물 객차가 지나가는데 열심히 객차를 헤아려 60개 차량을 보았다. “정말 기차가 길구나” 하고 탄복했다. 그것은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서 크나큰 자랑거리였다. 아직 기차를 보지 못한 친구들이 많다는 증거다.     

기차를 타 본 것은 6년 후이다. 중학교 수학여행을 서울로 가는데 기차를 타고 갔다. 우보역에서 서울 청량리역 가는 완행열차로 중앙선이었던 기억이다. 시골 중학생이 철도에 터널이 몇 개인가를 헤아리며 갔던 기억이다. 기차 칸에는 화장실도 있다며 신기하다고 했었다. 난생처음 타 보는 기차라 모두 약간의 흥분도 했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설악산이다. 동대구역에서 출발하여 경포대역까지 가는 임대 열차이다. 600명을 싣고 떠나는 기차이다. 중앙선에서 영동선으로 가는 열차로 아침 9시 출발 오후 4시에 도착했다. 지리 시간에 배운 지형지물을 머릿속에 저장하며 아름다운 화려강산을 경험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기차 역사가 관광지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 Z형 철로에 신비한 경험까지 했고 재잘거리며 놀다 가니 온종일 기차를 타도 지겹지 않았다. 교직을 퇴직하면 이 코스로 여행을 꼭 하고 싶다.      

 대학 시절 여행하면 기차가 압권이다. 4인이 마주 앉아 배낭을 탁자 삼아 카드놀이하고 기타 치고 노래도 부르기도 했다. 담배 피우면서 술도 먹었지만,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 술 마시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술잔을 권하기도 했다. 지금은 빠른 기차라 목적지까지 단시간에 가지만 그 당시는 5~6시간은 기본이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당시 취업 시험을 치러 서울 가려면 밤 12시 30분 대구역 출발하여 새벽 4시 30분 서울역에 도착하는 열차를 이용했다. 돈이 궁해 숙박비는 아낄 수 있는데 곤욕을 치르는 것이 대구역에 진입하기다. 그 당시만 해도 역 주변에는 사창가가 많아 아줌마들이 끊임없이 따라붙으며 호객행위를 하는데 그것을 뿌리치는데 몸속에 빈대 떨쳐내는 그것보다 힘들었던 기억이다. 좌석 끊어서 입석한 나이 많은 분 옆에 있으면 좌석을 당연히 양보하여야 한다고 배운 세대이다.     

 가족과 기차여행을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기차에는 ‘홍익회’가 있었다. 가족 4명이 오순도순 이야기하다 보면 홍익회 아저씨가 손수레를 끌고 지나간다. 아이들은 ‘쫄쫄이’ 아내는 삶은 달걀 나는 맥주 1병과 오징어를 구매한다. 모두 행복해한다. 내 안주 오징어는 늘 가족의 공통분이고 안주는 오징어 다리가 전부다. 그래도 엄청 행복했던 시간이고 좋은 추억이 남아있다. 자가용이 생기고는 거의 기차를 타지 않았다.      

 2022년 11월 29일 아주 친한 친구 아들 결혼식을 한다. 친구들과 모여 술도 한잔하고 혼자서 차를 가지고 서울 가는 것은 너무 낭비가 많아 기차를 타기로 했다. 서울까지 3시간 조금 더 걸리는 시간이다. 가만히 앉아 지난날의 기차여행을 회상해 보았다. 기분이 좋아진다. 좋은 추억들이 뇌리를 스치니 마음이 느긋하고 행복해진다.     

 기차가 출발하고 자리가 정리되자 내 옆자리에 젊은 사람이 앉는다. 단체 손님이지만 자리는 각각으로 흩어져 있어 보인다. 그 일행 중 어떤 이가 봉지 하나를 주는데 김밥도 있고 과일도 있고 음료수도 보인다. 아무 표정 없이 음식을 먹는다. 옆 사람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한번 드시라는 말도 없고 그냥 투명 인간으로 취급한다. 차창밖에 가을 풍경과 황금 들녘이 너무도 아름다운데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음식 먹는 것이 끝나자 바로 근엄하게 핸드폰을 응시한다. 기차에 탄 사람을 둘러보니 모두가 그렇다.     

 우리나라 철도는 1899년 경인선으로 시작한다. 철도 역사가 124년을 거치면서 무한히 발전했다. 증기 기관차에서 1967년에는 디젤 기관차로 바뀌고 2004년에 고속철도가 첫 운행을 했다. 기차의 종류가 바뀌는 것은 속도의 변화다. 증기 기관차보다는 디젤 기관차가 빠르고 고속철도는 빛의 속도를 자랑한다. 어떤 상황이든 그 당시의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우리나라도 새마을 운동을 기점으로 먹는 것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정보화시대에 돌입하면서 편리함의 극치를 맛본다. 농업사회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보낸 세대들의 느낌이다.     

 보통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생활상의 편리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주체가 인간이다. 인간은 물질적 풍요 이전에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함이 있다. 정신적 가치의 근본이 삶을 가치 있고 깊이 있게 만들려는 의지(意志)이다. 의지를 지탱하고 끌고 나가려는 바탕이 사랑이다. 인간의 사랑은 정(情)이다. 이런 정신적 가치를 배제한 삶은 인공지능(AI) 로봇과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요인들은 마음을 집중하면 주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바쁜 일상에서 남에게 관심을 두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남의 관심을 끌려는 그것보다 내가 남에게 관심을 두면 세상일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인 면도 많다. 그래서 자기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손해를 끼치는 일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김훈 소설가의 문장을 인용해 보자.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부분이 인간의 특징이라 해도 상대를 무시하거나 투명 인간을 만들어서는 우리 삶이 행복해질 수는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이 소통이 필요하고 배려가 필요하고 사랑과 정이 있어야 한다. 기차 안에서 바라본 인간의 세상이 정과 사랑이 메말라 있고 핸드폰의 노예가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떤 형태든 역사(歷史)가 있어야 한다. 기차의 역사 중에 남에게 큰 피해를 주는 흡연이나 큰소리 내기, 과도한 신체접촉은 버리더라도 핸드폰에 열중하기보다는 사색의 힘과 담소(談笑)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보자.                         

                                                           2022. 11. 2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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