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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Jan 22. 2024

꼴등의 여유로움

꼴등의 여유로움


 최근 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른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원로 배우가 인터뷰에서 감명 깊은 이야기를 했다. 2등은 3등을 이기고 3등은 4등에 승리자이기에 1등만이 승리자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감동적이다. 인간이 태어나려면 전부 1등을 해야 한다. 경쟁률도 몇억 분의 일이 되어야 비로소 최초의 사람 씨앗이 된다.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기에 1등의 중요성 모르고 승리자의 기쁨도 느끼지도 못한다. 누구나 1등을 했기에 세상은 공평하다고 말한다. 경쟁에서 이겨 태어나지만, 태어난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제로 경쟁한다. 경쟁사회에서 순위가 형성되고 꼴등은 늘 존재한다. 꼴등은 패배자인가? 꼴등은 정말 나쁜 것인가? 보통의 대부분 사람이 꼴등을 싫어하고 그렇게 패배자로 인정한다.     

 인류가 집단생활이 시작되면서 서열이 형성되고 능력에 따른 등수 매김이 삶을 영위하는데 큰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 시대에 맞는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일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면 분배 법칙은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초창기에는 능력에 따른 배분 법칙이 적용되어 능력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 분배가 집중되는 형태였다. 그래서 1인 독재자가 형성되었다. 1인 독재자 밑에 수많은 경쟁자가 모여서 치열하게 투쟁한다. 여기서 능력에 따른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아부와 반칙이 난무해지고 부패의 연결고리가 이루어진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회계약이 체결되고 공정한 법이 대두된다. 법으로 권력을 제한하고 평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어도 법을 집행하고 적용하는데 허점이 생기게 되어 있다. 그래서 권력자에게 덕(德)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대부분 권력자는 자기의 이득에 더 골몰한다. 권력이 있는 곳에 힘이 생기고 쉽게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권력을 탐하게 된다.     

 농업사회는 토지가 중요하고 대부분이 생업에 종사하기에 소수의 지주와 다수의 소작농이 서로 공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자작농이라 하여도 여유롭게 사는 것은 극히 소수였다. 그래서 소수의 특권계급에 한정된 경쟁이었고 다수의 평민은 지주의 눈치를 보며 생명을 연장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일 즉 농업에 모든 열정을 바쳐야 겨우 생계유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상업이 중요시되면서 화폐의 가치가 높아진다. 인간의 편리함과 풍요로움이 화폐의 양으로 결정되기에 모든 가치를 화폐로 계산된다. 화폐를 시간당 얼마나 많이 벌 수 있는가? 그 사람의 능력치로 결정된다. 자기에게 주어지는 능력의 값이 많으면 타인에게나 자기에게 인정받고 적으면 인격권을 방어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회이다. 한편 경쟁사회에서 2등은 패배자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경쟁이 기업의 입찰이다. 1등만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경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걸어야 생존할 수 있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구조 때문에 사회생활을 전쟁터로 자주 비유되기도 한다.     

 게임이론에 ‘제로섬(Zero-Sum) 게임’과 논 제로섬(Non-Zero-Sum) 게임‘이 있다. 이익과 손해의 합이 제로가 되는 것이 제로섬게임이고 대표적 종목이 바둑이다. 한쪽의 이익과 다른 쪽의 손해가 제로가 아니라 모두 승자도 되고 패자도 된 경우가 논 제로섬게임이다. 주식시장에서 모두 이득을 볼 수 있고 모두 손해도 볼 수 있는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게임은 제로섬게임이다. 이유는 권력의 공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한 표만 더 많으면 승리하고 한 표라도 적으면 패자가 된다. 승자가 더 많은 권력을 가지는 욕심 때문이다. 

 ’ 소탐대실(小貪大失)’과 소실대득(小失大得)’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많이 느끼는 일이지만 쉽게 마음을 내려놓기 힘든 것이 사람이다. 또 결과적인 말이기에 과정에서 어떤 것이 ‘소탐’이고 ‘소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인생의 큰 줄기로 볼 때 양보할 수 있음에도 양보하지 않는 것이 ‘소탐’이고 나의 이득이 커도 상대를 배려하여 양보하는 것은 ‘소실’이라 단정해도 된다. 소실대득(小失大得)의 예다. 중국 남북조 시대 송계아라는 사람이 보통 집값보다 10배 많은 돈을 주고 집으로 이사를 했단다. 이웃집에 여승진이란 사람이 왜 집값은 많이 지급했느냐고 묻자 ‘백만매택 천만매린(百萬買宅 千萬買隣)’이라고 답해 이웃을 감동을 줬다고 한다. 좋은 사람과 이웃하면 평생 행복하기에 금전적 손실이 있어도 큰 이득이라 생각한 송계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일반 기업에서는 경쟁을 유발하여 생산력을 높여 기업의 이득을 높이려 한다. 이득이 많아지면 성과급을 차등으로 지급한다.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중견기업에는 실적이 우수한 팀에게 성과급을 전부 준다고 한다. 실적이 수치로 나오는 기업에서는 성과급 차등 지급이 경쟁을 유발하여 생산력 장려라는 기업 정신에 부합할지 모른다. 국가 공무원이나 교사에게 성과급 차등 지급은 애매한 부분이 많다. 특히 교원 단체에서는 교육의 질을 저하하고 인간 불평등을 조장하는 비교육적인 행위라고 규탄하면서 성과급 반환 투쟁을 했다. 나도 교직에 있어서 성과급 지급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끔 한두 명이 나태한 사람도 있지만, 어느 단체든지 100% 다 참여하고 열심히 할 수는 없다. 교직에서는 평가 기준을 보면 항목이 많다. 학생이 교사 평가한 점수, 담임 여부, 보직교사, 연수 등 세세한 활동이 많다. 요즘 들어 담임을 맡는 것을 회피하니 담임하는 사람에게 많은 점수를 부여하여 최상위를 받도록 하자고 한다. 그러나 등급 숫자 때문에 담임을 해도 최상위가 아니라 최하위도 가능하다. 담임을 맡지 않은 선생님은 구조적 요인 때문에 교사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 실적을 내어도 최하위 등급을 받는 일이 많다.     

 정년(停年)이 가까이 왔다. 어쩌면 평교사에게 정년은 축복인지 모른다. 건강해야 하고 아이들과 호흡이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많은 선생님이 명예퇴직한다. 올해 교원 성과급 지급에서 꼴등을 했다. 정부에서 성과급 지급하고는 늘 최우수 등급을 받았는데 작년에 중간등급 받다가 올해는 최하위이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로 교사가 되니 후배 교사들이 대우를 참 잘해 준다. 업무 부담도 적은 쪽으로 주고 수업 시간도 공평하게 하기보다는 젊은 선생님이 많이 하고 원로 교사에게 전공과목에 국한하여 주고 교양과목에 같이 들어가도 부담이 적은 쪽을 맡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커피 대접이나 술값 좀 더 내기, 좋은 말로 격려하기, 가끔 간식 제공하기 정도밖에 없다. 그래서 성과급에 최하위를 하기 위해 점수를 악착같이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꼴등을 했다. 왠지 기분이 좋다.      

 보통 사람이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듯, 패배나 2등보다는 승리나 1등을 본능적으로 원한다. 남을 이기는 것도 가슴 아프지만, 지는 것은 마음이 더 아픈 것이 사람이다. 지는 것에도 마음 아파하지 않고 당당해지려면 마음의 수양이 필요하리라. 상대에 대한 배려, 공감, 양보, 보호, 여유의 가치를 평소에 몸에 익히는 습관이 필요하다. 꼴찌가 당당한 사회가 아름다운 세상이 오면 인간의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2023. 4. 6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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