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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Jan 22. 2024

막걸리 한잔

막걸리 한잔


 정보화 시대에 휴대 전화기 상용화로 TV 시청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TV에 다양한 오락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많은 사람이 대리만족으로 TV를 지키는 모습에서 실망을 많이 한다. 특히 수다 떠는 방송에서는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다. 친구나 지인들과 소주 한잔 하며 자기가 체험해야지 남들 수다를 보고 시간 보내는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TV 시청은 뉴스, 다큐멘터리, 국가대표급 스포츠는 보지만 오락 프로그램은 거의 보지 않았다. 어느 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트로트 경연이 있는데 재미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 번도 볼 생각이 없다가 어느 날 우연히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반듯한 남자가수가 힘차게 부르는 ‘막걸리 한 잔’을 듣고 그 노래에 폭 빠져버렸다. 나 자신이 참 단순하다고 자책했지만, 막걸리는 내 삶에 어느 정도 이바지한 술이라 노래에 더 애착이 갔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1960년대 중반에 우리 집에는 늘 막걸리를 담았다. 밀주(密酒)라 하여 군청 직원이 적발하여 벌금을 부과하고 심한 경우 경찰서에서 구류도 살렸다. 쌀이 귀한 시절에 술을 담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술을 한 모금도 못 마시는데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내가 7살 정도 되었을 때 농사일하고 오시는 할아버지에게 엄마가 막걸리 한 사발과 간단한 안주를 가져다 드리는데 할아버지는 술을 반쯤 잡숫다가 안주를 드시는데 내가 옆에서 남은 술을 마시고는 취하여 비뚤비뚤 걷다가 넘어져 울었는 기억이 있다. 1960년대 70년대에는 배고픈 시절이라 술 취한 사람이 많았다. 그 이유는 배가 고프니 부실한 안주에 한 잔이라도 더 마시니 취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가난한 시절에도 인심(人心)은 좋았다는 생각이다. 논이나 밭에서 새참으로 막걸리를 먹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불러 음식을 권유하였다. 누구나 배고픈 시절이지만 ‘음식 나눔’은 잘했던 시절이었다.     

 1980년 초에 대학 다닐 때 막걸리를 많이 마셨다는 생각이다. 그 당시 맥주는 돈이 좀 있는 직장인이 마시는 것이고 소주는 고기 안주가 있어야 마시는 술이고 안주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이 막걸리다. 철학과 선배들이 후배 환영식을 하러 간 식당이 간판도 없는 허름한 술집이다. 막걸리 단지에 술이 가득하고 깍두기 한 통 있으니 주인 할머니 없이 환영회 한 기억이다. 특히 전공이 철학이라 박사과정에 있는 선배부터 학부 막내까지 참여하여 토론하고 담론 하며 밤이 늦은 시간까지 막걸리를 마시다가 결론이 나지 않으면 통금 때문에 여인숙에 가서 밤새 토론도 하던 시절이다. 우리 학과의 특성이기도 한 것이다. 대구 국세청 뒷골목에 ‘공주식당’이 있었다. 안주 13가지를 무료로 주었기에 두부찌개 하나 시키면 술을 마실 수 있어 대기표를 얻어야 갈 수 있는 식당이다. 13가지 무료 안주가 당근, 배추, 배추 뿌리, 깍두기, 김치, 고구마, 양파, 번데기 등 대부분이 푸성귀인데 그 당시에는 인기가 좋았던 기억이다. 막걸리로 술이 얼큰하게 취하면 애창곡을 젓가락 두드리며 불렀던 것도 그 당시의 풍속이었다.     

 1980년 중반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면서 회식이나 모임을 하면 막걸리에서 소주로 바뀌었다. 안주가 삼겹살이나 회사 회식에는 소고기를 먹으면서 소주를 선호했다. 마산에 오니 생선회가 안주가 되니 막걸리보다는 소주가 더 적격이었다. 그 당시 소주가 25도로 매우 독했다. 대구 번화가에 ‘송림식당’에서 고급 안주인 ‘소고기 뭉티’ 고기를 팔았다. 소 생고기 한 접시에 싱싱한 생간이나 천엽이 보조 안주로 나오는데 1인당 소주 한 병을 다 마시지 못했던 기억이다. 보통 사람들은 소주 반 병 먹고도 화장실에 가서 힘겨운 사투를 벌인 친구들도 더러 있던 시절이다. 그 후 소주의 도수가 19도 16.9도로 낮아지면서 막걸리보다는 소주가 국민 술로 등극한 것이다. 막걸리가 건강에 좋다고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체 회식에는 막걸리는 배가 빨리 부르고, 배뇨 작용이 활발하며 술 냄새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단체 회식에서는 소주가 주종을 이루는 것 같다.     

 최근 동문회 모임 가서 안주로 홍어삼합을 시키니 너도나도 막걸리를 원했다. 동래파전, 고갈비, 홍어삼합 안주에는 막걸리가 제격이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모두 다르지만, 등산을 가거나 집에서 혼자 마실 때는 막걸리를 선호한다. 한때는 대기업에서 막걸리 판매를 선도하여 막걸리 붐을 일으켰지만, 지금은 아주 다양한 막걸리들이 출시된다. 지역의 특산물을 첨가하여 막걸리 이름이 나온다. 예를 들어 알밤, 더덕, 잣, 송이, 옥수수, 인삼, 땅콩, 고구마, 조껍데기, 솔잎, 울금 등등이다. 또 지역을 토대로 서울에는 장수 막걸리, 부산에는 생탁, 대구에는 불로 막걸리가 유통되고 전통을 자랑하는 포천 이동 막걸리, 금정산성 막걸리, 남원 동동주, 지평막걸리 등이 있다. 소주나 맥주는 제조사에 따라 맛이 같지만, 막걸리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제조사가 같아도 맛이 다 틀린다. 대기업에서는 공정이 기계화로 맛이 일정하지만 작은 업체에서 만드는 막걸리는 개인의 작업이라 그날그날에 따라 물 배합에 따라 맛이 틀리는 특징이다. 우리 어머니도 술을 전혀 못 드셨는데 할아버지 막걸리 걸러 드리면서 농도를 맛보다가 술을 배웠다고 한다. 내가 근무하는 진동에도 막걸리 공장은 하나인데 사장이 두 명이라 어느 사장님이 술을 거르느냐에 따라 술이 싱겁거나 찐하거나 한다. 그래서 막걸리 맛이 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밖에 활동이 많아 집에서 혼자 술 먹는 일은 별로 없었다. 격렬한 운동 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1컵이나 식구들이 모여 고기반찬이 좋으면 소주 반 병을 반주(飯酒)로 먹었지만, 평소에는 술을 먹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밖에 모임이 적으니 자연적으로 집에서 식사하는 시간이 많고 술을 좋아하는 필자는 반주를 자연스럽게 즐겼다. 그런데 소주나 맥주를 마시면 아침에 대변이 탁하고 물러서 자제하고 막걸리를 마시고 아침 변을 보면 황금색 빛이 난다. 조선시대 임금의 대변을 ‘매화’라 하여 궁녀가 ‘매화’를 관찰하여 임금님의 건강을 살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대변을 유심히 관찰한다. 저녁 시간에 밥 쪼끔 하고 막걸리 작은 병이 나의 저녁이자 즐거움의 원천이다. 가격은 평균 1,400원이라 경제적으로 부담 없는 가격이고 안주도 김치 한 조각이나 반찬 한 가지만 있으면 저녁이 저절로 행복해진다. 술을 마시지만, 저녁 생활에 지장이 전혀 없다. 가끔 일탈도 있다. 마트에 갔더니 창원 막걸리 1+1을 한다. 4 꾸러미 8병을 구매했다. 아내도 수영 가서 회식하고 온다는 연락이 와서 기분 좋게 허리띠 풀고 마음껏 마셔보았다. 아내의 잔소리를 무마하기 위해 빈 병이 생기면 즉시 치우면서 마셨다. 6병 다 마셔갈 때 아내가 왔다. 얼굴은 붉고 술에 취한 모습인데 막걸리 한 병뿐이다.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막걸리 한 병에 그렇게 취하느냐? 고 묻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침실로 갔다. 한 달이 지나고 아내가 이 사실을 알고 가볍게 눈을 흘긴 일이 있다. 그래서 아내는 매일 술 먹는 모습이 싫다고 술을 먹지 말라 한다. 나는 아내 몰래 한 잔씩 한다. 냉장고에 넣어 놓고 컵만 가져가서 식탁에서 몰래 한잔한다. 옛 선인들이 임금이나 높은 사람하고 마시는 술이 가장 맛이 없고 친한 친구와 마시는 술이 좋고 혼자 마시는 술이 최고 맛있다고 한다. 나는 아내 몰래 마시는 한 잔의 술이 최고로 맛이 좋다. 좀 궁상스럽기는 하지만.                                 2023. 4. 19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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