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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Jan 31. 2024

퇴직 후의 삶, 계획

퇴직 후의 삶, 계획


 36년 직장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 가까워져 온다. 직업이 교사이기에 1년에 여름과 겨울 방학이 있다. 다른 일을 하는 직장인들이 부러워하는 방학이지만 딱히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지 않는다. 교사 초년기와 중반기 평일에는 새벽 6시에 일어나 7시 10분까지 등교하여 0교시 학생 지도, 수업하고 저녁 자율학습 마치고 10시 30분 퇴근했다. 방학이면 고3 학생 학교로 등교시켜 자율학습 명목으로 30년 가까이 방학을 잊고 지냈다. 교직 30년 이후 담임에서 배제되고 업무도 한가한 일을 맡으면서 정시 퇴근이 가능하고 여유로운 생활이 되었다. 하지만 따로 무슨 취미 생활이나 새로운 배움을 하지 않고 퇴근하여 모임 없으면 빈둥거리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올해는 퇴직 후 어떻게 알차고 보람된 삶을 살아갈까? 고민하며 계획을 세워 본다.     

 방학 시작하고 한 달간 일정을 보니 ‘산악회 모임’ ‘동문회 모임’ ‘문학관 계간지 출판식’ ‘형제간 모임‘ ’친한 친구 우리 정원 방문‘ ’자식들 휴가로 집에 오는 날은 미상‘ ’늘 만나든 선배와 저녁 식사‘가 달력에 메모가 되어 있다. 나머지 일상은 아내 정원에 노동 도우미로 아주 단순한 잡초 제거라는 일에 몰두할 예정이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더워서 정원 가서 닭 모이 주고, 개, 고양이 먹이와 식수 주고 늦은 오후 해 넘어갈 때 잡초 제거 정도이다. 아내는 평소 자기 일정에 맞추어 일과를 진행한다. 하루 쉬고 싶으면 편하게 쉬고 교육이나 배움과 운동이 있으면 간다. 나는 늘 평소처럼 아침 6시면 기상하여 7시면 아침 먹고 일과를 진행하려고 한다. 그래서 가끔 다투기도 한다. 그래도 다투면서 하루 시작해도 늘 끝은 웃으면서 끝낸다.     

 딸이 휴가차 내려왔다. 여행이나 무엇을 기획한 것이 아니라 그냥 집에 와서 ’엄마표 국수‘나 먹고 대화하다 갔으면 한다. 추석이나 설 명절이 아니면 식구 모두 모이기 힘들어 아들에게 오라 하니 직장 일이 바빠 힘이 든다고 냉정히 뿌리친다. 나는 가족이 모두 모이면 무조건 행복하다. 특히 딸은 대화를 조절하거나 즉흥적인 기획도 잘한다. 기차에 내려 평소 좋아하던 민물장어 덮밥을 먹으러 가서 드라이브를 즐기며 집에 오니 딸은 내일 온천에 가자고 한다. 최근 마산 인근에 큰 온천이 생겼는데 그 건물 앞을 지나가 보았지만, 내부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이다. 딸의 계획은 아침 일찍 갔다가 점심으로 좋아하는 냉면 먹고 가까운 곳 여행이나 하자 한다. 그런데 일어나니 10시다. 준비한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온천으로 갔다. 새 건물이라 깨끗하고 매우 넓다. 온천과 찜질방이 함께 있어 가족 간 대화나 즐기는데 장소로 너무 좋다. 식혜와 구운 달걀을 먹으면서 즐기니 최적의 피서지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여자들은 온천으로 간다. 남자와 여자의 목욕 시간이 달라 나는 홀로 찜질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불현듯 생각난 것이 ’퇴직 후의 삶 계획‘이다.      

 퇴직 후 어떻게 삶의 질을 높일까? 생각해 본다. 삶의 질을 규정해 보자. 한국인의 중산층을 찾아본다. 30평형 아파트를 대출 없이 마련하기, 2,000cc 이상 중형 자동차 소지, 현금 일억 이상의 통장 갖기, 1년에 1번 이상 해외여행 다녀올 것, 월 급여 오백만 원 이상일 것이다. 대부분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기준이다. 물론 우리나라 베이비 붐(Baby boom) 세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한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로 정하였기에 위에 기준이 합당한지도 모른다. 베이비 붐(Baby boom) 세대들은 삶의 방식이 절약과 근검이 최우선이기에 부를 축적해도 합리적 소비가 어려운 사람이다. 돈이 많으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다. 나는 여기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높여 인간답게 살려고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하려 한다.      

 첫째 주거 시설이다. 우리나라는 집을 재산의 한 형태로 생각한다. 젊을 때는 좋은 집에서 살고 재산을 축적하는 수단으로 집만큼 빠른 것이 없기에 투자했다. 그러나 퇴직 후는 집이 청소하기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공동주택보다는 작은 마당이라도 있는 주택이 좋을 것 같다. 마당에 금붕어도 키우고 꽃도 키우면 금상첨화다.

 둘째 차는 이동에 그리 지장 없는 정도이면 만족한다. 기실 나는 한 번도 새 차를 구매한 적이 없다. 첫 차는 형님의 하사품으로 사용했고 차를 바꿀 때마다 중고차를 매입했다. 그 덕분에 차 고장에 대한 에피소드가 1년에 한 번씩 있을 정도였다. 중고차를 끌고 다니는 애환이라 해야 할 것 같은데 다행히 식구들이 많이 참아주고 응원해주어 큰 불편은 없었다. 퇴직 후 새 차를 한번 구매할까? 생각은 하고 있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차 구매할 당시에 알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정원 가꾸기에 필요한 트렁크가 좀 큰 차면 중고라도 매입할 것 같다.

 셋째 노후 자금이다. 많아도 괜찮지만, 그리 여유자금이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이천만 원 정도의 비상금 및 노후 자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모친이 자식들 용돈을 모아 7백만 원 정도 저축하여 저세상 가시기 전에 병원비로 모두 사용하고 7만 원을 남겨 놓으셨는데 좋았다는 생각이다. 우리 부부도 혹시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지면 이 정도의 여유자금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셋째는 생활비이다. 교사 출신 부부가 생활비를 공동으로 출연하여 살림을 사는데 모자란다고 이야기한다. 소비는 재미있는 일이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형편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현재 우리 집 생활비가 퇴직 후 연금의 2/3 정도이다. 길흉사가 있으면 조금 더 들어가고 절약하면 좀 더 아낄 수 있다. 교사의 연금으로 절제하면서 살고 품위를 유지 하고 싶다. 돈에 아웅다웅하지 않고 사는 연습이나 마음가짐이 중요하리라 본다.

 넷째는 여유로운 삶을 위해 실천해야 할 행동들이다. 삶에 너무 변동이 없으면 사고도 좁아지고 활력도 없어지고 우울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탈출 경로가 여행이다. 여행은 관광이 아니라 체험 위주로 하고 싶다. 필요하면 해외여행도 가야겠지만 나는 국내 여행 중에 맛집 여행을 즐기고 싶다. 맛집 여행의 단서는 ’백반 기행‘이다. 허영만 작가가 다녀온 식당을 찾아 가면 그 지역에 좋은 체험장에서 체험하고 1박2일 4식을 하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도 가능하리라 예측해 본다. 

 다섯째는 건강을 위해 운동하기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25년간 테니스를 즐기다가 발목 부상으로 그만두었다. 일주일에 2~3번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것이 너무 좋았다. 단체 운동의 단점이 실력에 따라 대접받는 것이다. 잘하는 사람과 좀 못하는 사람과의 대우가 너무 틀린다는 점이다. 장점은 나이 상관없이 소통하는 것이다. 퇴직한 선배들을 보면 혼자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 만보(萬步) 걷기가 목표라며 열중한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산악회에 다니고 평소에는 수영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여섯째는 삶의 품위를 더 높이기 위해 취미 생활을 장려하려고 한다. 나는 ’시와 늪‘이란 문학단체에 가입하여 활동 중이다. 1년에 계간지 4권을 발행하는데 편집위원으로 참가하면서 좀 소극적인 활동을 한다. 7년 정도 참여하니 아는 사람도 많고 소통도 잘 된다. 퇴직하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문학관 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일곱 번째는 인간관계를 잘 정리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끊고 했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인연을 맺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 들어 많이 느낀다. 오랜 친구는 나의 보물 같은 존재이기에 더 아끼고 사랑하며 우정을 만들어야겠지만, 직장이나 사회적으로 필요에 따라 맺은 인연은 이제 정리가 필요한 시기임을 많이 느낀다. 억지로 정리하기보다는 그냥 두면 자동으로 소멸할 것으로 예상한다. 친구의 범위도 가장 핵심적인 사람만 마음속에 곱게 묻어주자.     

 현재 삶이나 퇴직 후 삶이나 정리해 보니 별반 차이가 없다. 나의 주체적 삶에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내가 출근할 때 아들이 “오늘도 고생하세요”라고 인사하면 나는“ 소풍 잘 갔다 올게”라고 대답한 적이 많다. 직장도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분으로 살아왔기에 퇴직 후에도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 오히려 내 삶의 진실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퇴직 후 여유로운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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